"김철수 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신장기증자가 나타났습니다."
"네? 정말요?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수술 들어갈 수 있도록 이 서류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아~ 네네. 어~ 그런데 며칠 전에 확인해 볼 때는 제가 대기자 명단에서 29번째라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그런데 어떻게 저에게? 신장기증자가 한꺼번에 29명이나 생긴 건가요?"
"아니요. 신장 기증자는 1명인데 지금 앞의 대기자분들이 모두 포기하셨습니다."
"네? 왜? 왜 앞사람들이 모두 기증된 신장을 거절했지요?"
"글쎄요, 앞의 분들의 거절사유까지 세세한 이유는 의료정보법상 개인정보라서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 신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29번째인 저에게까지 기회가 온 걸까요?"
"김철수 님, 이번에 기회를 얻으신 건 기적입니다. 더 늦기 전에 어서 결정하시고 이식 수술을 받읍시다."
"잠깐만요. 문제가 있는 신장을 받을 순 없잖아요. 건강한 신장이 아니면 제 몸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날 거 아닙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부분은 이미 다 체크되었으니 마지막으로 호환성 검사와 간단한 건강 상태만 확인하면 됩니다. 이미 앞의 분들이 포기하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요? 얼마나? 그럼 이미 그 신장은 상태가 안 좋겠군요.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가요?"
"기증받을 분들에게 수술여부를 여쭤보면서 김철수 님에게까지 차례가 오는 과정에서 이미 26시간이 지났습니다. 24시간 내에 받으면 좋긴 하지만 48시간까지도 가능하니까 더 늦기 전에 호환성 검사를 빨리 받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니~ 좀 꺼려지네요. 내 앞의 28명이 거부한 신장을...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거부했겠지요... 게다가 이미 시간도 많이 지나서 신장도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고... 저도 포기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영 찜찜해서요."
이렇게 대기자 명단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신장을 거부하고 자주 나타나지 않는 다른 신장기증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원하던 신장기증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서 김철수 님도 사망자 명단에 올랐다.
왜 사람들이 신장이식을 거부했는지 거부한 사람들 가족과 친척들의 대화를 엿들어보자.
대기자 1:
"형님, 이번에 좋은 기회가 왔는데 안타깝게 되었네요."
"그러게 말이야. 왜 하필이면 지금 코로나에 걸려서..."
"형님, 그래도 형님이 대기자 명단에서 1번이니까 다음 기회가 곧 올 거예요."
대기자 2:
"언니, 어떻게 된 거야? 신장기증자가 나왔다고 들었는데. 왜 수술 안 받은 거야?"
"응, 신장 호환성 검사 결과가 그리 좋게 나오지 않았어."
"그게 무슨 말인데?"
"이식받을 신장과 내 조직이 잘 맞지 않을 확률이 크다는 이야기지. 수술을 강행하면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데 어쩔 수 없지. 다음 기회를 노려봐야지. 섣불리 수술받다가 죽을 순 없잖아."
대기자 3:
"아버지, 제가 항공사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귀국하는 비행기 편이 마땅치 않네요."
"그러게 말이다. 계속 기다렸었는데 하필 여행 중에 갑자기 나에게 차례가 올 줄 몰랐구나."
"디렉트 항공편이 있기만 해도 어떻게 해볼 텐데 비행기 갈아타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리네요."
"그래, 할 수 없지 뭐냐. 그런데 대기자 3번인 나에게까지 온 거 보면 좀 미심적인 면이 있기도 하고. 거, 뭐~ 이래저래 일이 안되려니 이렇게 된 거겠지."
대기자 4:
"네? 앞의 3명이 모두 신장을 포기했다고요? 만약 신장상태가 좋다면 과연 앞의 3명이 모두 그 신장을 포기했을까요? 그럼 분명 뭔가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네요. 저도 포기하겠습니다."
대기자 5:
"네? 제 앞의 분들 4명이 모두 신장을 포기했다고요? 거, 영 맘이 안 놓이네요. 뭔가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저도 포기하겠습니다."
대기자 6:
"에이, 앞의 대기자가 모두 포기한 신장이라면 안 좋은 게 뻔한데 어떻게 그걸 받아요? 저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인데 건강한 신장이 아니니 받지 않겠습니다."
자, 여기부터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두 눈치챘을 것이다. 뒤로 갈수록 불신은 확신이 되었다. 대기자 7번부터 28번이 신장이식을 거부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결국 김철수 환자도 거부한 것이다. 그가 한 선택이 집단착각(대다수가 잘못 알고 있어서 벌어지는 일)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면, 하늘이 주신 기회를 잡지 못해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결국 한 생명을 구했어야 하는 그 귀한 신장은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48시간 후에 폐기 처분되고 말았다.
참고: 이 글은 토드 로즈의 《집단 착각》을 참고로 한 창작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