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죄송하지만 이번 엄마 생일 때 집에 못 가는 거 아시지요? 아빠랑 같이 이번 주말에 이리로 오실래요?"
홀로그램이 만들어 낸 영상이 이야기한다. 그리운 마음에 손을 뻗으니 아들의 형상이 구부러지고 끊긴다.
"또 못 온다고? 너 대체 어쩌려고 그러니. 네 몸을 사용 안 한 지가 벌써 삼 개월이 다 돼 가잖니. 이미 네 몸 상태가 엉망이 돼가고 있어."
"그러니까 빨리 페이크퓨처사에 연락하라고요. 왜 고집을 부리세요. 전 이미 결정했고 제 마음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널 더 이상 여기서는 볼 수 없게 되잖니."
"엄마, 이제 제 집은 이곳 드림랜드라고요. 엄마를 봐서 매번 억지로 그곳에 갔었다고요. 이젠 그만하고 싶어요. 제가 거기에 갈 이유가 뭐가 있어요. 게다가 엄마가 언제까지나 살아서 제 몸을 돌볼 순 없잖아요. 왜 제가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시는 거죠? 이제 절 자유롭게 놔 달라고요!"
그렇긴 하다. 이제 허리와 다리가 예전처럼 말을 안 듣고 기억력도 나빠졌다. 한 달 전엔 아들 몸을 보존하는 장치인 진공캡슐에 들어가는 배터리 교체를 깜빡했었지.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고 왱왱 울리는 경고음에 내가 얼마나 당황했던가.
그래. 이제는 아들 Andy의 몸과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다. 나 때문에 Andy가 잘못될 수도 있는데 난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걸까. 왜!
"Andy야, 넌 이제 부모도 보고 싶지 않은 거니?"
"엄마, 아빠가 여기로 오시면 되잖아요. 직접 오시기 뭐 하시면 홀로그램 통신을 이용해도 되는데 왜 굳이. 더 늦기 전에 제발 제 몸을 브레인센터로 보내달라고요!"
몸이라고? 이 녀석. 정확히 말하면 브레인만 보관돼서 관리되는 건데. 그러면 현실세계에서 살 몸은 영원히 없어지는 건데. 두뇌를 전기가 흐르는 용액에 담아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이 어떻게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결정을 그렇게 간단히 내릴 수 있지?
나의 욕심인가? 내 아들을 이 땅에서 보고 싶다는 것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내 아들 손을 잡고 식탁에 오손도손 둘러앉아 함께 웃는 것이? 텃밭에서 정성스레 가꾼 것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아들을 한번 더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나의 욕심이란 말인가?
"엄마, 이 참에 엄마, 아빠도 여기로 와서 사시지 그러세요? 모두 함께 사는 것이 엄마의 소원이라면서 왜 안 오시는 거예요? 전 그곳에선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드림랜드로 가서 사는 것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아들 Andy가 사는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다.
난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나에게 익숙한 곳에서 죽고 싶다.
남편도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나와 함께 고향에 머무르기로 했다.
"엄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기선 뭐든지 될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요."
"글쎄다. Andy야. 우린 여기 남아서 조용히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구나."
"..."
"아무래도 너를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엄마, 아빠가 너에게 갈까?"
"정말요? 네, 좋아요. 그럼 이번 주말에 오세요. 토요일 오전에 괜찮으세요? 제가 오후에는 다른 스케줄이 있거든요."
"그래, 토요일 10시로 하자꾸나."
"제 주소 아시지요? D13419. 그럼 토요일에 뵈어요."
드림랜드는 전에 딱 한번 가봤다. 남편과 난 관같이 생긴 기계 속으로 들어가는 게 영 어색했다. 가짜세계에서 아들 아바타를 만나야 한단 생각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우린 용기를 냈다. 아들 Andy를 보러.
아들은 드림랜드에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보고 싶었다. 행복해하는 아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곳은 이상한 나라였다. 휙휙 날아다니는 이상한 기계들과 구부러진 건물들과 번쩍거리는 불빛들에 눈이 시리고 아팠다. 뭐가 뭔지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던져진 우리 부부는 둘 다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들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화장실로 달려가 속에 것을 다 토해냈다. 내가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 있는 듯한 그 이상하고 생경한 느낌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애매한 중간 세상 같았다.
다신 가고 싶지 않았는데...
Andy가 다신 우리 쪽으로 넘어오지 않겠다고 하니. 우리가 가는 수밖에.
아들 몸을 브레인세이프센터로 보내고 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니 홀로그램 통신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비록 가짜이지만 내 아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상의해야 할 성질의 것인 게다. 아들의 몸이 사라지고 말 중대한 문제는.
* * *
토요일. 약속한 날이다. Andy를 보기로 한 날.
온통 하얀 페인트칠로 뒤덮인 페이크퓨쳐사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 끝이 안 보이게 솟아있었다. 우리 부부는 무균실 같은 느낌을 주는 건물에 들어서는 것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영 어색했다. 그들은 드림랜드 목적지를 물어보고 커넥터 캡슐화면에 번호를 입력했다. 우리 부부는 각각 투명한 커넥터캡슐 속에 들어가 누웠고 징~ 소리와 함께 뚜껑이 덮이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봤다.
곧 잠이 까무룩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빙빙 돌아가는 현란한 빛과 쿵쿵 울려대는 기괴한 음악소리로 둘러싸인 거실 한가운데로 이동해 있었다.
"엄마, 아빠! Welcome!"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ndy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헤어스타일뿐만 아니라 몸상태도 변한 것 같다. 뭐랄까? 울퉁불퉁 근육이 생기고 팔뚝엔 온통 문신투성이다. 내 아들이 아닌 것 같이 낯설다. 여기에 살면 모두 이렇게 변하는 걸까?
"아~ 좀 놀라셨지요? 제가 이번에 아이템을 좀 샀어요. 어때요? 쿨하지 않나요? 이번에 좀 힙한 아이템으로 업그레이드시켰더니 확실히 친구들 반응이 좋아요. 덕분에 예쁜 여자 친구도 생겼고요. 하하"
그렇구나. 고향에서는 방구석에 처박혀 살던 내 아들이 여기서는 뭐든지 될 수 있구나. 외모도 바꿀 수 있고 하는 일도 바꿀 수 있고 여자친구는 상상도 못 했던 내 아들이 이곳에서는 인기 있는 남자가 되었구나.
순하디 순했던 내 아들이 학교폭력으로 자살시도를 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 부부는 얼마나 가슴 졸이며 살았던가. 정신과 치료도 소용없어 결국 학교까지 그만둔 아들에게 주어진 길었던 지옥 같은 삶. 부모와의 소통도 거부해 버린 Andy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 것은 컴퓨터 속 세상이었지. 적어도 메타버스에 접속해 있을 때만은 칼로 손목을 긋는 소동 같은 건 벌이지 않았기에 우리 부부는 비로소 숨을 쉬고 잠도 잘 수 있었지 않은가. 메타버스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상생활도 조금씩 해나가는 아들을 보며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 희망했었지. 거부했던 음식도 맛나게 먹고 더 이상 자해하지도 않고 우울증 약도 더 이상 먹지 않는 아들이 마냥 좋았다.
그땐 몰랐다. 점점 더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 사는 아들이 가상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고 이제 거짓 속에서 살겠다고 하게 될 줄은.
"여기가 저에겐 진짜 세상이에요. 절 이해해 주세요. 아시잖아요. 하루라도 빨리 절 브레인세이프로 옮기셔야 한다는 걸요."
알고 있다. 진공캡슐 속에 몸을 보존하고 있을 경우 제 때에 영양공급과 충전을 해 주지 않으면 버그가 생겨 아들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더구나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규칙적으로 몸을 사용하지 않으면 근육이 위축돼서 결국 쓸모없는 몸이 되고 뇌손상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을. 사실 저번에 내 실수로 Andy에게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으니 나로선 할 말이 없다.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두 분이 언제든지 이곳으로 오실 수 있잖아요. 뭐 정 오시기 그러면 홀로그램 통신으로 언제든지 대화할 수도 있으니까요."
* * *
난 결국 오늘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오늘 여기 이상한 나라에 온 목적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계속되는 나의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인류가 '드림랜드'를 만든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내 아들이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준 '페이크퓨처'사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아들을 내 품에서 빼앗아 간 것에 분노해야 하는 걸까?
내 아들 Andy는 드림랜드의 삶이 정말 진짜라고 믿고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