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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May 01. 2024

사형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일본 놈들이 나를 가만둘 리가 없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나의 동족들을 위해 한 일이었다.


요즈음 들어 일본경찰들은 점점 더 포악해지는 것 같다. 무조건 맘에 안 들면 조선인들을 잡아들이니 이제 형무소가 터져나갈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나 같은 사형수는 바로바로 처리하게 되겠지.

어제 꿈에서 그리운 아버지를 뵈었으니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본 놈들의 창고를 털은 게 죽을죄를 진 건 아닐 텐데 저들은 나를 사형시키려 하는구나. 원래 백성들 것을 자기들이 먼저 훔쳐갔으니 엄밀히 따지면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건만. 굶주리는 내 가족과 이웃을 위해 내 한 몸 바칠 수 있다는 것에 난 만족한다. 비록 이로 인해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다. 어차피 더러운 일본 놈들 하는 꼴을 보고는 내가 가만히 못 있지.

한 가지 원통한 게 있다면 너무 빨리 잡혀버렸다는 것이다. 만주에 가서 독립운동에 참여하려고 했는데 섣불리 일본녀석들 집을 털려고 도둑질한 것이 실수다. 원대한 뜻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아! 밖이 시끄러운 거 보니까 오늘 내가 나무에 묶여 총살당하는 것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모였나 보군. 일본사람들이 구경하러 많이 왔겠지. 하긴 내가 한두 집에 들어간 것이 아니니 한양에 사는 모든 일본인이 다 몰려들었는지도 모르겠군. 저들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군. 아마, 날 끌어내서 어서 처형하라고 소리 지르는 거겠지. 그들에게 난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이고 복수가 되겠지.


아! 간수들이 뭐라고 소리치며 다가온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온다.

갑자기 심장 고동이 빨래 두드리는 방망이처럼 점점 빨라진다. 순식간에 입안이 바짝 말라 버석거리기가 모래를 씹은 것 같다. 서 있지도 않은데 이 망할 놈의 다리는 왜 저절로 후둘 거릴까?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일본 놈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벌써 이 못난 몸이 이리 반응하는 걸 보니 저 원수들 앞에서 다리에 힘이 꺾이고 오줌까지 지릴 것 같아 절망스럽다.


"죄수번호 24601 나와!"


아! 이제 죽는구나!


난 부끄러울 게 없다. 당당하게 걷자! 그런데 내 맘과 달리 두 다리는 이미 힘이 풀려 양쪽에서 내 양팔을 잡은 간수들이 날 붙들어 세워야 했다. 저 앞 철문을 나가면 군중 앞에 서고 조롱거리가 되겠군. 나무에 묶이고 총에 맞는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아프겠지? 죽은 후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냥 끝일까? 난 신 같은 건 믿지 않는데 혹시 죽은 후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어쩌지? 어머니가 성당에 가자고 했을 때 갔더라면, 그때 신을 믿기로 결정했다면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아, 하지만, 나는 신을 믿을 기회를 저버렸으니 만약 지옥이 있다면 난 지옥에 떨어지는 건가? 어머니는 지옥이 영원한 불구덩이라고 했는데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오! 신이시여! 만약 당신이 살아계시다면 저에게 당신을 받아들일 기회를 주소서! 이렇게 그냥 허무하게 두려움 속에서 죽을 순 없습니다. 오! 저를 이 절망과 허무에서 구원하소서!


바깥 처형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철문이 삐걱! 열릴 때 내 다리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 내 몸은 한 발짝도 더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간수들은 철문 밖에서 내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이 일본인들이 마지막 배려라도 해 주려는 걸까?


"죄수번호 24601, 넌 이제부터 자유다!"


자유?! 이들은 날 나무에 묶는 과정도 생략하고 쇠사슬 없이 도망가는 나를 사냥하려는 심산이었던가? 재미를 위해서? 날 동물취급하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는 내 등에 총세를 퍼붓는 것이 더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


"가라고, 이 새끼야. 넌 자유라고!"


한 발짝도 뗄 수가 없다. 사냥감이 돼서 꼴사납게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가고 싶어도 다리가 마비된 듯 안 움직이고 눈이 자꾸 뒤집히는 것 같이 앞이 흐려져 쓰러질 것 같다.


"이 새끼, 이거 못 알아듣네. 죄수번호 24601! 넌 자유라고!"

"네?"

"오늘 천황님의 생신이라 오늘 사형수 한 명을 풀어주기로 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행운이 나에게.

그때, 나무에 묶여있는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일본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럼  풀려나고 저 사람은 죽는 건가? 어? 저분은 성당에서 봤던 신부님 아닌가! 아니 저분이 무슨 죄를 지었지? 죄를 지을 분이 아닌데, 날 보며 인자하게 웃음을 고 있는 저 서양인은 대체 무슨 죽을죄를 지었기에 용서받지 못하고 저기 나무에 묶여있는 걸까? 아직도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꼼짝도 못 하고 서있자 간수가 내 등을 떠밀며 일본말로 마구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불안에 벌벌 떨면서 어찌어찌 겨우 형무소를 벗어났다.


오늘이 장이 열리는 날이었던가? 시장통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난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혹시 내가 이미 죽어 내 영혼이 여길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나에게 마구 달려왔다.


"아이고, 이게 웬일이랴! 자네, 살아 돌아왔구먼!"

"네. 오늘이 일본천황 생일이라서 풀어주는 거래요."

"그렀긴 한데..."

"아, 다들 알고 계셨어요?"

"응, 자네 풀려나기 전에 난리가 났었지."

"난리라니요?"

"아, 글쎄 그 서양신부 있잖아. 그이가 성당으로 숨어 들어온 조선인을 도줬다가 들켜서 그 조선인과 함께 붙잡혀 들어갔었다네. 뭐 별 죄가 없으니까 그 신부가 풀려나기로 되어있었나 봐. 아, 그런디 글쎄 그 사람이 자네를 풀어주고 자기가 자네 형벌을 대신 받겠다고 했다는구먼."

"네? 뭐라고요? 말도 안 돼. 아니 그분이 왜?"

"잘은 모르겠지만, 자네 어머니한테 그랬다는군. 자긴 죽으면 하나님께 가겠지만 자넨 아직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안 되었응께 자기가 대신 죽겠다고."

"뭐라고요? 날 위해서 대신 죽겠다고 했다고요?"


미친 거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말도 안 된다. 안돼!

난, 미친 듯이 형무소로 다시 뛰어갔다. 그럴 순 없다! 난 죄를 졌지만 신부님은 죄가 없다. 천국이고 뭐고 이건 아니지. 막아야 한다. 원래대로 다시 되돌려놔야 한다.

형무소에 거의 다다랐을 때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있어났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탕! 탕! 탕!


아! 신부님!

나는 이제 어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아! 곤고한 내 영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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