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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Apr 23. 2024

천인공노할 카톡메시지!

남편에게 당했나?!


"엄마, 아까 엄마가 보내놓은 카톡보고 빵 터졌어!"

"응? 무슨 카톡?"

"집단상담 안내글."

"아, 그거~ 이번에 엄마 모임에 있는 분이 알려줘서 너한테도 정보를 준 건데. 네 친구들에게도 알려주라고. 그런데 그게 왜? 웃길 게 없는데. 괜찮은 프로그램인 것 같던데?"

"아, 엄마. 엄마가 나에게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는구나."

"왜? 내가 잘못 보냈어?"

"크크. 엄마, 엄마가 보낸 글 다시 읽어봐. 하하하"


아니, 유익한 정보를 준 건데 고마워하진 못할망정 뭐가 우습다는 건지 4차원 같은 소리를 하는 딸에게 은근히 부아가 났다. 뭐가 웃기다는 건지. 난 서둘러 낮에 보내놨던 가족카톡방을 뒤졌다. 이상한 게 없는데?

청년을 대상으로 상담하는 게 웃긴 건가? 아님, 집단상담이란 아이디어가 기성세대에겐 먹히지만 MZ세대에겐 웃음거리가 되는 건가? 대체 뭐지?

궁금한 건 못 참고, 억울한 건 못 참고, 성격 급한 난 카톡화면을 다시 보면서 딸아이 방문을 두드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때 내가 잘못 쓴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어? 문 앞에 우뚝 멈춰 선 나는 피가 얼굴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다음 순간 어이가 없어진 나는 바람 빠진 웃음을 입 밖으로 흘렸다.


'창년집단상담'


헉!


카톡에 자꾸 철자를 잘못 쓰고 뭘 잘 못썼는지도 못 보는 걸 보니 이 몹쓸 눈이 쓸쓸히 저물어가나 보다.

눈이 가물가물해질 때마다 내 생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 쓸쓸해진다. 하긴, 나이 들어가면서 좋은 것도 있긴 하다. 남편과 같이 할 세월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남편이 안쓰러워 보인다. 눈도 어두워지고 힘도 빠져서 그런지 점점 그냥 남편 하고 싶은 대로 놔두게 된다. 그리고 넓혀가는 허용리스트에 남편의 해외여행이 이름을 올렸다.


남편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정기적으로 만났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작년에 돌연사하면서 그 모임 멤버들은 누군가를 갑자기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원할 것만 같은 삶이 끝이 있다는 사실은 멤버들을 더 똘똘 뭉치게 만들었고 빈 말처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자던 말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아홉 명 중 결국 여섯 명만 갈 수 있게 된 여행. 처음에 남편은 망설이는 듯하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본인을 위해 돈을 잘 안 써본 절약형 남편은 이번 열흘간의 해외여행이 엄청난 사치로 느껴졌을 터이다. 하지만,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던 거지.


"여보, 망설이지 말고 기회 있을 때 다녀오셔요. 사람 앞 일 어떻게 될 줄 모르는데. 나중에 가고 싶어도 다리 아프면 못 가는 거고. 친구들이랑 즐겁게 다녀오셔요." 난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어디 어디 갈 건지 뭘 보기로 했는지 이것저것 물으며 폭포수 같은 관심을 쏟아내며 응원의 미소를 날렸다.


그래서일까? 남편이 달라졌다.

가끔씩 하던 집안일을 전담하다시피 자원해서 하고 수십 년간 스탑 했던 발주무르기도 돌아왔다. 신혼으로 돌아간 같은 기분에 잠기고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 소록소록 솟았다. 번이나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색해서 끝까지 나온 말 삼키기를 무한반복했다.

에구~ 쑥스러워. 여행 가는 날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야겠다.


드디어, D-day!

새벽 일찍 나가는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뒤돌아서는데 뭔가 빠뜨린 것 같다. 뭐지?

아. 맞다! 한 번도 아침형 인간이 되어본 적이 없는 나는 그날 아침도 비몽사몽 하다가 하려고 했던 말을 까먹은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한다면 하는 여자! 난 부랴부랴 핸드폰을 켜서 나의 마음을 전했다. 빨간 하트도 날렸다. 행복해할 남편 생각을 품고 난 다시 아침잠에 빠져 들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 올빼미인 난 밤에 널찍한 침대에서 책도 보고 영화도 보며 나름 뒹굴뒹굴 인생을 즐겼다.

그리고 드디어 남편이 돌아오는 날. 전보다 행복해져서 돌아올 남편은 집안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고 나도 더 행복한 삶을 누리리라. 여행의 약발이 평생 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은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발걸음도 가볍게~. 내가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잠시 외국물 좀 먹은 남편은 외국 스타일로 허그해 주고 키스까지도 해 주려나? 선물은 사 왔으려나? 내가 확실히 사랑한다고 메시지까지 보냈으니 눈에 하트가 뿅뿅 그려져 있을까?


하늘을 두둥실 떠가는 풍선처럼 부푼 마음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 선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현관 앞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 줄 남편이 코빼기로 안 보인다. 어? 아직 안 왔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난 안으로 들어갔고 소파에 찰거머리처럼 납작하게 붙어있는 남편을 보았다.

아~ 피곤해서 잠들었나 보구나. 그런데 이 싸한 느낌은 뭐지?


"여보? 자요? 잘 다녀왔어요?"


내 말에 몸을 뒤척여 반대방향으로 얼굴을 묻는 남편의 등은 그가 자고 있지 않음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모습은 삐짐형 남편으로 변신할 때 나오는 모습인데?


"여보~ 피곤해요? 여행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침묵하는 남편. 동굴모드로 들어가는 전조증상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혹시 내가 중요한 문자를 놓쳤나? 여행 중에 남편이 문자나 카톡은 아예 안 보냈을 텐데? 여행할 동안 여행에 충실하겠다고 해외로밍도 안 하고 갔는데. 그럼, 공항에 도착해서 전화했나? 오늘 내가 너무 정신없이 일하느라 바빠서 중요한 부탁 같은 걸 빠뜨렸나? 뭐지? 별의별 생각으로 녹슨 머리를 삐걱삐걱 돌리다 혹시 내가 그냥 넘겨버린 문자메시지가 있나 하고 스마트폰을 뒤졌다. 그리고 보았다. 내가 보낸 사랑고백이 천인공노할 메시지로 변해있는 것을.


'여보, 사망해요~ '


입안이 바짝 마른 나는 내 몹쓸 시력과 제자리를 못 찾는 못난 손가락이 죄인임을 거듭거듭 사죄해야 했고 그 이후 집안일은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평소보다 세 배나 푸짐한 저녁상을 매번 바치고, 설거지는 당신 차례라는 말은 감히 꺼내지도 못하고, 빨래가 당신을 부른다는 말은 농담으로라도 못 했다. 죽을죄를 진 나는 납작 엎드러졌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점점 기분이 묘해진다.

혹시 내가 남편의 전략에 넘어간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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