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 퀸 Jun 28. 2024

무무와 함께 - 욕망

무무와의 인연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무는 마치 내가 사람이라는 형태로 이 땅 위에 존재하기 이전부터 나와 친구였던 것처럼 친하게 느껴진다.

무무와 함께 있으면 너무나 편안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도, 속박, 관습, 고정관념으로부터 무장해제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끔은 무무가 다른 별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무무: 혼자 축구 연습 하는 거야?

나: 응. 나 욕망이 생겼어.

무무: 욕망?

나: 오늘 점심시간에 친구들하고 축구했는데 정말 재미있었거든. 더 재미있게 놀고 싶은 욕망? 아, 그러니까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싶은 욕망이겠네. 어때 나 '욕망'이란 단어를 쓰니까 간지 나지? 오늘 수업 시간에 나온 단어야.

무무: 그러게. 오늘은 네가 철학자처럼 이야기하는구나. 욕망에 대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 있어.

나: 플라톤? 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름  많이 들어봤는데.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했는데?

무무: '인간에게는 본성과 행복에 필수적인 타고난 욕망이 있다'라고

나: 아, 그래? 그럼 난 플라톤에 따르자면 축구 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내 본성에서 나온 거네?

무무: 너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욕망이라고 볼 수도 있지. 그런데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르게 이야기한 현대 철학자가 있어.

나: 다르게? 그게 누군데?

무무: 장 보드리야르. 이 철학자는 '인간의 욕망은 사회와 미디어에 의해 구성되며 타고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

나: 미디어? TV 말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내가 축구에 관심을 가진 건 '박지성' 선수를 TV에서 많이 봤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

무무: 박지성 선수는 본받을 점이 있는 훌륭한 선수지.

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연습 많이 해서 나도 박지성 선수 같은 유명인이 되고 싶어. 인기도 많고 돈도 장난 아니게 많이 벌걸?

무무: 인기와 돈을 가진 유명인이 되고 싶어서 축구연습하고 있었던 거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축구가 좋아서가 아니고?

나: 아니, 축구도 하고 유명인도 되고 그럼 좋은 거 아닌가???


무무가 이렇게 물어보니, 내가 축구를 잘해야겠단 욕망이 친구들과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내 안에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방송에서 본 유명한 축구선수들이 부러워서 흉내 내려고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혹시 방송에서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남들 생각을 따라서 축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일까?

아냐, 아냐.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것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아니지. 그건 남들이 다들 그런 거 원하니까 나도 그냥 해본 소리고, 내가 원하는 진짜 욕망은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싶다는 거?!

괜히 창하게 '욕망'이라는 단어를 쓰며 무무에게 잘난 척하려다가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텔레스니, 장 보드리야르? 뭐 이런 철학자들 운운하는 무무만 더 잘나게 보였잖아. 에이~ 잘난 척하려는 오늘의 '욕망'은... 실패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무와 함께 -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