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을'은 용감할 수 있는가?
갑 vs 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때론 갑의 위치에, 때론 을의 위치에 원하지 않아도 있게 된다.
며칠 전에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내 이름 앞에 '을'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내가 '을'이구나.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공식적으로, 합법적으로 '을'이구나! 이론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직장생활에서 을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는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계약서에 '떡'하니 '을'이라고 쓰여있으리라는 것은 기대치 않았던 것 같다.
'을'이 지켜야 하는 문구는 길고도 길었다. 만약 회사가 갑질(?)을 원하면 깨알 같은 글씨 속에서 원하는 문구를 언제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몇 장에 걸쳐서 구체적으로 쓰여 있는 갑의 무기에 비해 짧게 적혀있는 을의 방패는 심장이나 제대로 가릴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사정이 이러니 전체회의에서 목표 수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시 각오하라는 말은 협박으로 들린다. 모두 열심히 해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자는 의도로 한 말일지 몰라도 '을'의 심장은 불안과 공포로 걷잡을 수 없이 빨리 뛴다. 저 태곳적 어두운 밤 깊은 숲 속에서 이름 모를 짐승의 포효를 바로 근처에서 들어야 했던 조상들의 두근대는 심장처럼.
불행하게도 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떻게 자신의 목을 걸고 위험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무자비한 송곳니에 찢기지 않으려면 목을 움츠리고 조그마한 소리도 내면 안 된다.
왜 용감하게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사느냐고?
생존해야 하니까.
용감이란 이미 '을'의 위치를 포기하기로 작정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