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단 한번 가장 간절하게 기도를 했던 적이 있다. "살고 싶다" 살아서 남들이 다 해본 경험을 나도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아주 어렸던 나이 때 내게 찾아왔었다.
중학교 1학년. 이제 막 초등학생 티를 조금씩 벗어나 청소년으로 가는 시작점에 나에게 불청객이 찾아왔다. "췌장염"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찾아와 나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준 모진 녀석이었다. 평소에 자주 배가 아팠던 나는 한 달에 4번 이상 병원에 갔었다. 뭔가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간 병원이지만 정작 돌아온 말은 단지 청소년시기 스트레스 때문에 아프다고 했지만 특별한 원인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특별한 원인은 우리 모두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며 나타나더니 조금씩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변비와 설사가 반복이 되기 시작하면서 너무 심하면 혈변을 보게 되고 뱃속에서는 아주 찢어질듯한 통증이 너무 잦았다. 그러다 1학년 여름방학을 하기 전에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나를
부모님이 집 앞 병원으로 급하게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셨고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했다.
며칠 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방문했다. 내심 원인이 나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생각은 정말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내 차트를 보시고는 살짝 갸우뚱하게 보시더니 내가 배가 아픈 이유는 췌장염이라고 하셨다. 장염은 다 똑같은 것이 아닌가. 난 약만 잘 먹으면 금방 낫는 병이라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의 생각은 아니었다. 내 나이 때 이 병이 걸리는 일은 흔치 않으며 이 병은 대부분 술에 의해 생기는 것인데 14세 아이가 술을 마셨을 일은 없고 내가 왜 이 병에 걸리셨는지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셨다.
뭔가 심각한 거 같았지만 적어도 그때 당시 난 내가 배가 아픈 이유를 알게 되었기에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어차피 장염은 잘 쉬면 금방 나으니 '난 다시 생생하게 건강을 찾고 학교를 다닐 거야' 그렇게 믿었는데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나의 췌장염은 조금씩 조금씩 커지면서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2학기가 시작되는 날. 난 가야 하는 학교가 아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난 금방 퇴원할 거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확신이 있었다. 며칠만 입원하면 내 병은 나을 것이며 난 다시 학교를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이 모든 확신을 하나씩 뭉개버리며 나의 입원 생활이 점점 길어져가니 내 확신은 서서히 포기로 바뀌어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의 포기라는 것을 느낀 때였다. 퇴원을 할 거라는 희망을 안고 매일 사람들과 웃으며 지냈는데 서서히 몸에 힘이 빠지고 췌장염은 나을 기색이 보이지 않으니 내 웃음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애써 밝게 있던 부모님도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우셨다. 그 어린 나이에 삶을 포기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만큼 내 상태는 그 당시 매우 안 좋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소견도 나오고 암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며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매일 약물을 받지만 수치를 쉽게 정상으로 가지 않고 게다가 왜 이 병에 걸렸는지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가 없어 병이 완치가 되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서 재검사하고 입원했는데 역시나 좋은 결과는 보이지 못했다.
이대로 그냥 죽게 된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 것인지 매일 생각에 빠졌다. 거울을 보면 토실토실했던 얼굴은 완전 뼈밖에 남지 않았고 걸을 힘도 없어서 매일 누워만 있고 그런 내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고 슬퍼 보였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거야' 누구한테 원망을 할 수도 없는 처지. 유일하게 원망을 한다면 신이었다.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지 정말 신이 있다면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다. 나에게 왜 그러냐고.
그렇게라도 원망을 해야 조금이나마 내 분한 마음이 풀리라 생각했지만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진짜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나 어떡하지?' 죽는다는 생각 하니 포기란 물가에서 간절함이라는 배가 하나 보였다. 꼭 저 배를 타서 살고 싶었던 그때. 그렇게 매일 같이 난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살고 싶다고.
누군가 그랬다. 정말 간절하다면 그 간절함은 꼭 이루어진다고. 살고자 하는 내 간절함은 정말로 신께 닿았던 것인가. 3일에 한 번씩 검사를 했던 피검사에서 조금씩 좋은 결과가 나왔다. 매우 높았던 염증 수치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정말 기적 같은 소리. 그리고 매일 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몸이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뼈밖에 남지 않던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하며 서서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회복되는 내 모습에 나는 정말 기뻤지만 옆에서 병간호를 해준 엄마가 더 기뻐했다. 한순간에 자식을 잃을 걱정 때문에 매일 나를 돌보며 제발 낫기만 바랬을 엄마 또한 얼마나 힘들었을지.
엄마 또한 나처럼 매일 간절하게 기도를 했을 것이다. 모자의 간절한 기도를 신께서 좋게 봐주신 덕에 난 다시 내 일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난 정상적인 수치로 돌아오며 오랜 병원 생활 끝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환자복에서 내 옷을 입고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순간은 억압한 곳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내 마음이 너무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퇴원 후에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다시 수치가 안 좋은 결과도 있었지만 약을 잘 먹고 밥도 잘 먹은 덕에 내 병은 완치 판정이 되었다. 훗날 재발이 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완치 판정받았다는 것에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훗날 미래는 다시 암울한 일이 다가왔지만 정말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그건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살고자 하는 간절함. 난 정말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서 학교 다니고 연애도 하고 대학도 가고 싶은 학생이고 싶었다. 그 삶, 그 간절함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바란 마음은 나에게 완치 판정이라는 축복으로 보답해 줬다.
간절함. 난 그 간절함 때문에 지금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