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집안에서 태어나 무뚝뚝하게 자란 한 가정의 장남은 나이를 먹어도 쭉 무뚝뚝한 성격으로 지낼 거라 생각했다. 내가 애교를 부린다거나 부드럽게 말한 모습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카드캡터체리에 나오는 체리의 짝사랑 도청명처럼 살가운 사람이 아니라고 나 자신이 그렇게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묵하게 살 거 같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거리낌 없이 말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사람들과 만나면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내 모습은 내 일상에서 많은 변화를 주었으며 주변인들에게도 아주 좋은 영향이 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엄마와의 시간이다. 20살 이후 엄마는 차를 구매하시면서 시간 날 때마다 드라이브를 가고는 했다. 거기에 항상 내가 동참을 했고. 언제 어디를 가던 엄마는 나와 동생들과 함께 드라이브를 가려고 했으며 특히 나랑 제일 많이 드라이브를 가고는 했다. 마침 대학교 방학이라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나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으며 한창 드라이브를 가고 싶은 시기였기에 엄마와 함께 드라이브 가는 것을 즐겼다. 전주, 천안, 대천, 군산 등 갈 수 있는 곳은 웬만하면 다 가며 엄마랑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갖는 시간도 생겼다. 그렇게 무뚝뚝하던 아들이 먼저 엄마에게 대화를 걸기 시작하며 여러 주제로 얘기를 했고 엄마도 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과묵한 집안에 대화의 싹이 텄다. 나로 시작으로 동생들도 점차 엄마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니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띠게 되었다. 한참 갱년기가 오는 시기에 엄마는 극심한 우울증이 와서 삶의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 삼 남매와 함께 시간을 보내니 엄마의 갱년기는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내가 집에서 나와 서울로 올라오고 그 뒤를 이어 여동생도 서울에 올라가니 함께 드라이브를 갈 사람이 없는 엄마는 한동안 외로움을 느껴했다. 그래서일까 그런 엄마에게 일주일 한 번은 꼭 전화를 하며 짧은 통화라도 하며 안부를 묻고 한다. 그리고 가끔 본가에 내려가면 최대한 엄마와 함께 드라이브를 가려고 노력을 한다.
마치 엄마의 남자친구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와 함께 드라이브를 가며 여행메이트가 되어주고 집에 있으며 방에 있는 시간보다는 거실에서 함께 있으며 같이 방송도 보고 말동무가 되어주는 애인처럼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자식으로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니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실감이 나니 무섭기도 한다. 어릴 때 들었던 말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나이를 먹고 나서야 피부에 와닿았다. 나중에 곁에 안 계실 때 사무치게 후회를 하지 말고 있을 때 많은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남겨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