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 민달팽이 박 씨 [영국]

- 30이 되기 전 워홀로 20대를 살아볼래요.

by Nadaum

오늘은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다

한 6쯤? 사실 겨울이면 무거워진 몸이 따스한 이불속과 한 몸이 되어 일부러 나오지 않고 뭉그적거리곤 하는데, 오늘은 어제부터 벼르던 근교 나들이를 가려고 부랴부랴 침대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준비를 다 하고 나와 기차를 탔다

이제는 제법 영국의 교통체증에 익숙해져 기차가 연착되고, 기다리던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는 것에 화도 나지 않는다

영국에서의 삶은 참을성 없던 나를 인내하고 참는 연습을 많이 시켜준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오늘도 어김없이 한국에 있는 아빠와 화상통화를 했다

아빠는 통화를 할 때면 늘 여행 프로그램 이야기를 한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아빠를 닮아서겠지… 이제 곧 아빠도 70인데.. 매일 노래를 부르는 유럽여행을 아직도 못 해보셨다.

내가 꼭 1등석 태워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내 삶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 채우려는 욕심에 자꾸만 미뤄진다..


아빠는 우리들 이름으로 결혼 적금을 하나씩 들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들기 시작했는데 아직 우리 중 누구도 시집을 가지 않았다. 오늘 아빠에게 적금 깨서 그 돈으로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하고 여행도 다니라고 그랬는데 말없이 웃기만 한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있자니 짠해서 울컥 눈물이 났다.


나는 어려서부터 다리가 불편한 아빠를 위해 (아빠는 하반신마비다) 내가 희생해 왔다고만 생각했다.

드디어 성인이 되었을 때, 이제는 나도 내 삶을 살아보자고 홀로 해외에 나와 많은 자유를 누렸다.

그런데 내가 그런 자유를 누리고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 동안에 아빠는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보며 혼자 나이 들어가고 있었단 사실이 내 마음을 후벼 판다.


곧 서른인데,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은 나는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사실들이 마음에 무겁고 슬프게 스며든다.


최근에 가장 와닿은 말이 있다면,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기 마련’


나는 내 청춘 중에 청춘인 20대를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 란 카테고리 속에서 보내기로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가족과의 시간, 모국에서의 사회적 위치나 안정을 포기했다.


또 다른 한편으론, 그로 인해 가족들과의 돈독함과, 소중함을 깨닫고 한국에만 있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경험들을 했다.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없다는 건 인생의 진리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단 걸 감수하고 깨닫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게 어른의 삶이 아닌가 싶다.


부와 성공을 위해 가족, 친구와의 시간을 잃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그리고 가정을 위해 개인의 자유시간을 잃을 수 있고 이런 인생의 룰들을 깨닫고 그걸 받아들이며 사는 것 그게 진정한 어른의 의미이지 싶다.


어릴 적 내가 바라봤던 어른들,

어린 우리들의 무궁무진한 질문세례에 대답대신 이따금씩 보이던 웃음의 무게와 그 뒤로 보이는 씁쓸함을 알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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