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홀리데이의 첫 시작, 보랏빛 자카란다
때는 바야흐로 10여 년 전,
첫 워킹홀리데이의 꿈을 키워줬던 건 스무 살의 내 가 경험한 동남아 배낭여행이었다.
당시 대학 대신 선택했던 두 달간의 배낭여행은 내가 자발적으로 한 첫 장기 해외여행이었다.
영어를 몰라 손짓발짓을 써 가며 했던 여행
알바로 열심히 모아 온 돈에 부모님께 부탁해 받은 용돈을 합쳐 만들어낸 200만 원으로 비행기 표도
사고 아끼고 아껴 한 3개국 여행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현지인들, 외국 친구들, 세계여행자들.
그곳에서 키워낸 세계여행의 바람을 풀고자 시작했던 첫 워킹홀리데이 나라 호주.
당시의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걸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2018년 12월, 22살의 나는 수많은 생각들과 함께 호주로 향했다.
10월이 되면 호주에는 보랏빛의 벚꽃이 핀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내게 우수수 떨어진 자카란다 꽃잎을 밟으며 걷던 마가렛리버의 거리는 지금 생각해도 나를 웃음 짓게 만드는 사소하지만 행복한 기억 중 하나이다.
과거)
2018년 12월, 오랫동안 떨어져 지낼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김해공항에서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5시간가량의 비행 그리고 15시간의 경유.
이날 “공항노숙”이라는 걸 처음 해 보았다. 피곤에 절어 공항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아 잠들었고 새벽까지만 해도 한산했던 공항은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고, 나는 승무원의 안내 방송을 들으며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기상했다.
호주 땅을 밝기 전 까지는 사실 워킹 홀리데이를 간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어찌 됐던 다른 나라에서 생판 모르는 외국인들과 부대끼며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언어 모든 게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보니 쉽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길었던 창이공항(싱가포르)에서의 기다림을 끝으로 드디어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5시간가량의 시간이 흐른 후 퍼스공항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땐, 이곳은 이미 어둑한 밤이었고 호주에 도착했다는 실감을 느낄 틈도 없이 피곤함이 몰려왔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버스도 없었을뿐더러 짐도 많고 피곤한 나머지 바로 우버(택시)를 잡아타고 미리 예약해 두었던 공항 근처 제일 저렴한 백패커로 향했다. 몇 시에 도착하는지 미리 알리지 않은 탓에 백패커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입구에 보이는 직원 번호로 전화를 해 자고 있는 직원을 깨울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있어 호주인과의 첫 전화였다.
잠이 덜 깬 얼굴로 내려온 직원은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딱 20퍼센트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충 왜 이 시간에 오는 걸 미리 알리지 않았냐는 내용의 말이었다. 백패커 리셉션이 문을 닫은 후 도착을 할 경우에 미리 호스텔에 연락을 해 입구 비밀번호와 방 키 위치 등의 정보를 받아야 했었다.
아무튼 직원의 설명을 듣고 방 키를 받아 곧장 내방인 6인실로 갔다. 비수기여서 그런지 외각이라 그런지 몰라도 내가 들어간 방 안에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는데 침대를 이불로 칭칭 감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쓰러질 듯 피곤했던 나도 곧장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나의 호주 첫 백패커, 첫 룸메이트는 아담하고 예쁘게 생긴 일본 친구였다. 그 친구가 아무것도 모르는 맨땅에 헤딩 워홀러인 나를 퍼스(Perth) 시티로 데리고 나가 버스 타는 곳, 교통카드 만드는 법, 시티외각 볼 만한 곳 등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몇 주를 백패커 생활로 초기정착을 해 가고 있던 나에게 어느 순간 큰 공허함이 찾아왔다. 준비 없이 온 호주에서 뭐부터 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런 나 스스로가 너무나 답답하고 짜증 나게 느껴지다 보니 어느 순간 우울함이 크게 자리 잡았고 게다가 현지에서 부딪히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던 영어울렁증은 나아지긴커녕 되려 심해진 나는 거의 2주간의 시간 동안 음식을 사러 잠시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우울함을 극복하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을 때 즈음에 예전 배낭여행 중 만났던 싱가포르 친구인 ‘Destin’ 에게서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더스틴은 내가 태국 배낭여행 중 만나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온 싱가포르 친구이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 묻기에 호주 퍼스로 워킹 홀리데이 왔다고 답하니 깜짝 놀라며 자신은 지금 퍼스에 있는 대학에 재학 중이라며 말도 없이 언제 왔냐고 묻는 게 아닌가? 더스틴이 호주에 그것도 이 넓은 땅에서 같은 지역인 퍼스에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던 나도 덩달아 놀랬다.
그동안의 근황을 주고받던 중 그는 현재 방학이라 두 달간 여행 중인 상태였고, 집도, 절도 없던 나에게 방 구할 때까지 본인이 쓰던 방을 쓰지 않겠냐는 제안에 나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승낙을 하였다.
그렇게 퍼스에 도착해 호스텔에서의 3주간의 폐인생활을 청산하게 되며 처음으로 하우스셰어를 하게 되었다.
당시 더스틴과 함께 살던 호주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Allana’ 결론적으로 나는 알라나와 함께 더스틴이 없는 더스틴의 방에서 지내야 했다.
더스틴이 미리 알라나에게 본인이 없는 동안에 친구인 내가 들어와 잠시 살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해 놓은 덕에 쉽게 이사를 갈 수 있었다.
처음 알라나와 만났던 날 더스틴의 방을 보러 갔었는데 내가 더스틴의 친구라 당연히 영어를 잘할 거라 생각한 그녀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당황한 나는 어버버 어버버 고장 난 로봇처럼 이상한 대답만 반복했다.
차가 있었던 그녀는 친절하게 백패커에 있는 나를 픽업하러 와줬고 덕분에 힘 들이지 않고 쉽게 이사를 할 수 있었다.
방에 짐을 풀고 앉아 있자니 너무 어색했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와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작은 아파트를 구경시켜주고 간단한 룰 긴급 상황 시 연락처 등을 알려주었다.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