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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인생'을 살았는가?

이슬아 책을 읽으며

by 조유상

사소한 순간을 잡아내는 젊은 이슬아가 있어 행복하다, 아니 솔직히 샘난다.

이런 이슬아가 내 안에도 충분히 있었으련만, 아니 아직 남아 있겠지.


사랑에 터무니없이 자신하고 다채로웠던 경험을 쏟아내고 작은 문장 하나 앞에 서성이는 마음, 깃들이고 곰 삭히며 살려내는 마음.


이슬아가 살금살금 걸어들어와 일상 마디마디 은근슬쩍 툭툭 건드리며 웃긴다, <끝내주는 인생>에서.

친구와 삼성 코엑스에서 작년 여름과 가을 사이? 북페스티벌에서였지, 아마. 싱그러운 이슬아 부부가 독자와 만나며 사인해 주는 걸 지나며 봤다.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굳이 읽었다고 나서거나 사인을 받고 싶은 마음까진 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된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아도 충분한 독자들에 에워 쌓여 있는 슬아를 보며 나는 어떤 마음이었으려나?


그가 머리말에서 말할 것처럼 ‘굽어 살피’는 노인 축에 드는 나 역시 그를 굽어살피고 있나? 아니, 내 나이 반으로 접고 -@해야 나올 그미의 나이와 상관없이 차분하고 단단한 일상 풀어내기가 이 책 부피만큼 아주 살짝 부러울 뿐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라는 말까진 차마 못 하겠다. 그렇게 되면 일상의 지평이 새롭게 펼쳐진다는 건 진리지만 그만큼 세상이 좁아지기도 하니까. 기저귀 접는 세월과 밥 떠 먹여줄 시간을 얹고도 채 완성되지 못할 책임감이란 시간을 강요할 순 없다. 내 자식에게도 못 하는 걸.


‘돌아와 다시 거울 앞에선’ 이 나이에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건,

이 세상 떠날 때 내 몸과 살로 남편과 함께 빚은 아이들 두고 가는 게 그닥 아쉽지 않을 거 같다. 그들 몫의 삶을 충분히 잘 살아내리란 믿음이 있으니까. 나는 어미로서 이미 책임을 다 했으니까.


대신 아름다운 풍경 한 컷, 들꽃 향기 한 줌이 그리워 같이 가슴에 음각으로 새겨 묻어가고 싶다. 엄마가 먼지처럼 날리는 가루로 강물과 산자락에 흩날린 뒤 피어난 들꽃 몇 송이처럼, 그렇게 피어나면 족하리라.

그러면 드디어 말할 수 있으리라.


나도 ‘끝내주는 인생’을 살았노라고.

길에서 만난 그대들과 시간을 부비며

보고야 만 풍광들,

바람과 함께, 바람 속에 피어난 꽃들과 나무,

날리는 씨앗들과 뿌리내리거나

사라져간 작고 큰 생명 속에 묻어온 세월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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