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고랑에서 만난 하늘이라...
농사를 업으로 짓는다는 건 먹고살기 위함이다. 자기를 먹이고 식구를 먹이고 삶을 연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되바꾸거나 사기 위해 이웃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팔기 위함이다. 가수가 노래하고 연주자가 연주할 때 들어 줄 이 없는데 지속가능하겠는가? 농사도 마찬가지. 다른 거로 생계를 이어갈 방편이 따로 있는 반농반X라는 운좋은 케이스 아니라면 팔려야 가능하다. 땀 흘려 벌어먹고 사는 걸 소원했고 땅을 살리는 가치가 중요했어도 그렇다.
내 대학원 논문 담당 교수였던 분이 내가 시골서 농사짓는다는 말씀을 들으시고는 친구한테 말씀하셨단다. ‘유상이는 시골서 전원생활한다지?’라고.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아직은 파릇한 40대 초반이나 중반이었으리라. 푹! 웃음이 볼따구에 복어처럼 배어 있다 한꺼번에 터져 나왔는데, 듣자마자 첫 생각은 당신이 전원생활을 알어? 였다. 아니지, 전원생활이 아니라 농부의 삶을 알어? 였다. 새벽이면 눈 떠서 식구들 밥 차려 먹이느라 종종걸음, 먹자마자 치우고 애들(어릴 땐 집에서) 돌보고 크면 유치원이고 학교 보내지만 짬짬이 밭으로 논으로 헤집고 돌아다니던 쳇바퀴 생활을. 저녁 어두워지기 전 들어와 식구들 밥 준비하고 마저 일하다 들어와 먹고 치우고 집안일에 하루가 지새는 일상을. ‘욱’이 욕지기처럼 올라왔다.
안다, 알어.
이제는 안다. 도시의 팍팍한 삶을 사는 그대들이 꿈꾸는 전원생활은 ‘전원생활’ 잡지에나 나올 법한 잔디가 초록초록 깔리고 철마다 이쁜 꽃들이 살랑대는 정원이 있고, 징검다리 같은 돌판이 깔린 사잇길을 밟고 들어가 만나는 그림 같은 집, 그건 화보에나 나오지. 그걸 다 갖추고 사는 전원생활자는 시골 인구의 몇이나 될까나? 꿈꾸나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 그림이다.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다르겠지. 나 같은 과정 점프하고 바로 준비된 듯 깔끔하고 멋진 정경으로 풍덩하리라. 못갖춘마디인 삶은 길게 허덕이고 살았다.
돌이켜 보면 오래 허덕이고 오래 뺑이질 친 허구헌 날이 고되었어도 일하는 근육을 키웠고 일하는 감각을 깨우고 일하는 사람의 단내나는 팍팍함을 알게 했다. 연대감은 함께 일해 본 경험에서 나오고 굽이치는 골목마다 언어를 키운다.
정신없이 일하다 허리 한 번 피며 마주친 하늘엔 마주한 적 없는 구름이 펼쳐져 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밭고랑에 주저앉아 넋을 잃던 그 순간이 내겐 최고의 전원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