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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작은 땅의 야수들>-원제 <시간과 사랑> 김주혜 작

by 조유상

별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밤하늘을 이고 빈 뜰에 서 있다. 검푸른 회색빛 하늘.

책을 다 읽은 (어젯)밤.

읽으면서 크게 울림이 오지 않았건만 다 읽고 책장을 덮는 순간, 납작 엎드려지는 마음. 제힘만으로 살지 않은 하루하루가 이불 덮듯 나를 덮어온다. 무겁지도 얇지도 않다. 매일 매 순간이 그랬구나. 숨 들이마시고 내쉬는 모든 순간이 남의 덕이었고 남에게 힘입고 빚진 세월이었다. 빚지지 않고 살았다고? 어디서 그런 발칙한 생각을 했던 게냐?


옥희, 저를 먹어버리고 싶어 욕망하며 자위하던 인간이, 그것도 그냥 타국이 아니라 원수의 나라 일본군이었다 사업가로 변신한 자로부터 건네받은 돈 천 원. 그 돈과 함께 건네온 ‘살아 남아라’는 말. 그 돈 반절로는 친구 연화를 구해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제주로 와 정착하는데 쓰게 된다. 돈은 돌고 도는 거고 이 땅에서 배불리며 얻어 가진 돈이니 그게 뭐 대수냐 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한 번 안아주는 걸 기대했던 것과 달리 돈이 주는 생명줄을 건네고 받았다는 역설이 놀랍다. 아마도 흔한 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체화되었다고나 할까.

김성수와 이명보, 한철과 정호, 이편과 저편으로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으나 선악의 단순구도로 가르지 않는 마음을 읽는다.


대좌에게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당한 후 임신해 입과 함께 세상으로 향하던 마음의 문에 셔터 내렸던 월향, 원수의 아들을 잉태하고 죽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생명 하나를 받아 키우던 월향은 미국인과 결혼해 고국을 떠난다. 떠나게 되는 이들은 다 사연이 있다.

전쟁이라는 거대 폭력, 일상에서 자잘하게 이어지는 폭행과 폭력이 내겐 언제나 잔상으로 남는다.

거지에서, 지금으로 말하면 조폭 깡패 두목으로 살다 명보를 만나 독립운동을 도와 살아가던 정호는 미꾸라지의 증언으로 인해 감옥에서 사형을 당한다. 어린 기생이던 옥희를 처음본 순간부터 마음에 품고 사랑하며 맴돌았으나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을 실어 나르던 인력거꾼이던 한철, 기생이던 옥희는 그를 도와 공부시켜주고 자신감을 찾게 해 주었다. 헌신하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더니 그는 옥희를 사랑했으나 안동 김씨 장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옥희에게 빨대 꼽고 살다 사랑을 버리고 계급상승 욕구로 인해 서희와 결혼해 버린다. 물론 그 자신 성실히 노력하긴 했지만 틀 안에서의 성실이다. 부르조아 김성수의 사위가 되어 자동차 사업을 최초로 시작하며 멀쩡하게 잘 살아간다. 그를 미워할 수 없지만 좋아할 수도 없다.

양심이나 죄책감보다 우선되는 생존, 그 엄중한 현실 앞에 누구도 ‘~해야 한다’는 당위를 잣대로 삼을 수 없다만 안타까움과 바람은 읽는 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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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주에 온 이후 우연히 맺게 된 책모임, ‘책머들’이 있었다. 서귀포도서관에서. 새벽에 눈 떠 설레며 잠시 적어둔 글에 이어 모임이 끝나고 마저 쓴다.


30여분 차로 달려가 처음 만나는 다수 앞에 설레고 떨렸다. 이게 뭐라고, 이 나이에? 우습지만 그랬다. 30대로 보이는 이가 두엇,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만 40~70대까지라고 했다. 비슷해 보이는 또래도 있는 거 같고. 처음부터 500쪽이 훨씬 넘는 소설을 택하고 잘 읽힐까 의심되는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 책도 중간에 있는 거로 봐서 이분들 독서량이 만만찮구나 싶다. 과연 평이나 느낌에서 날카로웠고 비슷한 점이 제법 많았다.

일단 영어로 쓰인 걸 번역했고 번역투를 싫어하는 나로선 역시 박경리의 <토지>(중간에 몇 분의 입에서도 나왔듯이)를 따라올 수 없는 아쉬움이 있는 책이다. 우리 세대가 이런 걸 느꼈다면 영어 원서로도 읽고 온 젊은 친구는 오히려 영어를 읽고 나니 우리말 번역이 참 매끄럽게 번역된 걸 알겠다고 한다. '내용은 옛날+의식은 현재'라는 점에서 지금 젊은 층에게는 이물감 없이 다가오는 표현이 읽기 좋았다고 하니 새로웠다. 내게는 옛이야기를 양장 입고 하는 거 같아 뭔가 퓨전 느낌(회원 중 하나도 말했듯이)이었는데 저렇게 볼 수도 있구나. 다채로운 시각은 맛있는 뷔페같다.

더구나 이 책의 원제는 ‘시간과 사랑’이었단다. 한 회원이 해 준 그 말을 들으니 다들 아하 한다. 나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출판사가 잡아낸 상업적인 제목이었던 거였군. '작은 땅' 한반도라면 '야수들은' 누구? 명보나 정호 같은? 하지만 숱하게 저항하며 사라져간 이 땅의 이름 없는 야수들을 우리는 함께 기억하게 되었다. 1910년대부터 해방 전후까지로 이어지는 인물중심의 이야기다. 한 회원은 3.1운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미 목소리만큼이나 울림이 컸다. 우린 모두 역사에 기대고 먼저 산 이들에 빚진 존재들 아닌가.

책을 읽으며 탄핵을 두고 좌우로 날카롭게 갈라진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랑 맞닿아 있음도 서로 발견, 책을 덮고 나서 한편으로 저항의 삶을 살던 사람은 여전히 불행하게 죽거나 하는 상황이 우울하다는 말을 들으며 그의 느낌이 파장으로 다가왔다.

호랑이 이야기,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으로 상징하기도 하는데, 실상 호랑이는 많지 않고 호랑이 보다는 표범이 더 많았단다. 호랑이, 표범, 삵까지 다 호랑이 과에 포함된다고. 근데 우리 조상들은 유독 호랑이를 좋아했고 호랑이 이야기는 아주 친숙하고 자주 등장하는 이야깃감이기도 하다. 함부로 살육당했지만 정작 호랑이나 사자 등 맹금류는 배고플 때만 사냥하고 절대 장난삼아 사냥하지 않는다. 재미삼아 하거나 돈이 되어 하는 건 인간 뿐이다.


한 분은 이야기 서두와 끄트머리까지 이어지는 물건, 정호가 지니고 다니던 '담뱃갑과 은가락지'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에게 소중한 건 무엇이 있을까? 삶을 빚지고 다시 다른 생명을 살려주기도 했던 담뱃갑과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일한 물건을 대물림 하고 싶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그 얘길 들으며 내겐 물건으로 유의미한 게 뭐가 있을까? 뭐를 물려받았고 뭐를 물려줄 수 있을까? 찾아보고 싶다.


젊은 회원 하나가 책에서 남성들에 비해 재능도 훨씬 많은 여성이 상대적으로 너무나 저평가된 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역사상 여성의 이름은 늘 뒷전이지 않았나.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며 살림을 맡아 하는 가장 중요한 가장이 여성인데, 의례껏 그래야만 하는 장면처럼 나오기도 한다. 식사 준비로 분주한 여성들, 가만히 앉아 받아먹는 식탁 앞 부동인 비자발적 남성들.

둘 빼고 다수가 여성인 우리 모임에서 여성 자신 안에마저 다 파내지 못한 남성 우월주의나 가부장적인 면까지 들여다보는 예리함이 있어 상쾌했다.

마무리가 제주에서 끝나는 걸 두고 누군가는 그런 말도 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팔리는 이야기가 되려면 한반도를 다 훑고 내려와 제주로 마감된 게 아닌가 하고. 핫한 제주라는 키워드가 끼워진 게 그래서 일거라 추측하며. 추운 지방에서 남쪽까지 이어지게 고루 조명하여 제주도도 한국의 중요한 한 부분이니까라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상업적인 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지만, 그것보다 현재 내가 제주에 살고 있어서 그런가 제주로 이주한 것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것, 더군다나 언제든 갈 수 있는 뭍이 아니라 물로 동그랗게 에워쌓인 섬으로 옮겨왔다는 거, 거기다 폭력에 시달려 내팽겨쳐진 아이를 받아 안아 키우게 되는 마지막 설정이 내겐 소중했다. 소중한 생명을 받아 안고 이어간다는 거, 결국 살아남으라는 미션을 해 냈구나, 내겐 희열이었다. 떠군다나 추운 곳에서 바람은 심하지만(오늘도 그랬다!) 따뜻한 곳으로 왔다는 것의 상징성도 함께. 물려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건 '따끗한 온기' 아닐까?

우리 모임 안에는 제주 토박이와 안 토박이(흔한 말로 육지 것들-앞으론 나라도 이렇게 쓰지 말아야지!)가 섞여 있다고 했다. 무엇에나 날 세우고 금 긋는 거 별로인 나로선 이렇게 섞이는 문화가 마음에 든다. 자꾸 만나 이야기하고 밥 먹고 주장도 하고 듣기도 하다 보면 다름을 차차 더 많이 받아들이지 않겠나. 토각질 나는데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물안개 스며들 듯 납득이 가(든 안 가든)며 인정해 가는 그런 소통이 가능해야 안심이 되고 아름답지 않은가. 전제는 귀를 열기, 말을 독점하지 않는 것, 잘 못 들었으면 돌다리 두들기듯 확인해 묻는 것. 판단의 혀를 잠시 누르고 몸과 귀를 기울이며 그 앞에 머무는 거 아닐까?


오늘도 숱한 우연 속에 새로운 만남, 뿌듯하다. 어찌나 책 읽고 귀 기울이느라 용을 썼던지 피곤하다. 아, 물론 새벽에 일찍 깨는 바람에 충분히 잠 못 잔 게 젤 큰 원인이었겠지. 서귀포도서관 모임 끝난 뒤 내 옆에 앉았던 이가 내가 한 말 중, 비폭력대화 모임 오래 했다는 말에 솔깃해한다. 밥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신기하게 처음 보는 내 앞에서 왈칵하며 눈물 방울방울 흘린다. 화가 많은 자신을 여는데 마음이 찌르르했다. 이런 연결이 나를 살게 하는구나. 인연이 다정하기도 하지.


서귀포도서관->동부도서관->제남도서관까지 주루룩 이어진 도서관 나들이로 한 짐씩 싸 들고 오니 몸까지 묵지근하다. 무거워진 몸을 한 시간쯤 실신하듯 자고 나니 훨 낫다. 다채로운 사람들 말과 느낌들이 내 안에 채곡채곡 쌓이고, 맛있다.


이 하늘 아래 나는 인연 빚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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