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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을 좋아한다

미주알고주알의 재발견​

by 조유상






by조유상Feb 27. 2025



'예민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친구의 말.

자기는 그래서 내가 좋다고.

나의 예민함을 알아본다면 그도 역시 예민한 거지.

예민하다는 어떤 것에 대한 반응 정도를 말하는 거 아닐까?

관심사와는 좀 다른 거 같다.

예민하지 않아도 관심사가 통하면 얼마든지 신나게 떠들고 어울릴 수 있다.


관계에서의 예민함은 말 없는 시간에 더 잘 느낄 수 있다.

몸을 통과하는 언어와 언어 틈새에서 관계의 흐름과 단절, 혹은 경계를 발견한다.

소통의 기본은 그 흐르는 기류 안에 모두 들어 있다(고 본다).

상대의 몸 언어를 잘 듣고 느끼고 말할 때 예의를 발견한다.

그 예의에 무감한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며 선을 긋게 된다.


물론 둔감해도 남을 찌르는 말 없이 유쾌한 친구는 무조건 OK다.


근데 '관계에서 예민한 사람'이라고 적고 보니 이런 사람 다 좋아하지 않나...? 하려다 보니, 아니다.

예민한 사람 싫어하는 이도 꽤 되니까.


뭐 그런 걸 꼭 짚고 넘어가야 되냐?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 필요 있어?


넘 까칠한 거 아니냐?


좀 둥글둥글 살아라.


남 입장도 좀 생각해 줘라...


대충 좀 넘어가면 안 되나? 등등.

이렇게 예민한 사람을 꼬집어 충고하려는 사람은 제법 많다.

자기에게 같은 경우가 닥쳤을 때 그가 똑같이 생각하고 말한다면

그는 무던하거나 무감한 사람이므로 그냥 넘어가도 된다....? 아, 아니야.

서로 입장이 다르고 예민한 지점이 다른 걸 충분히 미주알고주알 할 필요 있지 않을까?



이때 ‘미주알고주알’은 마치 방지턱과 같다.

더 큰 싸움과 결별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일단 크게 덜컹이지만

그 다음으로 넘어가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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