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끝 끝 끝~~
어린 시절 우리는, 보고 듣는 것이 달랐다.
보는 건 화면이 아니라 책과 자연이었다.
공부보다는 놀이가 중요했다.
라디오를 들었고 자연의 소리를 들었다. 방음이 거의 안 되는 들창 밖으로 들리는 빗소리는 자장가이자 마음을 적시는 소리였고 흔들리고 나부끼는 바람과 마음은 친구 되어 함께 움직였다. 창밖이 덜컹대면 마음도 덩달아 덜컹대던 시절, 위안을 주는 것은 침묵의 소리와 책 넘기는 소리였다.
화면이 휙휙 움직이는 것보다 책을 굽어보는 시간이 길고 다정했다. 손끝으로 넘기는 책갈피마다 우러나는 묵은 냄새는 향기였고 눈길이 머무는 활자 안에 움직이는 마음은 요동치고 춤추고 울고 웃었다. 손으로 만져지는 것들과 곰삭혀 만나고 그 안에 꿈을 고스란히 접어 넣거나 펴기도 했다.
어렸을 적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저녁일이 다 끝나고 난 여름밤이면 앞마당에 멍석을 폈다. 앞집과 그 옆집도 나와서 말려두었던 쑥대로 모깃불을 피우면 매캐한 연기 속에 이웃들과 부채질하며 두런두런 이야기자리를 펼치곤 했다. 멍석과 이야기 자리는 함께 펴졌으니 그 멍석은 아라비안나이트의 깔개만큼이나 신비로웠다. 이야기를 태워 나르는 양탄자. 울퉁불퉁한 멍석자리가 등에 배겨도 엄마 허벅지를 벤 나는 그때만큼은 별도 되고 달도 되어 하늘로 붕 날아올랐다. 엄마 아버지가 먹고사는 일로 다툼질할 때완 달리 이런 자리는 평화로웠다. 소소한 이야기와 웃음이 있는 멍석은 별밤을 수놓는 이야기책이었다.
엄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어서 가끔씩 배어나는 비유와 속담을 적절히 섞어 재미를 더했다. 엄마가 불러주는 섬집아기 자장가도 좋았지만 엄마를 졸라 듣는 옛날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엄마는 농사짓고 애 넷 키우느라(일곱 명 중 위 세 명은 어릴 때 잃어버렸지만) 허덕이며 살았으면서도 13살 위 언니가 고등학교 다닐 때 빌려온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날 업어재우며 마루에서 읽던 사람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엄마가 뭐든 배우려고 하는 지식욕이 많았던 사람이었고 이건 작은오빠와 내게 바로 유전된 듯하다. 많이 읽고, 읽다 보니 쓰고픈 마음이 우러나는 건 물 흐르는 원리와 다르지 않았다.
엄마 이야기 끝에 아쉬운 점 딱 하나는, 늘 꼬리 물고 나오는 교훈이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면 별책부록처럼 따라붙을 그놈의 교훈 덕에 슬슬 심호흡을 하며 귀 닫을 준비를 하곤 했다. 리어왕 이야기를 해 주면서도 막내딸 오필리어가 부모 모시는 걸 특히나 강조했다. 엄마의 입도 틀어막을 겸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나는 서둘러 말했다. 엄마, 엄마나 아버지가 나중에 혼자되면 내가 꼭 모시고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하고. 이 말이 씨가 되어 결국 막판에 2남 2녀 중 막내인 내가 아버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5년간 모시고 살았으니 말에 책임은 진 셈이다.
그런 엄마 덕에 멈춘 게 있다. 우리 아이들한테나 바로 앞 초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책 읽어줄 때도 교훈이나 느낌, 주지도 묻지도 않았다. 그건 온전히 듣는 이의 자유로운 몫이니까.
어느 날 초등학교 교사였던 작은올케가 자기 애들한테 책 읽어주고 너는 뭣을 느꼈니? 하기에 깜짝 놀라 언니에게 따로 간곡하게 부탁한 적도 있었다. 내 경험을 이야기해 주니까, 언니는 아,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을 못 해봤다며 바로 받아들여 주어 고마웠다. 경험상 교사들은 대체로 자기도 모르게 습관처럼 교훈을 떠먹이려 한다.
나는 다만, 재밌게 읽어주고 천천히 책장을 닫으며 운율 있게 ‘끝 끝 끝~~’하고 가슴 안에 이야기가 소용돌이치며 여운이 남게 했다.
이 마무리가 좋았던 모양이다. 큰애가 풀무고등학교 다닐 때 어느 날 허겁지겁 집에 달려오더니(우리 집은 애들 고등학교에서 걸어 10여 분이면 오는 거리) 자기가 어렸을 때 엄마가 읽어주던 책들을 챙겼다. 왜? 무슨 일이야? 했더니, 국어수업 시간에 돌아가며 잠깐씩 1일 교사가 되는데 자기는 이번에 애들한테 책을 읽어줄 생각이라고.
나중에, 수업 잘 마쳤어? 물었더니 그림책 몇 가지를 챙겨가서 교실에서 책상과 의자를 다 가장자리로 돌리고 집에서처럼 편안히 바닥에 이불 하나씩 덮고 눕거나 앉게 하고 책을 읽어주었단다. <백만 번 산 고양이>와 <아주 특별한 점심> 또 다른 책 한두 권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을 읽어주고는 내가 했던 그대로 ‘끝 끝 끝~~’하며 마쳤단다.
뿌듯했다. 큰아들이 <백만 번 산 고양이>를 집요할 정도로 읽어달래서 수없이 읽어줬는데 잊어버릴 만큼 뒤늦게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근데... 그 책 읽으면서 너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많이 읽어달랬어? 하고. 그랬더니 가만히 고개를 갸웃하더니, ‘자기로 사는 게 제일 행복한 거 같아, 그게 제일 좋았어’라고. 아하, 그때 나는 분명히 알았다. 여운이 자기 안에 여울져 감돌면 몰랑한 아이들은 가슴으로 이야기를 끌어안고 뒹굴며 느끼고 스스로 깨닫는다는 것을.
‘독후의 감感’을 의무처럼 들이대지 않았던 게 참, 다행이었다. 엄마가 내게 사약처럼 떠먹여 준 교훈 덕에 마음 문 빗장 걸었지만, 그 덕에 나는 아이들한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다른 평론가의 도움 없이 책과 영화를 읽고 쓴다. 도움이 끝내 필요할 때만 잠시 참고할 뿐, 오롯이 나의 질료(質料)로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모두 엄마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