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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한 모금

시 한 모금

23. 숲을 걷다

by 조유상

맨발로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첫 기억은 따끔거릴 뿐

삼나무 마른 가지가 낯설어 발바닥은

나도 모르게 달팽이처럼 오므라들었다


한 바퀴 간신히 돌고

두 바퀴째부터 양말을 덧신는다

오래 신발에 길들여진 발은

저절로 자연을 내뱉었다


양말 하나 덧댄 발바닥은

삼나무 작은 솔방울도 견딜만하다

맨발의 감촉을 잊은 발은

자연을 아프다 한다


그래, 아무리 맨발 걷기를 찬양해도

내 발에 맞춤이 우선이다

신발 벗은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깃장으로 맨발부터 들이댈 거 무어랴

촉촉이 젖어드는 양말에 내 발도 숲에 젖어간다


양말을 신고 걸으니

땅만 보던 고개가

저절로 위로 향한다

어지간한 나무뿌리며

잔돌멩이도 몸을 거스르지 않는다


숨 한 번 크게 들이켜고

숲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삼나무 편백나무 동백나무

털머위 수국 고사리 우거지고

땅에 바짝 엎드린 어린 마삭과 이끼마저

발아래 고요하다


납작 엎드린 풀과 이끼

밟혔다 울지 않는다

시치미 똑 떼고 다시 일어난다

누가 지나갔어도

흔적 없는 마음

구름만 유유하다



이렇게 무한정 걷다 보면

어느 결에 나는 삼나무도 되고

편백나무랑 동백이도 된다

이러다 애기 동백으로 피어날라

이러다 애기 편백으로 돋아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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