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주에서 몽골로 일상과 일탈 사이
제주를 떠나는 기분이 이리 홀가분하고 설레기는 첨이다.
으음, 많이 힘들었던 게야. 나를 위안할 수 있는 건 나야. 애틋하고 쓰리고 아팠던 것들 싹 다 잊고 돌아오리라. 맑은 몽골의 별님들과 마주하고 초원을 말 달릴 생각에 저 구름 위로 붕붕 나르는 기분이다.
그래, 떠나는 건 역시 좋은 일이군. 버리고 잊을 건 잊고 마주할 웅장한 자연의 품에서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닌 티끌 같은 것들은 후욱 불어 날릴 수 있으리라. 이 순간부터 나는 자유다.
천천히 순회하던 비행기가 속도를 내며 육중한 몸을 달려 나갈 때 내가 달려 나가는 듯 심장이 덜컹거렸다. 땅을 구르듯 달려갈 때의 짜릿함을 사랑한다. 요 짧은 순간이 지나면 바로 몸이 붕 떠오르며 살짝 어질머리나는 순간도 잊을 수 없다. 한 경계를 벗어나는 일탈은 일상을 담보로 하나 마주할 새 세상에 대한 설렘은 그 담보를 박차고 나아간다. 말처럼 힘이 있다.
창밖 풍경은 어느새 바다와 하늘 경계 없이 구름이 만들어준 운평선 너머로 해가 아직 훤하다. 뉘엿뉘엿 느리게 창조해 내는 오늘 한정판 저녁노을을 하늘은 무심한 듯 공들여 빚어낸다.
금방 섬들이 무리 지어 등장한다. 곱게 누워 있는 섬들 사이사이 일상이 여전히 흐르련만 훌쩍 떠난 허공을 달리는 지금, 아무 의미소가 되지 못한다.
귀가 잠시 막혔다 뚫린다. 살아 있음이다.
육지를 향해 나아가고 다시 잠시 착륙이다.
김포에 마중 나온 작은 오빠 차로 인천공항을 향한다. 그리운 홍동마을 친구들과 허물없는 포옹을 한다. 언제 봐도 반가운 오랜 지기들.
보기만 해도 힐링이고 그 어떤 상황도 함께 해온 비폭력대화 오랜 친구들이다. 믿음직하고 든든하다. 웃고 떠들다 갑자기 알게 된 사실 원 플러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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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우릴 끝까지 챙기고 하다 본인 여권을 빼먹고 왔네. 남편이 하 어이없어하며 자기 아들을 바꿔주더란다. 결국 그 친구 아들이 여권을 갖고 밤을 도와 차로 달려오는 중이란다. 다들 기함을 하면서도 깔깔대고 있다가 마침 여권을 사진 찍어둔 게 있어 수속을 하는 중인데, 또 한 친구는 여권 만료기간이 6개월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 헉, 산 너머 산일세. 12월까지니까 5개월 밖에 안 남았으나 어캐 안 될까요? 우린 줌마식 대책 없는 하소연을 날리며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벌써 2년 반 전부터 계획했던 건데 1년 늦어져 겨우 천신만고 끝에 떠난 거라며 간절함으로 어필했다. 그분은 몽골 쪽에 전활 해 놨으니까 일단 기다려보라 했다.
우리 팀은 미리 저녁밥을 먹었고 따로 좀 늦게 도착했던 나는 늦은 저녁을 오빠랑 거의 다 먹어가는 즈음 그 친구가 전화를 했다. 주저주저하며 말하는 폼이 어째 장난치는 것도 같고 뭐지? 했는데 어설픈 연기를 접고 깔깔 웃으며, 언니, 됐어~~ 한다! 와!!! 순간 환호가 터져 나왔고 그렇게 우리는 간신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공항에서 다시 한번 부둥켜 안고 허리를 반 접고 아래서 위로 다섯 명이 스크럼을 짜고 인증숏을 찍었다.
줌마들의 일탈은 이다지도 어려운 것일까? 이 사건 외에도 채식주의 친구를 위해 여권 빼먹었던 친구는 메는 가방 안에 간장과 된장까지 갖고 오다가 결국 버리지 못한 우정은 그걸 비싼 비용 지불하고 따로 수하물 택배로 보내고 뒤늦게 비행기 타는 곳으로 합류해 들어왔다. 눈물겨운 우정에 우리 모두 감동했음은 물론이다.
초장부터 사건 폭죽이 터졌으니 우리 여행, 앞으로 더욱 기대 만발이다. 그 와중에 우린 하나도 흐리거나 찌르는 말 없이 서로 따뜻이 격려하고 다들 화기애애했다. 잊을 수 없는 추억 한 페이지가 덕분에 빛나게 아로새겨졌다. 몽골서 볼 별빛을 가슴마다 미리 맞이한 밤이었다.
우리가 누군가? 홍성군 홍동면의 최강, 최초 비폭력대화 팀 아닌가?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서
달콤 서늘한 비가 가이드와 미리 마중 나왔고
테를지 캠프로 향하는 내내 잊을 수 없는 기운과 구름이 우릴 앞서 가고 있었다.
새벽이 오기엔 조금 이른, 여기 시간으로 밤 3시, 우리나라 시간으로 4시에 우린 드디어 몽골 대자연 품 깊숙이 들어왔다.
오기는 왔구나,
드
디
어.
몽골이라니...
일탈은 일상이 있어야 가능하잖은가?
해보니 얇디얇은 일상의 뒷모습이기도 하더라.
오늘은 여기까지. 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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