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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기록

일상기록

12. 몽골, 홉스골에서

by 조유상

어젯밤 우리 가이드랑 기사님이 캠프파이어를 10시 반에 준비해 주기로 했다. 모닥불 주위에 빈 의자가 스무 개 남짓 빙 둘러 있었는데 우린 준비해 주신 기사까지 달랑 일곱.

바람 불어오지 않는 쪽으로 모여 앉자 가이드는 우리에게 신청곡 있으면 틀어주겠단다. 캠프파이어에는 역시 음악이 있어야지, 하는 우리말을 금세 접수한 게다.



하나둘 신청곡을 듣다 자연스레 몽골 애잔한 음악도 듣게 되고 노래하겠다고 일행 하나가 자원하기도 했다. 한참 그렇게 놀고 있는데 어디선가 어둠 속에 갑자기 몽골 전통 복장을 한 이들이 서넛 올라온다. 응? 뭐지? 했더니 컴컴한 커튼이라도 열듯 묻어올라오는 숫자가 어느 틈에 열댓 명이다. 마치 각본에 있던 듯 스스럼없이 나타나 우리 허락이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빙 둘러앉는다.


가이드도 이들과 친분조차 없단다. 그냥 노랫소리가 들려 재밌겠다 싶어 합석했다고 하는 통역의 말. 느닷없어 황당했지만 그래서 좋았다.



여행의 묘미는 원래 각본에 없는 사건과 인물 사이사이 숨어 있지 아니한가.


가족인가 싶던 그들은 알고 보니 한 직장 여자 남자 경찰들이었다. 어쩐지 애들이 없더라니...


직급 상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참, 자유롭고 유쾌하고 소탈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 앉아 말은 일일이 통하지 않아도 즐거움을 나누는 즉석 가족이 되어버렸다.



나는 가이드한테, 우리가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던 중이니 그들도 노래 한 자리씩 하겠느냐고 부탁했더니 그중 연장자가 거리낌 없이 목청을 가다듬더니 중저음의 노래를 손짓도 해가며 부른다.


무슨 내용이었냐니 고향을 떠난 이가 고향을 그리는 노래란다. 반복되는 운율에 애잔함이 스며 있다.



박수가 이어졌고 노래는 술잔 돌리기처럼 이어졌다. 우리 다섯은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을 돌림노래로 즉석에서 불렀고 이어 울림통 좋아 보이는 내 건너편 퉁퉁한 청년의 멋진 노래가 이어지고 그 옆 덩치 좋은 몽골여인 노래가 이어졌다. 우리도 뭔가 답가를 해얄 거 같아 판소리 좋아하는 전라도 출신 친구의 사랑가도 풀어졌고 우리 중 목청 젤 좋은 친구는 '북한강에서'를 답가로 불러주었다. 노래는 노래를 부르고 박수는 박수를 불러 흥을 더했다.


한참 그렇게 모닥불에 나무도 더 얹어가며 놀다 우리가 별구경 가느라 먼저 일어났고 그들은 애초부터 그 자리에 먼저 와 있던 사람들 인양 우리를 손 흔들어주었다. 서로 다정한 포옹도 하고. 뭔가 웃기는 분위기였으나 그게 또 전혀 이상하지도 않았던 시간.



우리가 호숫가로 준비하고 나가 별 보는 동안에도 그들의 노랫소리가 맑은 공기를 뚫고 줄기차게 이어졌다.


흥 많기로 한국사람 못지않은가 보다. 기대에 없던 즐거운 축제의 밤이 깊어갔다.



우리 마음은 달떴다. 우리나라는 찜 쪄먹게 더울 날씨에 여긴 춥다니 비현실 같은 현실이다.



홍성서 비옷을 색색으로 사 온 친구가 준 비옷을 덧입었더니 추위도 가시고 그채 바로 누울 수 있으니까 최고였다. 자기 긴바지를 포기하고 가져온 소풍용 깔개도 준비해 출발했다. 우리 캠프 저 아래쪽 홉스골호수에서 별을 더 잘 볼 수 있을 거 갔어 그리로 향했다.


낮이라면 괜찮겠지만 밤에 가는 길은 험했다. 숙소에서 호수는 직진 거리로 멀진 않았으나 비포장도로를 내려서자부터는 자갈길 두어 걸음 앞으로 이어지는 습지가 기다리고 있다. 제주 살다 온 나는 친구들한테 '오름'을 디디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흙이 봉긋하니 솟은 곳은 모두 그 자리에서 한순간 오름이 되었다. 각자 손마다 휴대폰 플래시불을 켜고 '거인국에서 온 듯 작은 오름 등성이마다 성큼성큼 건너뛰는 거야~ ' 하며 걸어도 습지는 도처에서 우리 발을 집어삼킨다. 운 나쁘면 노상방뇨한 말똥을 찌그덩 밟기도 한다.



그렇게 건너뛰기하며 도착한 홉스골 호수, 어머니 호수라 불리는 생명수까지 간신히 어둠 뚫고 다가간 우린 깔개를 깔고 셋이 누웠다. 천을 가져가 한 친구 눕고 다른 한 친구는 승마용 방석 가져간 걸 깔고 쪼르륵 누웠다. 비옷은 당연히 입고서.


별은 우리가 노래 시작했을 때는 성글게 보이더니 간간이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점점 더 별 볼일 있어졌고 마지막 헤어지는 12시 가까이 되어서는 은하수와 별똥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별똥별 떨어질 때마다 소원을 빌었고 보는 것 자체로 바람이 꽉 차 올랐다.



촤르륵 촤르륵 돌멩이들 사이로 바람결에 쉼 없이 물결쳐 오는 소리에 귀와 마음을 씻어 내렸다. 누운 우리들 위로 쏟아져내리는 은하수 무리와 별은 몽골, 오길 참, 잘했어를 연발케 했다.



별똥별이 쏟아져내리는 밤. 3분간 합죽이가 됩시다, 합! 하자 고요한 침묵 속 물소리만 일정히 물결주름 따라 밀려오고 밀려갈 뿐.


별무리는 우리 머릿속에, 가슴속에 아름다운 무리로 내려앉았다.



홉스골에 영롱한 별빛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밤은 그렇게 고요히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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