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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기록

일상기록

10. 농부 본능

by 조유상


어딜 가든 내 눈은 초록 찾아 두리번거린다.

풀과 나무, 숲과 식물은 내게 숨 쉬는 공기만큼 중요하니까.


텃밭이 있는 이곳에 오자마자 나는 허락을 받아 집에서 가져온 토종옥수수를 심기로 했다.

텃밭 면적이 작으니 옥수수를 스무 알 남짓 물에 불려 싹이 올라오는 걸 보고 비 오는 끄트머리 날 심어두었다.

상추는 이제 종이 올라와 막판으로 치닫고 있으니 그 아래 살짝 묻어두고 봐가며 물을 준다. 초기에 뿌리 잡을 때까지가 조심스럽고 나머지는 녀석들의 힘을 믿고 기다리면 된다.


어기찬 옥수수 뿌리는 땅 위로 들썩하니 굵은 힘줄처럼 뿌리를 뻗어 내리기 마련인데, 손가락 구부린 모양으로 빙 돌아가며 나무젓가락보다는 좀 가는 흰 뿌리를 거침없이 땅에 콕콕 박는다.


촉이 나와 있던 아가들은 이틀 만에 연초록 싹 두 잎이 몸을 배배 꼬며 수줍은 듯 얼굴 보여준다.

땅은 거짓이 없다.

콩심은 데 콩 나고 옥수수 심은 데 옥수수 난다.


토종옥수수는 잘 익은 건 진한 보랏빛으로 크기는 보통 옥수수의 절반이나1/3 가량 밖엔 안 된다. 개량종은 옥수수 한 대에 한 개씩만 남기고 곁에서 올리는 작은 2,3째 열매는 솎아주지만 요 녀석들은 워낙 작으니 그냥 그대로 두고 키운다. 일반 옥수수를 심을 때도 우리는 한꺼번에 다 심지 않는다. 처음엔 한 이십일 간격으로 나중엔 한 보름 간격을 띄워 심는데 그렇게 해야 익는 속도대로 따서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나중에 일주일 간격을 띄우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일단 뿌리내리고 자라기 시작하면 익는 속도가 비슷해져 시기를 적절히 조절해야 냉동실을 가득 채우지 않고 따는 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


옥수수는 반경 4킬로 정도까지는 수정될 때 바람에도 가루가 날아가 잡종이 되기 쉬운 작물이라 일반 옥수수를 심을 때 토종옥수수를 심으면 곤란하다. 두 종류를 같은 밭자리에 심을 땐 그래서 넉넉히 시차를 두어 3주나 한 달 후쯤 토종옥수수를 심곤 했다. 토종옥수수는 키도 아담하니 작고 열매도 커야 엄지검지 한 뼘이 채 될까 말까 하니 쪄 먹어도 만만해서 손이 쉽게 가고 맛은 여느 개량종 옥수수에 비할 바가 아니다. 또 넘들이 옥수수 다 먹고 없을 늦가을에 따먹는 고 맛이라니. 찰지고도 찰지다. 이웃과 나눠먹어도 더없이 정 붙이기 좋은 식물이다. 좋은 걸 나눌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미리 흐뭇하다.



일반 옥수수는 이르면 4월 중순~말 사이에 다 심고 늦어도 5월 말이면 파종과 이식이 끝난다. 하지만 토종옥수수는 잘아서 그런지 7월에 심어도 수확이 가능하다. 추위에 더딘 여기 제주 날씨를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아차차, 바람... 그게 복병이겠구나. 바람막이를 뒤에 두고 심어야겠다. 여하간 지금 싹이 나오는 모습만 봐도 신통방통하고 귀엽다. 못 먹으며 바라보는 재미라도 있겠지. 자람을 지켜보는 건 동식물이든 사람이든 한결같은 기쁨이니까.


농부 본능은 흙만 보면 눈이 번쩍!

오늘도 초록만 보면 무조건 환호하는 나는,

천상 농부다.


상추 사이사이 뾰족하게 잎 내민 게 토종옥수수 새싹이다.

#흙사랑 #농부본능 #자람 #자람을보는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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