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들을 키우며

3. 놀이 부자

by 조유상

농부의 짬은 겨울이다.

내가 잘 아는 언니 하나는 ‘하영 엄마, 자기도 냉이를 심어’ 우리같이 농사지어선 돈이 별로 안 되는 걸 아는 언니는 수입이 짭짤하다며 냉이를 권했다. 그 언니는 이름하여 ‘억척어멈’이다.(내가 지은 이름) 아들 하나밖에 없으면서 뭘 그리 돈을 열심히 버는지 놀랄 지경이다.

해마다 늦가을과 겨울 초입이면 배추를 절여 절임배추를 팔고, 김장을 해서 팔기도 한다. 초봄엔 고추장을 쒀 팔고 가을이면 밭을 갈아 봄에 받아놨던 냉이씨를 뿌린다. 가을과 겨울 사이 짬짬이 냉이밭을 골 빠지게 매 주고 추울 때 캐야 냉이값이 좋으니 미니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고 안에 들어가 바람을 피해 바지런히 냉이를 캐서 천만 원 넘게 돈을 번다. 냉이로 천만 원을 벌려면 근 두어 달 매일같이 고생해야 한다. 그 시린 겨울에 일일이 호미로 캐는데, 아 참, 캐기 전에 미리 며칠 전부터 비닐을 살짝 덮어놔야 한다. 그래야 땅이 얼지 않아 호미질을 할 수 있으니까. 캔 걸 흙 얼추 빠지게 서너 번은 씻어야 한다. 씻은 걸 물이 쪽 빠지게 하면 근수가 적게 나가니까 적당히(요건 언니만의 노하우!) 빼서 동네를 도는 상인들한테 넘기면 된다.


받은 돈으로 뭐를 하냐? 눈매가 매서운 언니는 쌈도 잘하고 일도 잘한다. 돈 벌기는 물론 쓰기도 창의적이다. 쌍수도 하고 엉덩인지 어디 살을 떼다 홀쭉한 볼을 메워 갑자기 통통해지기도 한다. 어쩌다 보면 얼굴이 바뀌어 있다. (헉, 누구세요???) 언니는 신이 나서 자기가 벌어 명품백도 사고 성형도 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는 언니의 냉이 영웅담을 듣느라 넋이 나간다. 그 언니의 끈덕진 권유에도 나는 듣고 깔깔대기만 하다 돌아온다. 언니가 악착같이 벌어 자신을 위해 쓰는 그 멋짐에는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는다.

언니의 돈 쓰는 방식이 참 유쾌 상쾌 통쾌하다만, 겨울이면 돈 벌 생각보다는 놀 생각부터 하는 나로선 가 닿을 수 없는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 겨울은 숨겨놓고 하나씩 몰래몰래 꺼내 먹는 곶감 같은 시간이다. 평소에 바쁘다고 미뤄둔 걸 서리서리 펴낸다. 우선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고 풀빵구리 드나드는 생쥐처럼 도서관을 다니며 미뤄뒀던 책을 수북이 쌓아두고 읽기도 한다. 옷을 만들거나 뜨개질 삼매경에 빠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한테 소홀했던 시간이 젤 아쉽다. 일하고 들어와 지쳐 허덕이며 저녁밥을 해 식구들과 먹고 설거지하다 보면 아이들은 엄마를 부른다. 엄마, 안아줘, 엄마 책 읽어줘, 엄마 등 긁어줘... 엄마 엄마 엄마... 왜 아빠는 안 부르고 조무도록 엄마만 불러대는지.

‘잠깐만’이 입에 붙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 아찔해지는 순간이 있다. 얘들이 불러대는 이 시간은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는데... 하며 설거지를 미루고 손을 쓱쓱 닦고는 졸린 눈의 애들 옆에 가 엎드린다. 책을 펼쳐 읽어준다.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는 찐드기과 아들들은 같은 걸 더 읽어달라고 ‘또또또’를 외친다. 이제 고만~! 엄포를 발포하고 싶다가도 이왕 엎드린 거 포기하고 더 읽어준다. 엄마도 책 읽고 싶다고요!!! 속에서 소리치는 내 목소리는 누가 들어주나요? 어디 엄마 뻥튀기 하는 데 없나요? 열 명, 아니 세 명, 아니 딱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으련만. 찾아봐도 소용없는 도플갱어는 무심하다.


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 잠깐만을 외치며 설거지에 매진하다 보면 자울자울하던 아들들은 고만 꿈나라로 가버린다. 그런 나날은 얼마나 많았으랴. 설거지에 엄마를 뺏긴 서운함을 안고 잠든 아이를 보면 짠하다. 겨울은 고런 짠함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화투를 싫어하는 남편이었지만 우리가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떠냐고 구슬려 화투놀이는 우리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12개*4개, 총 48장의 화투짝. 송학부터 비까지 4개가 한 짝을 이룬다는 걸 처음부터 알지는 못하지만 놀다 보면 애들은 어느 틈에 감 잡는다. 요놈들을 싹 다 뒤집어 놓고 하나씩 짝을 찾아 맞추기 놀이부터 오간 떼기며 민화투에 고스톱까지 골고루 섭렵한다. 온라인에서 하는 화투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 안 보이게 서로 잘 펴 들어야지, 가끔 편 먹기도 하고 상대 패 넘겨짚기며 꼰지르기도 하고 정보를 슬그머니 흘리기도 한다. 지면 팔팔 뛰거나 아쉬워 우는 아들들을 나는 대놓고 놀려먹고 아빠는 슬그머니 져주기도 한다. 화투판에 짝짝 갈겨대며 쪽쪽 붙기를 바라는 마음도 같이 던져댄다. 기상천외한 말들이 날아다닌다. 비풍초똥삼팔은 화투판에선 기초 언어다. 인정사정없는 화투판이 되어 엉엉 울기도 하고 깔깔대며 아이스크림 사 오기 내기도 한다. 내기를 하며 자기 마음 다스리는 법도 배운다. 지들이 이길 때까지 하자고 떼를 써 나중엔 눈이 벌건 파김치가 되기도 한다.

화투짝 뒤집기 놀이를 하며 아이들 눈이 빨라지고 기억력이 발돋움한다. 처음엔 다섯 살 위인 형에게 늘 뒤지기만 해 시무룩하던 막내가 승부욕이 발동하는지 어느 순간 차차로 따라먹는다. 못하면 징징 짜고 울던 녀석이 가끔은 형을 이겨 먹기도 하고 우리를 앞지르는 건 순식간이다. 박수와 장난 사이 희로애락이 꿈틀댄다.

그런 게임이 화투뿐이랴. 공기놀이, 다이아몬드게임, 윷놀이, 실뜨기, 딱지치기, 다리세기 놀이, 사방치기, 팽이치기, 비사치기, 오징어찡, 지둥세(이건 기둥을 충청도식으로. 둘씩 편먹고 기둥을 중심으로 잡으러 다니는 놀이, 주로 여름 달밤에 나가 뛰어놀았다.)

윷놀이,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놀이로 우리 집만 특별히 특화된 게 있다. 퐁당 빠지는 지점을 윷판 세 번째면 꺾어져서 두 번째 동그라미에 표시하고 홍동(우리 동네)이나 학교라 칭한다. 윷가락에 뒷도와 달리 말표시를 해 놓고(뒷도와 같은 방식) 말을 던져 뒷도처럼 그게 나오면, 돌아다니던 말이 없을 땐 출발도 못하고 말이 있을 땐 다 나갈 지점에 있어도 뒤로 간다. 시작점 쪽에 있었으면 껑충 뛰니 월반을 가능케 한다. 거기에 내 말이 있을 때 상대편이 똑같이 홍동이 나오면 그걸로 잡지만 한 번 더는 없다. 거기 말이 있다가 운 나쁘게 하나 앞서 가던 말한테 뒷도로 잡아먹히기도 한다. 상상초월 재미난 순간이 엎치락뒤치락 무궁무진하니 애들과 가족 모두 신난다.

식구들 다리를 엇갈려 끼우고 이거리저거리각거리~ 이런 남편 동네 버전도 있지만, 나는 엄마한테 배운 대로 ‘한알데 두알데 삼사 나가니 은단지꽃단지 바래미쥐새끼 영남거지 팔대장군 고두레 뿅’을 하면 아이들은 자지러진다. 이거리저거리 보다 엄마가 해준 노랫말이 훨씬 더 재미지다. 운율도 무한대로 그리며 부르기만 해도 즐겁다. 다만 지역이름이 들어간 데다 거지를 넣은 게 흠이긴 하다. (기원이 궁금!) 여하튼.

추울 때 남편이 뼈대를 잡고 식구들 모두 합심해서 만든 연을 띄울 때는 압권이다. 낛시에 손맛이 있듯 바람에 휘날리며 띄워 올린 연실이 감긴 방패를 잡고 슬슬 잡아채며 멀리멀리 띄우는 그 맛은 찬바람에 볼이 터져도 아랑곳 않는다. 연을 띄우느라 달리기 하고 하늘로 붕붕 같이 날아간 느낌이 생생하다. 기타를 잡으면 ‘연’ 노래를 즐겨 부르던 남편 표정도 함께 떠오른다.


대보름이면 동네 애들 친구며 부모들 모여 논이나 밭에 나무를 모아놓고 그 위에 대나무도 올려 달집 태우기를 한다. 환하고 낮게 내려온 친근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달님달님 부르며 소원을 빈다. 대나무는 타면서 폭죽처럼 뻥뻥 터져 간을 콩만 하게 만드는 일등공신. 풍물도 치고 깡통 뚫어 쏘시개 넣고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며 돌려댄다. 아이들에게도 같은 추억을 만들어 주던 시간. 달이 이울도록 놀다 보면 오줌도 지리고 그러는 거겠지. 우리 집 옆 밭(지금은 집이 들어섰지만)에서 전선줄 태워먹을 뻔한 일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겨울이면 썰매 타기를 빼놓을 수 없다. 마침 초등학교 바로 앞집에 사는 덕에 눈썰매장이 코앞이다. 방학을 맞아 푸근히 눈이 내린 날이면 비료포대부터 챙긴다. 비료포대는 잘 미끄러지는 가벼운 썰매다. 거기에 짚을 적당히 넣으면 엉덩이 시림도 덜고 쿠션감도 만들어진다. 하나씩 즉흥 썰매를 들고 학교 뒤운동장으로 가는 언덕을 오른다. 애들 어렸을 때 이 언덕은 놀이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비빌언덕이었다. 제법 고바위진 언덕을 조심조심 올라가서 비료포댈 잡고 가파르고 긴 눈썰매장을 좌르륵 미끄러질 때의 스릴감, 최고였다. 처음엔 아들 하나씩을 뒤에 달고 하다가 느낌을 알아차린 녀석들이 차례로 독립한다. 혼자서 맛보는 짜릿함은 언덕을 오르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케 한다. 입꼬리는 찢어져 하늘을 향하고 헉헉대며 입김 허옇게 뿜고 볼은 발갛게 달아오른다.

진 빠지게 놀다 내려와 내가 끓여주는 어묵국이랑 떡볶이를 먹거나 김치부침개를 해 식구들 하하거리며 먹는 재미, 우린 그런 겨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애들이 좀 더 큰 뒤에는 집 바로 옆 냇가가 얼기만 기다렸다. 거기서 아저씨들과 우리 아이들은 같이 썰매를 타고 아저씨들은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며 시합도 했다. 모두를 아이로 만드는 빙판에서 웃음소리가 또르륵 미끄럼 타던 날들.

아이들은 기억하려나?

늙다리 에미 애비가 썰매꾼이 되어 끌어주고 밀어주던 추억을.

놀이 부자였던 우리는 해마다 그렇게 천만 원씩을 벌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이들을 키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