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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한 모금

시 한 모금

3. 숲의 시간, 스스로 그렇게

by 조유상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으니 자연(自然 )이다

부러 무엇을 어떻게 하려 애쓰지 않으니

그냥 그렇게 존재한다


바람에 흔들려 씨앗은 날고

바람이 덮어준

홑이불 흙 속

가만히 싹을 틔운다


달님 따라 파도가 일고

바람이 거세면 거센 대로

잦아들면 그런대로

물러날 때와 다가올 때를 알고 드나들 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저항하지 않는다

계획을 함부로 허물며

바람이 분다


바람에 낙엽처럼 흩날리고 싶다

구르고 싶다

밀리고 밀려 숲 가장자리에 조용히 내려앉아

차츰 마르고 시들어 바스러진다

흙과 한 몸이 되어가는 숲의 시간


망울을 터뜨려 피는 꽃도

볼을 스치는 바람 손길 알아차린다

피어날 때와 이울 때를

그렇게 피어나고

그렇게 이울어갈 뿐


누가 가꾸지 않아도

무성한 풀, 꽃, 나무

스스로 잘도 어우러진다


무성하다 스러지고

스러졌다 다시 피어날 뿐

다투지 않는다

원망하지 않는다


비 오면 비를 맞고

눈 오면 눈을 맞는다

햇살에 찡그리지 않고

햇살을 다만 머금을 뿐


큰바람에 휘둘려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그냥

그렇게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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