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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한 모금

시 한 모금

49. 헝클어진 시간

by 조유상


한 사랑이 끝나면 돌려 막기 하듯

새로운 사랑을 하라거나

반려동물을 잃으면

다른 동물로 대체하라는 조언은



도무지, 다, 쓸데없



아플 만큼 아파야 하고

울만큼 울어야 하지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무릎 꿇은 시간이 지나가고

엎드린 째깍거림이 멈추고

엉클어진 기억이 먼 훗날로 밀려가기를

굽은 등으로 기다릴 뿐



섣불리 조언하지 말기를

섣불리 그 아픔에 가 닿는 척

위로의 말, 하지 말기를

섣부른 동정의 표정 짓지 말기를



그저 부는 바람에 몸 맡기는 억새 풍경이나

짙푸른 바다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닥쳐오는 바닷가를

하염없이 떠돌다 바람결에 밀려가는 풍경을

나른히



나란히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려니



곁에서 가만히

너의 곁을 지키겠다는

굳은 결심조차 없이 가만히

그저 그렇게...



오늘도 무심히



하늘은 열리고

구름 둥실 떠 흐른다

창문 너머 햇살 높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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