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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겼어요>

by 조유상

조치원 수도원에서 수련자로 있을 때였다. 시금치 삶는 법으로도 낫질하는 방법으로도 서로 마음이 어긋난 적 있는 수련장은 늘 나를 꼬나보고 있었나 보다. 엄한 시어머니 앞에서 접시를 깨뜨린다는 식으로 두려움이 긴장으로 변해 오른쪽 어깨 밑 승모근이 어느 때부턴가 항상 뻐근히 아파왔다. 뭐가 부러진 것도, 상처가 겉으로 드러난 것도 아닌 상황이라 아무에게도 말을 못 한 채 그냥 지내왔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혹은 사순절에도, 때론 방문하러 오신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그날은 아마 성탄절을 앞두고 있던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들 신부님 방문에 미리미리 청소며 음식도 더 신경 써서 준비했다. 성체 앞에 모실 아기 예수님을 다락에 한 자매가 올라가 꺼내 들고 내려오는데 수련장 자매가 나더러 받으라 일렀다. 두 팔을 뻗어 조심스레 받아 드는 순간 손길이 어긋나 사기로 구워진 아기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박살이 나고 말았다. 나는 너무 놀라 거의 공황상태였다. 부들부들 떨면서 서 있었다. 소리를 듣고 수련장이 와서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이맛살을 찌푸리며 야단을 쳤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받냐며 호통을 치는 바람에 나는 내가 깨진 것처럼 명치가 눌리고 찢어지게 아팠다. 다행히 신부님이 다정하게 감싸주시는 바람에 급 수습 후 미사를 함께 했고 끝나고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미사 내내 눈물을 줄줄 흘렸고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온통 눈물로 얼룩진 하루였다.


예수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온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며 마을 사람들이 데리고 왔을 때 어떻게 대했는가? 그는 우리 중에 죄 있는 자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 말하고는 앉아서 땅바닥에 뭐를 쓰고 있었다. 나이 든 이부터 곰곰이 생각하다 하나둘 떠나 마지막엔 그 여인만 남아 있었고 예수는 그녀를 용서하고 보내준다.


<문제가 생겼어요>라는 그림책 작품이 떠오른다.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이다. 할머니가 수놓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새하얀 식탁보. 아이가 그걸 다림질하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바람에 식탁보가 누렇게 눌어버렸다. 안절부절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 다리미 자국을 커다란 포탄으로 변신시켜 보기도 하고 의자로도 만들었다가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 변신을 거듭하다 눈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동생이 그랬다고 할까, 할아버지가 그랬다고 할까. 아무도 모르는 데로 숨어 버릴까? 땅속 깊숙이, 아니 세상 끝으로. 하지만 갈 곳은 아무 데도 없고, 내 잘못이라 생각하던 아이.



마침내 엄마가 돌아왔고 아이는 엄마에게 고백한다.

엄마는 식탁보를 보더니, “어머, 정말 예쁜 얼룩이구나.” 하며 바늘과 실로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식탁보를 변신시킨다. 그 식탁보는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식탁보가 되지 않았을까.



자라면서 수없이 실수하고 잘못하고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도 한다. 도무지 고백하기 어려운 순간도 맞이한다. 그럴 때 이런 엄마 같은 수련장을 만났더라면, 내가 이런 엄마였더라면, 내가 이런 재치로 아이를 토닥였더라면... 그런 순간이 왜 없었겠는가?



가르침 없는 가르침으로 아이 마음을 어루만져주듯, 수련장이 나에게 다르게 말했더라면, 나는 그 수련장을 훨씬 더 믿고 따르지 않았을까?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났으려나? 문제를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고 문제를 새로운 시작점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을 일상에서 이렇게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눌어버린 식탁보가 가장 좋아하는 식탁보가 되듯 눌어버린 마음이 가장 따뜻함으로 떠올릴 수 있는 순간이 된다는 것, 누구의 하루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말은 의외로 먼데 있는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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