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채집하지 못한 날들 2

5. 살아 있는 것들 1

by 조유상

시골서 살다 보면 별의별 놈들과 다 마주하게 된다.

첫 신혼집에서 있던 일이다.


우리 두 사람 키높이에 맞는 작은 방이 마루를 공유하며 쪼르륵 연달아 있던 시골 흙집이었다. 큰아이가 7,8개월 남짓 되었을 때였나. 하루는 잠든 아이를 방에 살그머니 눕혀놓고 빨래를 하고 이것저것 하다 들여다보니 아이 머리맡에 희끄무레한 것들이 꼬물꼬물 보였다. 응? 뭐지? 다가가 보니 구더기였다. '꽃들에게 희망을'도 아닌 것이 제법 소복했다.


어디서 나온 걸까? 쓸어도 쓸어도 계속 나오는 게 아닌가. 방구석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시골집 네 귀퉁이는 지금 집들처럼 야무지게 각지질 않았다. 더군다나 우리 둘이 어설프게 한지로 도배해 놓고 보니 벽과 벽 모서리가 아퀴 딱 맞지 않게 약간 둥그스름하게 되어 있었다. 노란 장판은 반 뼘 정도 위로 뻘쭘하니 입이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구더기가 꼬물거리며 계속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꺅, 소리 지르고 싶어도 잠든 아이 깨울까 봐 소리도 못 지르고 징그러워도 남편은 직장에 가 있으니 어쩌겠는가. 나오는 대로 쓸어내고 쓸어내다 곰곰 생각에 잠겼다. 분명 뭐가 있는 건데... 어디서 나오고 있는 걸까...?


그때 머릴 탁 치듯 떠올랐다. 아하, 알겠다.

시골집 천정은 허술하니 수시로 쥐새끼들이 머리 위에서 마라톤 시합을 벌였다. 야행성인 녀석들은 낮엔 조용하다가도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다다다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운동회를 하느라 요란했다. 잠을 덧드리는 녀석들 행렬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가운뎃방 천장을 오리고 남편은 쥐끈끈이를 놓았던 터였다. 쥐가 잡혔는지 운동회는 다 끝난 거 같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거였다. 잠시 찍찍거리던 소리가 들린 적도 있었는데, 아마 그 녀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쉬가 슬어 구더기가 출몰하는 거 같았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바로 저 문제의 원흉을 처치해 주길 부탁했다. 그가 오렸던 걸 다시 떼고 쥐끈끈이를 꺼내자 참혹한 사태가 적나라하게 보일 참이었다. 나는 악! 소릴 지르며 도망쳐 나갔고 남편이 알아서 어디론가 가져다 태워버렸나 보다. 그러고 나서도 남았던 꼬물이들이 한동안 심심할 만하면 툭툭 떨어져 내리더니 며칠 후 다 떨어졌는지 잠잠해졌다.


시골집 쥐는 단골로 출몰하는 녀석이라 지금 집에도 살그머니 다니다 우리 집 냥이들에게 잡혀 모습을 마주치기 일쑤다. 냥이밥을 주지만 놈들의 사냥 본능이야 어디 가겠는가. 때론 머리가 댕강 잘린 놈, 어떨 땐 머리와 꼬리만 남고 몸뚱이만 냥이가 잘근잘근 씹어 꿀꺽 잡숫기도 한다. 아무리 냥이가 날고 기어도 한 마리 도둑을 열이 못 잡듯, 닭장 속에도 수없이 구멍을 뚫고 닭 모이통을 들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우리가 닭 먹으라고 주는 청치(덜 익은 쌀, 싸라기쌀)를 아주 대놓고 외상으로 잡숫는 중이다. 간혹 닭장 앞에 냥이가 가만히 엎디어 있으면 틀림없이 쥐냄새를 맡고 기다리는 중인 게다. 닭장 밖에 풀 사이로 난 긴 입구의 구멍 앞에 엉덩이를 씰룩씰룩하고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조금 후면 의기양양하게 턱 하니 쥐를 입에 물고 나타난다. 새끼가 있으면 새끼한테 냉큼 갖다주고 새끼들이 다 컸을 때면 나를 한 번 쓱 쳐다보곤 천천히 혼자 냠냠할 곳으로 가버린다. 이때 나 좀 주라~ 할 기세로 가까이 다가가면 필사적으로 펄쩍 뛰어 달아난다. 절대 뺏기지 않을 테다 하는 자세로.


패트와 매트. 그 기발하고 재미난 애니메이션이 우릴 웃게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녀석들을 마주칠 때마다 참, 냉정한 모습을 본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


사람은 언제 패트가 되고 언제 매트가 되던가? 어느덧 쫓고 쫓기는 인생 셈법이 없어진 인생 이 시점에선 느긋한 시선으로 다시 그들을 떠올린다.



#구더기 #냥이 #쥐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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