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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섬에서 육지로 공간이동

by 조유상

모처럼 육지를 밟았다. 4월에도 서울 다녀온 적은 있지만 집에는 들리지 않았었다.

이번엔 집이 목적지였다.

뭐 바라는 거 있어?라고 물으면 거의 응,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해줘도 돼가 답인 막내가 내가 1월 집을 떠나 제주를 향할 때, 엄마 내 생일엔 집에 올 거지? 꼭 와~! 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24살, 다 큰 녀석이 나를 뭐 기다리겠어? 약간 심드렁한 기분이었지만 막상 넉 달 만에 집으로 가는 길, 기차를 타자 살짝 설레기 시작했다. 제주서 홍성을 오려면 좀 복잡하다. 이번엔 김포도 군산도, 청주도 아니다. 광주공항에 도착했다. 남편과 작년 연말에 같이 왔다 간 적이 있어 낯설진 않았다. 육지에 닿으니 풍경부터 다르다.

광주공항 밖으로 나오니 제주에 비하면 턱없이 작아 귀엽기까지 한 야자수 몇 그루 보인다. 택시를 타고 송정역까지 가서 기차로 익산, 거기서 광천까지 와 막내가 마중 나올 예정이다. 기차라니. 웬만한 건 육지 못지않게 다 갖춘 제주에 없는 게 그거 아닌가. 풍경을 담아 빠르게 뒤로 보내는 기차에 몸을 싣는 것 자체가 새롭다. 그러고 보니 풍경도 아예 다르다.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과 호수가 있고 논이 있다. 마침 모내기철이 다가오니 오밀조밀한 논도, 경지정리되어 반듯한 논들도 갈아놓은 게 반절쯤 된다. 아니, 벌써 모내기한 곳도 더러 있었다. 한 뼘쯤 된, 이제 막 논에 이주한 모들이 모가지 내밀고 뿌리내리는 중이렸다. 논물속 하늘풍경과 주변 나무가 거꾸로 자라듯 말그라니 비추인 모습을 보며 이리 설레다니. 역시 나 농부 맞구나. 논물 가둬 흙을 경운하고 써레질하고 나면 마구 설레발치며 개구리들 합창이 우렁차게 이어진다. 기차의 철거덕 소리에 막혀 있어도 이미 귀에 들리는 듯하다.

감자며 완두콩, 심지어 고구마까지 심어진 곳도 보인다. 땅을 기름지게 하는 녹비작물을 심어 둔 곳도 보이고 그걸 베어 눕힌 곳도 심심찮게 보인다. 땅에 기대어 사는 농부의 눈에 밭작물이며 논의 모습이 다정하게 눈에 들어온다. 문득 집이 어떤 모습일까, 우리 논밭은 어떤 모습으로 누워 있으려나, 잠시 상상해 본다.

납작납작한 집들이며 우람한 산들이 연결되어 지나간다. 제주엔 오름이 여기저기 불쑥불쑥 독립적인 모습으로 솟아 있는 편인데 육지의 산들은 이리로 겹치고 저기서 또 겹쳐 연결연결되어 보이니 또 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야산마다 아카시아가 지천이다. 아카시아 튀김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광천역에 내리니 아들이 일하는 중이라 좀 늦는단다. 마침 광천 장날이라 근처를 서성이다 보니 눈에 바로 들어오는 건 모종들이다. 각종 야채 모종들이 즐비하다. 생각 같아서는 사서 제주 가져가고픈 마음이다만, 아서라 속으로 손사래 친다. 일하다 땀내 풍기며 온 막내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광천 쪽 돼지 많이 키우는 곳을 지나치며 '똥내 지독해! 바로 제주 내려가고 싶다~' 했더니 막내 왈, '고향의 냄새라 생각혀~' 한다. 아, 싫다, 저런 게 고향의 냄새라면. 물씬 제주가 그리워진다.

집에 와 남편과 끌어 안고 반가운 상봉. 치질수술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이 짠하다. 나도 해봤으니 그 고통, 잘 알지.

집에 들어오기 전 내가 살뜰히 보살피던 뜰은 풀이 제법 있지만 작약도 봉오리 조롱조롱 달고 있고 모란은 벌써 저버렸다. 닭장 앞 무화과랑 포포나무도 우쭐 자라서 놀랐다. 목련나무를 내가 없는 사이 강전정해 버린 데다 가장자리에 있던 측백마저 쓰러져 베어버렸다니 살짝 허전하다. 허전한 곳을 비비추며 컴프리, 둥굴레와 빈카가 어우러져 무성하다. 할 일이 벌써 눈에 밟힌다.

집안에 들어와 식구들이랑 그간 일을 나누고 나서 밖에서 풀을 매주다 들어와 화장실 누런 때부터 박박 닦는다. 창틀 먼지도 '남자들은 안 보이나 봐'하면서 닦으니, 남편 왈, '우린 그런 게 안 보이지' 한다. 안 하던 반찬까지 해 대며 농사일하고 버텼으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가 온다고 이불도 내다 털고 햇볕소독도 시켰단다. 나름 청소도 해 놓았다, 구석마다를 못 봐서 그렇지.

막내가 수시로 싱글거리며 엄마, 엄마 부른다. 뭐야? 세 살 난 아이도 아닌 덩치가 산 만한 녀석이 싱글대다 갑자기 내게 그 육중한 몸을 기대 쓰러져 온다. 어이구, 울애기 하며 갱신히 받아내며 끌어안아준다. 밖에 일하다 들어오면 문 열고 ‘누구세요? 하며 마주칠 때마다 웃고 장난친다. 아빠한테는 매일 잔소리했다는 아들, ‘난 엄마가 제주로 간 이유를 알겠더라’며, 엄마가 제주로 간 지분이 아빠가 더 커 내가 더 커? 이런 곤란한 질문도 했던 녀석. '아무리 백날 말해도 목욕하고 나서 온수도 안 끄고 설거지하고 나면 내가 꼭 잔소리할 게 생겨, 엄만 어떻게 참았어?’ ㅋㅋ

그러게 말이다. 울아들 고생이 많았네. 말은 그렇게 해도 잔소리 듣고 참아냈을 남편이 또 딱하다. 양쪽을 따로 공감해 주어야 할 판. 깔끔이와 덜렁이가 사는 모습이 늘 그렇지. 한쪽은 잔소리할 게 많아 지겹고 상대는 잔소리 듣다 지친다. 둘 다 막상막하 힘들다. 나도 함께 살 때 제법 힘들었다만 따로 떨어져 살다 보니 많은 게 용서되고 이상하게 화가 안 난다. 공간이 떨어져 있는 사이 화와 짜증이 희석돼 '바다 건너 불'이 되어 버렸나 보다. 막내와 아빠 두 부자지간은 성격이 참 많이 닮았으면서도 대충과인 남편과 꼼꼼하고 깔끔한 막내는 또 상극이다. 그렇게 보대끼며 서로를 쯧쯧 도리질하고 포기도 하고 배우는 게 아닐까. 살아가는 법도 배우고 상처도 받고 지겨움도 일상이다. 그러다 모처럼 엄마를 보니 절로 신나나 보다. 똑같이 맞받아 치지 않느라 애쓴 남편은 당연히 속상하고 답답했을 텐데도 말한다, ‘엄마가 오니까 막내 얼굴이 활짝 폈다’고.

아들은 엄마한테 싱글거리는 웃음과 장난으로 신남을 표현한다.

아들 몸 개그는 엄마를 향하고 장난치면 다 받아주는 내게 닭살스런 애교도 부린다. 저녁나절 배드민턴을 치고 돌아와 오늘 아침 끓여 놓은 아욱국에 밥을 덜며, 자문자답한다. ‘누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으면 난 당연히 엄마가 좋아’ 라며 서슴지 않고 말한다. 뭐지? 저 위풍당당한 태도는?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디), 하하.

모처럼 덩치 큰 녀석의 징그런 애교를 받는 기분, 음, 괜찮다.

이런 게 식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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