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발라드 Nov 08. 2022

지극히 사적인 파리

2. 소매치기

 매일 아침에는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쨈과 버터를 바른 단단한 바게트로 배를 채우고 산책 삼아 센강에 갔다. 그날은 은빛 윤슬이 유난히 예쁜 날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마주친 파리는 아름다웠다. 자연스럽게 유럽을 연상시키는 오스만풍 건물들과 그 사이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도시의 생기를 더했다. 노천카페에 앉아 신문을 보는 노신사, 애정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들. 모든 것이 파리스러웠다.


 그렇게 에펠탑에 가까워졌을 무렵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책, 티브이로만 보던 바로 그 에펠탑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니! 에펠탑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걸어가던 그때 10살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녀와 마주쳤다. 간절한 눈빛으로 유니세프 서명지를 내밀며 수화로 말을 거는 것이다.

 파리 여행 주의사항을 분명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무엇에 홀린 것 마냥 마음이 풀어져 서명지에 이름을 적었다. 심지어 기부금 50유로와 함께 말이다. (상단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기입한 금액보다 높게 기부해야 한국 이미지에 좋을 것이라 착각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아차, 당했구나 싶어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소녀는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동시에 가방을 확인하는데 다행히 지갑은 제자리에 있었다.

 기분이 살짝 찝찝했지만 좋은 일을 한 것이라 애써 위로하며 에펠탑 구경에 나섰다. 에펠탑은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컸고 전 세계 다양한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이미 한번 당했으니 두 번은 없다고 다짐하면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에펠탑을 지나갔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결국 일이 터졌다. 악명 높은 진짜 파리 소매치기를 만난 것이다.

 붐비는 지하철의 문이 닫히는 순간 10 안팎의 여자애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우르르 들어왔다. 갑자기 옆에  여성 분이  소리를 지르며 어깨에  가방을 붙잡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설마 하며 확인하는데 아뿔싸, 이미 지갑은 사라진채 가방이 훤히 열려있었다. 아이들은 다음 역에서 내릴 준비를 했고  또한 지갑을 돌려받기 위해 따라 내렸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니 자꾸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만 한번 으쓱한  다시 우르르 뛰어나갔고  역무원 아저씨가 달려와 아이들을 뒤쫓아갔다.


 그들이 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갑자기 복합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행 자금 전부와 신분증, 체크카드 모두를 한 번에 잊어버린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