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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Aug 23. 2022

함축과 비유의 언어

말의 효율을 높이는 비결

 우선 이 글은 필자 본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정치인에 대한 선호도와 아무 상관이 없음을 전제로 한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지만 말은 장황하게 하는 순간 득보다는 실이 많다. 그래서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말을 잘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짧고 간결한 메시지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모두의 시간을 아낄 수 있을뿐더러 모두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일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우선 함축적인 말하기로 말의 효율을 높이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함축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어떤 뜻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말이나 글 속에 간직함'. 이 함축적 표현으로 우리 정치사에 이정표를 남긴 구호가 있다. 바로 손학규 전 의원의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다. 이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공약이다. 정치인 손학규가 이 공약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와는 별개로 이 구호 자체가 갖는 파급력은 대단했다. 손학규라는 인물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한 번쯤 고개를 돌리도록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개인의 삶보다 조직과 국가의 발전을 강조해 왔다. 사람들은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일이 끝나도 집에 가지 못하고 회식을 해야 했다. 회식 자리에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부적응자쯤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설사 제시간에 퇴근을 해도 콩나물시루 같은 대중교통에서 몇 시간 시달리고 나면 그저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도 버겁다. 내 취미와 꿈을 위한 투자는 요원한 일이다. 가족들과 마주 보며 따뜻한 밥 한 끼 먹기 쉽지 않다. 지금처럼 워라밸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모두의 가슴 한 구석에는 내 삶을 돌보고 싶은 욕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정치 슬로건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치가 나서서 만들어줘야 했던 사회적 어젠다가 드디어 슬로건으로 등장했으니 많은 사람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표현에 함축된 사람들의 바람은 결국 사회와 조직에 희생된 개인의 삶을 다시 개인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정치인 손학규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저녁이 있는 삶' 자체는  짧지만 강렬하고 긴 여운을 남긴 정말 훌륭한 정치 슬로건이었다. 이렇게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는 함축적 표현은 그 어떤 장황한 말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움직인다.  


 두 번째, 말의 함축 못지않게 큰 파급력을 갖는 것이 바로 비유의 표현이다. 는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비유적 표현의 달인으로 故 노회찬 의원을 꼽고 싶다. 물론 비유적 표현을 잘 사용한 다른 정치인들도 있지만 그의 비유는 서민의 마음속에 그 중심이 있다. 서민의 시선과 서민의 삶이 녹아들어 간 그의 비유는 쉽고 가슴 깊이 와닿는다. 그가 남긴 비유적 표현 몇 가지를 그대로 옮겨본다. 2013년 2월 노회찬 의원은 삼성 X파일 사건의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으며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뇌물을 줄 것을 지시한 재벌그룹 회장, 뇌물 수수를 모의한 간부들, 뇌물을 전달한 사람, 뇌물을 받은 떡값 검사들이 모두 억울한 피해자이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한 저는 의원직을 상실할만한 죄를 저지른 가해자라는 판결입니다. 폐암환자를 수술한다더니 암 걸린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릅니까", 17대 총선을 앞두고는 이런 말도 했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실제로 노회찬 의원의 이 판갈이론으로 진보정당은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그의 비유적 표현은 쉽게 전달된다. 사안의 본질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쉽게 수긍하게 만든다. 적확한 비유적 표현의 파급력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비유적 표현에는 위트가 담겨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쉽게 열게 한다. 위트 있는 비유적 표현은 생각이 다른 사람도 거부감 없이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정치인 노회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재치 있는 그의 어록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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