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람 Oct 14. 2023

우리는 오늘도 학교에 간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다니기

#행사가 끊이지 않는 미국 학교


미국에 와서 체감하는 미국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학교 행사가 정말 많다는 거다.

지난 1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밸런타인데이, 파자마데이,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등교하는 컬처데이,

친구들과 옷을 맞춰 입고 등교하는 프랜 쉽데이 등등...

거의 매달 수많은 데이와 행사들이 이어졌다.

아이들만 참여하는 행사도 많지만, 북페어(학교에서

책을 사고파는 행사)나 조거톤(조깅과 마라톤의 중간 정도)과 같이 학부모와 함께 하는 행사들도 많았다. 학부모 상담과 공개수업을 제외하고는 학교에 갈 일이 없는 한국 학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미국 초등학교의 북페어 모습

학교의 행사들은 주로 메일로 주고받는데, 한 달간 있을 행사들을 미리 알려주고, 한주에 한번 다음 주에 있을 행사들을 한 번 더 공지해 준다.

가령, 이번주에는 'Family movie night'과 'Picture day'라는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Family movie night'은 학교에서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고, 아이들 학교에서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행사다. 지난봄에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제대로 참석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참석을 해볼 예정이다.


'Picture day'는 전교생이 모두 증명사진을 찍는 날이다. 한국에서는 학년이 바뀌면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사진을 찍어서 인적사항을 적은 종이에 사진을 붙이거나 동봉해서 학교에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아예 'Picture day'를 정해서 전교생이 모두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은 'Year book'에 실린다.

미국학교의 Year Book 표지

#아이들의 학교 생활 모습이 담긴 Year Book


'Year book'에는 전교생의 사진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들의 사진과 각반별로 1년간 아이들의 활동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실린다. 그리고 한 학년이 끝나는 여름방학에 들어가기 전 'Year book' 구입신청서를 받고 원하는 가정은 약간의 돈을 내고 구입을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Year Book은 30$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나라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각 교육과정을 마칠 때 기념으로 한번 '졸업앨범'을 만든다. 졸업앨범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어떤 곳은 구입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싼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기념하는 소중한 추억을 담아내기보다는,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반면, 미국 학교의 Year book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찍은 증명사진 외에, 각반의 담임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일상을 직접 찍은 사진들이 담긴다. 전문가가 찍은 앨범에 비해 사진의 퀄리티는 확실히 떨어지지만, 학교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생생한 현장감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아이들은 그 사진을 보며 두고두고 학창 시절을 추억하고, 그 앨범의 수익금은 다시 학교지원금으로 활용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형식적이고 비싸기만 한 졸업앨범보다, 소박하지만 인간적인 미국 학교의 'Year book'이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 보였다.


#학교 행사 참여가 싫지 않은 이유


미국의 수많은 학교 행사와 이벤트들이 처음엔 낯설고 살짝은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학부모와 교사, 아이들이 마치 2인 3각 경기를 하듯이 같은 방향을 보면서 함께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어린 시절 학청시절의 나로 돌아가 아이들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학생, 선생님, 학부모가 모두 함께 하는 조거톤

한국에서 3년간 첫째를 초등학교를 보내는 동안에, 학교 행사에 참석한 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물론 코로나 기간이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한국에서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고, 아이가 함께 수업하는 반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1년에 두 번 학부모 상담과 공개수업이 있긴 했지만, 친밀하게 관계를 맺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요즘 한국에서 전해지는 학교, 교사와 관련된 소식들을 들을 때면 학교와 가정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한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학부모들이 학교 행사에 자유롭게 참석하고, 아침 등굣길에 직접 나와 등교지도를 하는 선생님들과 격의 없이 인사를 나누고, 같은 반 친구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의 학부모들도 서로 자주 만나서 가까이 지내는. 이런 미국 학교의 친근한 분위기가 조금은 부럽다. 아이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키워가는 것이기에.. 어느 한쪽의 책임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뜻과 마음을 모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학부모와 학교와의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린 시절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에는 부모님들이 함께 했다.

보물 찾기를 할 때 보물을 하나도 못 찾은 나에게 다른 아이의 엄마가 몰래 보물 있는 곳을 귓속말로 알려줬던 기억도 있고. 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온 가족이 도시락을 싸와서 하루종일 학교에서 함께 보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지금은 엄마들의 사회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현실적으로 학교 행사에 참여하기도 힘들고, 학교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학부모와의 소통이나 개입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어떻든 이런 소통의 부재가 결국 학교와 가정, 아이들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을 더 견고히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저녁, 우리는 아이들 손을 잡고 Family movie night에 간다. 거기서 아이들의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생각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함께 간식을 나눠먹으며, 금요일 밤의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들의 신나는 표정을 상상하면 엄마인 나도 함께 설렌다.


우리 학교가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까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곳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아이들의 미래를, 그런 학교를 꿈꾸는 건 그저 꿈에 그칠 수밖에 없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