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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람 Oct 18. 2023

아들은 아빠와 통한다

유난히 안개가 자욱한 아침.

새벽 6시 30분. 우리 부부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신랑은 아침에 먹을 게란말이를 만들고,

나는 아이들 도시락에 넣어줄 유부초밥을 만드는 중이었다.

미국에 온 이후로, 아침 준비를 함께 하는 게 우리 부부의 일상이 되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첫째 아들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잠에선 덜 깬 아들은 뜬금없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


-엄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99%가 가상세계일 수 있데.


이게 갑자기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

유튜브에서 아이가 별걸 다보나보다 싶어 한소리 하려는데,

신랑이 아들의 말에 답을 한다.


-그게 원래 옛날부터 철학자들이 고민하던 문제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

아빠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뭔데?


-옛날 중국에 장자라는 철학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가 나비로 변하는 꿈을 꾼거야.

꿈속에 장자는 자신이 사람인 걸 잊고 온전히 나비로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데.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보니 자신이 나비가 아니고 장자인 거지.

그 꿈이 워낙 생생해서 장자가 이런 생각을 했데.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


-옛날부터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단 거야?


-그렇지. 그런 생각을 영화로 만든 것도 있어. '매트릭스'라는 영환데 나중에 같이 보자.


-매트릭스? 그거 나도 들어본 적 있어. 그 제목 처음 봤을 때 '매트리스'인 줄 알았잖아~~


아들의 한마디로 시작된 대회는 장자의 호접몽에서 매트릭스에 이어 매트리스로 이어졌다.

철학에서 영화, 결국은 코미디로 이어지는 아들과 아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역시, 아들은 아빠와 통하는 건가?


아들을 키우면서, 때때로 어쩔 수 없는 벽을 마주치기도 하고

아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라면, 잠에서 덜 깬 아들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웃어넘겼을 이야기다.

하지만 신랑은 그런 아들의 말을 흘려 넘기지 않았고,

철학과 영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주었다.

아들과 소통은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구나, 싶어 고마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모두 가상으로 만들어진 거짓이라도,

그 가상의 세계 속에 우리가 함께 있다면 영영 깨고 싶지 않다고.

감성적인 엄마인 나는, 또 그 순간을 이렇게 맘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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