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람 Jun 11. 2023

4. 미국행 짐 싸기

-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무게와의 전쟁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어바인이라는 곳에서 1년살이를 하기로 결정하고,

가족이 지낼 집과 아이들 학교가 대충 정해지고 나니 이제 큰 산은 넘은 기분이었다.

이제 남은 건, 미국에 가지고 갈 짐 싸기.

우리 가족에게 허용된 비행기 수화물은 이삿짐박스 6개와 기내용 여행가방 2개가 전부였다.


들고 가고 싶은 건 많지만, 들고 갈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는 상황.

그야말로 숨 막히는 무게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일단 무작위로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챙겨놓은 다음,

정해진 무게에 맞춰서 덜 중요한 물건들을 차례로 빼기로 했다.


이삿짐박스 하나당 실을 수 있는 최대 무게는 23kg.

저울의 오차를 감안해서 박스 하나당 최대 22kg가 넘지 않게 싸는 걸 목표로

짐을 쌌다 풀었다, 이리저리 옮기기를 반복했다.


부피도 부피지만, 무게가 문제였다.

의류나 침구류는 압축팩으로 최대한 부피를 줄일 수 있었지만,

미국에서 필요한 한국 식재료들 (김치,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참기름 등등)은

하나같이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요즘은 미국에도 워낙 한인마트가 많아서, 웬만한 식재료는 손쉽게 구할 수는 있다지만

시골장에서 직접 짠 참기름과 친정 부모님이 농사지어 보내주신 안 매운 고춧가루,

집에서 담은 간장, 고추장 같은 식재료들은 구하려야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음식에 진심인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꼭 챙겨야 하는 물건들이지만,

무게를 생각하면 원한다고 전부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건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다.


꼭 필요한 것들, 중요한 것들 순으로 짐을 싸다 보니

있으면 좋을 것들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될 것들 위주로 물건의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박스에 담기지 못한 옷과 신발들, 아이들의 장난감과 무게 나가는 책들.

모두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당장 사는데 지장이 가는 것들은 아니었다.

짐을 싸는 일은, 결국 그런 것들을 하나씩 가려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결혼 생활 12년 차. 우리 집에도 구석구석 꽤 많은 짐들이 쌓여있었다.

물론 꼭 필요한 물건들도 있지만,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기분이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모았던 물건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그동안 우리에게 허락된 무게가 얼마인지 잊은 채, 불필요한 것들에 괜한 욕심을 부려왔던 건 아닌지.

남들이 다 가지니까, 혹은 더 좋은 걸 갖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지.

이삿짐 박스 하나당 고작 23kg 무게에 맞춰 짐을 싸면서,  

우리 삶에도 일정한 무게 제한이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물건들과 작별하며


계절별로 갈아입을 옷들과 덮고 잘 이불, 편안한 신발 한 두 켤레.  

그리고 미국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와 몇 권의 책.

미국 1년 살이에 필요한 짐은 그 정도로 충분했다.


비행기에 실을 짐들을 정리한 뒤에,

집안 구석구석에 쌓여있던 짐들도 조금씩 정리를 해나갔다.


사용하지 않고 먼지만 쌓여가던 물건들은 버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장난감이나 물건들은

중고거래로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어주거나 팔았다.


필요한 짐을 싸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결혼 10년 차 살림을 다시 한번 리셋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미국행은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출발이 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