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팬알백 | 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OB 초대 사령탑 김영덕 감독의 삼성행과 곧 이은 OB의 김성근 감독 승격. 1984년 KBO리그는 감독들의 대이동이 이슈였다.
두 팀만이 아니었다. MBC 청룡은 전년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우승에 실패한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그 대신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끈 어우홍 감독을 새롭게 영입했다. 롯데는 1983년 후기리그부터 감독대행을 맡은 강병철 코치를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켜 새로운 시즌을 준비했다. 1년 전 개막전과 비교해 보면 6개 구단 중 김응용 감독의 해태와 김진영 감독의 삼미를 제외하고는 4개 팀 사령탑의 얼굴이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베팬알백] 16편에서 다룬 김영덕과 김성근의 관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갈등과 대립 관계는 1984년 KBO 레이스의 그림을 달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팬알백] 17번째 주제는 김성근 감독 부임 후 첫 시즌인 1984년 이야기다.
● 김성근의 OB, 4월부터 놀라운 돌풍
1982년 원년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던 OB와 삼성은 이듬해인 1983년 한국시리즈 무대에 초대받지 못한 아픔을 겪었다. 6개 구단 체제였던 1983년. 전기리그에서 삼성은 5위, OB는 6위로 뒤에서 1~2등을 했다. 후기리그에서는 삼성이 2위로 도약한 반면 OB는 가까스로 탈꼴찌를 하면서 5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1984년 양 팀의 기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주도하며 원년에 이어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재격돌 가능성을 높였다.
김영덕 감독을 영입한 삼성의 전력은 한층 더 탄탄해졌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에이스 출신 재일교포 김일융을 영입하면서 김시진과 최강 원투펀치를 구축했다. 삼성은 개막 2연전에서 삼미에 연승을 거두며 휘파람을 불었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OB는 4월 8일 잠실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신인 김진욱의 역투 속에 MBC를 4-1로 꺾고 개막전에 강한 전통의 토대를 이어나갔다. 이튿날인 9일 MBC에 3-5로 패하면서 1승1패로 시작했다.
그리고 맞이하는 3연전. 바로 삼성과 OB의 시즌 첫 맞대결이었다. 장소는 대구. 김성근 감독이 이끈 곰군단이 김영덕 감독이 지휘하는 사자굴로 들어갔다.
양 팀 감독의 자존심 싸움에다 선수들의 감정도 썩 좋지는 않았다. 첫 3연전부터 충돌이 빚어지더니 1984년에만 무려 4차례나 큰 싸움이 벌어졌다. 야구계는 이를 두고 '4차대전'이라는 표현까지 썼을 정도로 양 팀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앙숙이 되고 말았다.
● OB와 삼성의 1차 대전
사실 두 팀은 원년 한국시리즈를 놓고 격돌한 뒤 감정이 많이 상해 있었다. OB에 눌려 우승을 놓친 삼성은 이듬해인 1983년 국가대표 출신 김시진이 입단하자 OB전 승리에 특별보너스를 내걸었을 정도였다. 그리고는 시즌 후 OB 감독직에서 물러난 김영덕 감독을 영입하면서 두 구단의 감정싸움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김영덕 감독이 "박철순이 다친 것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1년간 일본으로 건너가 야구공부를 하겠다"며 지휘봉을 내려놓은 지 11일 만에 삼성 사령탑으로 가자 세간에는 "미리 시나리오를 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특히 박용곤 구단주가 "일본 유학을 간다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던 터라 OB로서는 서운함을 넘는 감정이 밀려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4월 10일 정규시즌 첫 만남이 펼쳐졌다. OB는 여기서 8-5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삼성이 야심 차게 내놓은 선발투수 김일융과 포수 송일수(훗날 두산베어스 감독) 재일교포 배터리를 상대로 0-4로 뒤진 7회 김우열의 2점홈런을 포함해 대거 6점을 뽑아내며 전세를 뒤집어 버렸다.
김일융은 시즌 개막전에서 삼미를 상대로 3점차 리드를 지키기 위해 9회에 등판했다가 동점 3점홈런을 내주고 연장 10회초 타선 지원 덕에 쑥스럽게 승리투수가 된 바 있다. 두 번째 등판인 이날 OB전에서도 9이닝 동안 33타자를 상대하며 7안타 2볼넷 3탈삼진 8실점을 기록하면서 첫 패전의 쓴맛을 봤다.
삼성으로선 1983년 30승을 거둔 삼미 장명부 이상의 커리어를 가진 김일융을 영입하면서 희망에 부풀었던 터라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OB는 큰 자신감을 얻었다.
OB는 기세를 타고 이튿날인 11일에도 4-3으로 짜릿한 1점차 승리를 거뒀다. 시즌 개막 후 3승1패. MBC와 공동 선두로 나서며 초반 돌풍을 예고했다.
12일 3연전 마지막 경기. 결국 일이 터졌다.
『OB에 갓 입단한 포수 배원영이 분위기에 휩쓸려 김영덕이 가장 싫어하는 별명(변태)을 불렀다. 김영덕은 게임이 끝난 후 OB 벤치를 찾아가 배원영의 뺨을 때렸다. OB 선수들은 "게임 전에 인사를 드려도 받지 않던 사람이 어떻게 남의 선수를 폭행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이것이 첫 번째 열전이었다.』 <한국야구사 1198P>
OB는 이날 경기에서 2-3으로 패했고, 뜻하지 않은 감정 충돌이 빚어졌지만 첫 3연전 결과만 놓고 보면 아쉬울 게 없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삼성을 상대로 2승1패를 거두면서 위닝시리즈를 장식하는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이런 자신감 속에 OB는 4월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강력한 돌풍을 일으켰다. 4월 29일에 롯데를 꺾고 9연승을 달리는 등 4월 한 달간 13승3패의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단독 선두 자리를 이어갔다. 시즌에 앞서 전문가들은 물론 OB 구단 자체적으로도 "잘해야 중위권"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으나 모두를 놀라게 하는 질주를 거듭했다.
2위 삼성도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OB의 돌풍이 두드러졌지만 삼성 역시 4월에 11승5패로 OB에 2게임차로 따라붙으며 레이스에 불을 붙였다.
● OB와 삼성의 2차 대전
양 팀은 5월 들어 OB의 홈구장인 대전에서 다시 만났다. 시즌 두 번째 3연전. 선두싸움의 중요한 고비였다.
9연승을 달리던 OB는 5월 1일 삼성과 3연전 첫 대결에서 2-6으로 패해 연승 행진을 멈추고 말았다. 9연승은 원년에 OB가 기록했던 KBO리그 최다 연승 기록으로, 결국 타이기록에 만족하며 삼성에 1게임차로 쫓기게 됐다.
이튿날 또 일이 터졌다. 2일 경기에서 빈볼 시비로 무려 4차례나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8회말 김일융이 던진 공에 왼쪽 무릎을 맞은 조종규(전 심판위원장·2019년 작고)가 마운드로 뛰어나가자 양 팀 벤치의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난투극을 벌였다. 넘어진 삼성 김근석은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고, 4명의 선수는 경기 후 대전경찰서에 경위조사까지 받고 나왔다.
『OB의 전 감독 김영덕 씨가 삼성에 이적하면서부터 미묘한 감정을 지닌 두 팀은 지난달 12일 대구 경기 후 김 감독이 자신에게 야유를 한 OB의 한 선수에게 손찌검을 했다가 더욱 심화된 감정대립을 보여왔다』 <1984년 5월 3일자 동아일보>
OB로선 결과마저도 뼈아팠다. 이날 삼성에 4-11로 대패해 시즌 13승5패를 기록하게 됐고, 8연승을 달린 삼성에 공동선두를 허용하고 말았다.
OB는 3연전 마지막 날인 5월 3일 신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던 마무리투수 윤석환과 선발투수 김진욱을 보직을 맞바꿔 투입했다. 삼성 김영덕 감독이 사이드암 투수 김진욱에 대비해 4명의 좌타자를 포진시키자, OB 김성근 감독은 구원투수로 4월까지 9세이브를 거두며 주목받고 있던 좌완 루키 윤석환을 선발카드로 뽑아 든 것. 7회부터는 선발로 주목받았던 또 다른 루키 김진욱(4승1패)을 올리면서 6-0 승리를 거뒀다. 상대의 허를 찌른 승리였다. OB는 다시 삼성에 1게임차로 앞서며 단독선두로 나갔다.
● OB와 삼성의 3차대전
3차 대전이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5월 14일 대구. 6회말 OB 3루수 양세종이 포수 김경문의 견제송구를 받아 3루주자 천보성을 태그했는데 하필 글러브를 들이댄 곳이 머리였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한 동작. 그러나 양 팀 사이에는 이미 감정의 골이 깊게 파여 있던 상황이었다. 삼성 선수들은 "무례하게 머리를 쳤다"고 받아들이면서 흥분했다.
3루심의 만류 속에 양 팀의 시비는 곧 진정되는 듯했으나 공수 교대 후 일이 커졌다. 7회초 공격을 위해 3루 덕아웃(당시 원정팀 덕아웃) 앞에 모여선 OB 선수들을 향해 흥분한 대구 관중들이 병과 깡통을 집어던졌다. 결국 구천서가 병에 맞아 경북대병원에 실려 갔다. 이마가 부어오르고 깨진 병의 파편에 코가 찢어졌다.
베어스 측은 몰수경기를 요구했다. 경기는 1시간 24분 동안이나 중단됐다. 보고를 받은 KBO 서종철 총재는 "OB가 경기속행에 불응하면 OB의 몰수게임패로 처리하고, 관중소란이 또 일어나면 삼성의 몰수게임패로 처리하라"고 지시하면서 경기가 가까스로 속행됐다.
전기리그 우승을 놓고 선두싸움을 펼친 두 팀의 대결인 데다 양 팀 감독의 갈등 관계와 선수들의 감정대립, 여기에 흥분한 팬들까지 합세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달았다.
그 와중에 OB는 5월 12일 김시진에 눌리며 0-1로 패한 데 이어 이날도 김일융에게 0-2로 완봉패를 당했다. 결국 OB(17승9패)는 삼성(18승8패)에 27일 만에 단독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 OB-삼성의 4차 대전
양 팀의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악의 4차 대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6월 2일 대전. 2회말 내야실책으로 나간 이홍범이 조범현의 투수 앞 희생번트 때 더블플레이를 막기 위해 2루로 돌진하면서 발로 삼성 유격수 오대석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오대석이 쓰러지면서 결국 양 팀의 집단 난투극이 펼쳐졌다.
이 경기에 앞서 10경기에서 2승8패의 부진에 빠졌던 OB는 이날 맞대결에서 4-1로 승리하며 한숨을 돌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튿날 2-5로 패하면서 전기리그 우승이 힘들어졌다. 9경기를 남겨둔 삼성에 전기리그 우승 매직넘버 5를 만들어주고 말았다.
전기리그에 예정된 맞대결 10경기도 모두 끝난 상황. 뒤집기 찬스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대전적도 4승6패로 밀렸다.
결국 전기리그는 삼성이 32승18패를 기록하면서 OB(30승20패)에 2게임차 우위를 점한 채 우승을 차지해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 OB, 후기리그도 2위로 마감 KS행 실패
삼성은 후기리그 초반에도 선두로 치고 나갔다. 한국시리즈를 없애고 전•후기리그 통합우승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레이스가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7월 말에 MBC와 3연전, OB와 2연전에서 1승4패로 밀리면서 중위권으로 떨어졌다. 후기리그 우승 가능성이 멀어지자 삼성은 일찌감치 한국시리즈에 대비해 힘을 비축하는 전략을 펼쳤다. 결국 후기리그 우승을 놓고 롯데와 OB의 막바지 선두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후기리그 종료를 2경기씩 남겨둔 9월 20일까지 롯데가 27승1무20패로 1위, OB가 26승1무21패로 2위를 달리고 있었다. 1게임차였다.
전기리그에서 아쉽게 2위로 마감한 OB로서는 후기리그 우승을 위해 2연승을 올리고 롯데가 1경기라도 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동률이 되면 우승 결정전을 치러 후기리그 1위를 가리게 돼 있었다.
만약 OB가 해태에 1패를 당하면 롯데가 2연패를 해야 우승 결정전을 치르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OB로서는 1게임차의 열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제주에서 2연승을 올렸지만, 롯데 역시 부산 구덕구장에서 삼성에 2승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삼성으로선 여러모로 껄끄러운 OB보다는 롯데가 한국시리즈 파트너가 되길 원했다. 삼성 야수들은 평범하게 잡을 공도 잡지 않는 등 어설픈 연기로 사실상 2경기를 모두 내줬다.
결국 KBO는 이후 포스트시즌 제도 손질을 고민하게 된다.
● 종합승률 1위 OB의 KS 탈락, 포스트시즌 제도 변경
OB는 전기리그 2위에 이어 후기리그에서도 2위에 그치며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전•후기리그 종합승률로 따지면 58승1무41패로 가장 높은 0.586의 승률을 기록했다.
전기리그 1위와 후기리그 5위를 차지한 삼성(55승45패)과 전기리그 4위와 후기리그 1위에 오른 롯데(50승48패)보다 좋은 성적이었다.
비록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우승을 하지 못해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놓쳤지만 시즌에 앞서 중위권도 어렵다는 전력 평가 속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전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프로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의 지도력 또한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즌 동안 가장 높은 승률을 올린 팀이 가을잔치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점은 대표적인 제도적 모순으로 지적됐다. 이로 인해 KBO리그는 출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제도 변경이 이뤄지게 됐다. KBO와 6개 구단이 1985년부터 '종합승률제'라는 새로운 포스트시즌 운영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종합승률 1위팀이 무조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는 안을 만든 것이다.
‘종합승률제’는 다음과 같았다.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눠 치르되
①종합승률 1위팀은 한국시리즈에 자동 진출한다.
②종합승률 1위팀이 전•후기리그 중 한 번을 우승하고, 종합승률 2위 팀이 다른 기의 우승을 차지했을 경우에는 그 두 팀이 한국시리즈를 거행한다.
③종합승률 1위팀과 전•후기리그 우승팀이 각각 다를 때는 전•후기리그 우승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러 한국시리즈 진출팀을 가린다.
④한 팀이 전•후기리그를 모두 우승했을 때는 한국시리즈 없이 자동우승으로 인정한다.
만약 OB가 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랐다면 제도에 대한 손질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OB의 한국시리즈 탈락은 KBO 제도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나비효과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1985년 삼성이 전•후기리그를 모두 우승하면서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가 무산되자 KBO는 1986년부터는 무조건 한국시리즈가 개최되는 방향으로 또 다시 제도 손질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