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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국 Feb 21. 2023

[18] 김진욱-최일언-윤석환, 신인 트로이카 이야기

베팬알백 | 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뭐 저따위가 들어왔어?”


 OB 김성근 감독은 혀를 찼다. 그의 눈에는 신인이라고 들어온 투수 하나가 영 내키지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베어스 마스코트’를 해도 될 법한 뚱뚱한 몸매. OB 입단 후 첫 훈련에서 ‘아메리칸 펑고(외야에서 좌우로 전력질주하며 펑고 타구를 잡는 훈련)’ 4개만 받아도 숨을 헐떡거리며 KO가 되곤 했다.


 그러나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이 왼손 투수는 시즌이 시작되자 ‘비밀병기’를 넘어 최고의 ‘효자투수’로 거듭났다.


 이기고 있는 경기, 이겨야 하는 경기, 이길 수 있는 경기…. 후반 승부처가 되면 어김없이 호출됐다. 1이닝도 좋고, 2이닝도 좋고, 3이닝도 막아내는 승리의 수호신.


 우리가 1984년 추억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전문 마무리투수의 시대를 개척하며 신인왕에 오른 윤석환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OB 베어스의 역사는 물론 KBO리그 역사에서도 중요한 이정표를 남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1984년 함께 입단한 김진욱과 최일언 역시 1980년대 OB 야구를 관통하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신인 투수 트로이카는 시즌 초반부터 선발(김진욱)-중간(최일언)-마무리(윤석환)로서 팀 마운드의 지렛대 구실을 해냈고, OB는 “꼴찌 아니면 다행”이라는 전문가들의 평을 뒤집고 우승을 다투는 팀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베팬알백] 18번째 주제는 1984년 신인왕 윤석환을 중심으로 OB 돌풍의 주역이 된 신인 투수 삼총사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1984년 신인 시절 OB 베어스 김진욱(위)과 윤석환 ⓒ두산베어스


●선발 김진욱-마무리 윤석환, 강렬한 신인들의 데뷔전


 1984년 4월 7일 잠실구장. 1983년에 이어 2년 연속 개막전에서 MBC 청룡을 만났다.


 이날은 OB 수석코치에서 사령탑으로 승격한 김성근 감독의 프로 감독 데뷔전이기도 했거니와 상대팀인 MBC 어우홍 감독의 프로 데뷔전이기도 했다(어우홍 감독은 1982년 김재박의 개구리번트와 한대화의 3점홈런으로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끈 뒤 1984년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OB 선발투수는 신인 사이드암 투수 김진욱. 전년도인 1983년 MBC와 격돌한 개막전에서 신인 장호연으로 완봉승의 재미를 본 기억이 있는 김성근 감독(1983년엔 투수코치)은 또 루키 투수를 내세웠다.


 경북 영천 출신의 김진욱은 강원도 춘천중을 나왔고, 충남 천안북일고와 부산 동아대를 거치며 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춘천중 시절 1976년 문교부장관기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상을 받는 등 중학 시절부터 전국 스카우트 랭킹 1호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진학 시 창단팀 천안북일고로 스카우트돼 화제를 뿌렸다.


 천안북일고 졸업반이던 1979년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서 감투상을 받았고, 동아대 졸업반이던 1983년 대통령기전국대학야구대회서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했다.


 대전과 충청권을 연고로 하는 OB는 김진욱을 1차지명으로 뽑았고, 김성근 감독은 스프링캠프부터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던 김진욱을 결국 개막전 선발투수로 낙점하기에 이르렀다.


 MBC 개막전 선발투수는 1983년 평균자책점(2.33) 1위를 차지한 에이스 하기룡이었다. 신인이 맞서기에는 거물투수. 그러나 전년도 루키 장호연이 하기룡과 맞대결에서 이긴 것처럼, 역시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었다.


 MBC 타자들은 사이드암 투수로 140㎞대 강속구를 뿌리는 낯선 루키 김진욱을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다. 그 사이 OB가 3회와 5회에 양세종의 연이은 1타점 적시타로 2-0으로 앞서나갔다.


 김진욱은 4사구 4개가 있었지만 5회를 넘어 6회 2사까지 노히트노런 행진을 펼쳤다. 4번타자 이광은에게 중전안타를 맞아 대기록이 깨졌지만 7회까지 2안타 무실점 역투를 펼쳐다. 1983년 장호연의 개막전 완봉의 추억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김진욱 ⓒ두산베어스


 그러나 김진욱은 8회말 첫 실점을 하고 말았다. 1사 후 2번타자 이해창에게 볼넷을 내준 뒤 김재박을 우익수 직선타로 잡았지만 이광은에게 내야안타를 맞고 2사 1·2루에 몰렸다. 타석에 들어선 MBC 신인 좌타자 김상훈에게 결국 좌전 적시타를 맞아 OB는 1-2로 쫓겼다.


 계속된 2사 1·2루.


 승부처였다. 사이드암 투수에 좌타자가 강하다는 이론대로, MBC 어우홍 감독은 우타자 신언호 타석에 좌타자 송영운을 대타로 투입했다.


 그러자 김성근 감독도 움직였다. 김진욱을 마운드에서 내리고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투수 윤석환!"


 김옥경 주심이 백스톱 뒤 박기철(작고) KBO 공식기록원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OB의 투수교체를 알렸다. 절체절명의 승부처에서 선린상고~성균관대 출신의 루키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그러자 MBC는 또 대타 작전을 썼다.


 "대타 김문영!"


 윤석환의 선린상고 2년 선배인 우타자 김문영이 윤석환을 공략해 주기를 기대했다.


 누가 봐도 루키의 데뷔전 치고는 가혹한 상황. 하지만 윤석환의 진가가 곧바로 드러났다. 이날 선발포수로 나선 김경문과 사인을 교환하자마자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었다.


 2구째는 파울. 한 번쯤 유인구를 던질 법도 했지만 3구 역시 지체 없이 스트라이크존에 집어넣었다. 3구 삼진. 김경문의 공격적 리드도 큰 몫을 했지만 윤석환의 배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위기를 벗어난 OB는 9회초 2점을 뽑아 4-1로 달아났고, 윤석환은 9회말 등판해 또 거침없는 투구를 펼쳤다. 첫 타자로 만난 대타 김경표(작고)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더니 베테랑 타자 이종도와 포수 김용운(작고)을 각각 중견수플라이로 처리하며 승리를 마무리했다.


 김진욱은 7.2이닝 4안타 6사사구 1실점 승리, 윤석환은 1.1이닝 2탈삼진 무안타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했다. 단 2명의 신인 투수로 개막전 승리를 낚았다. 루키 투수들의 강렬한 데뷔전이었다.


1984년 4월 7일 OB vs MBC 경기 기록지 ⓒ한국야구위원회


●김진욱 최일언 그리고 윤석환…신인 투수 삼총사


 1984년 OB는 훗날 팀의 주축 선수가 되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1982년 우승 후 이듬해인 1983년 신인을 단 4명밖에 뽑지 않았던 OB는 5위로 떨어지자 1984년 6개 구단 중 가장 많은 11명의 신인을 입단시켰다.


 한오종(한양대), 윤석환(성균관대), 기세봉(포철) 등 투수 3명과 함께 외야수 김성호(포철)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외에 연고지역인 천안북일고 출신의 투수 김진욱(동아대)과 공주고 출신의 외야수 김광림(고려대), 국가대표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포수 겸 1루수 박해종 등도 계약하며 선수층을 대폭 확대했다.


 여기에 재일동포 제도가 도입된 1983년에 단 한 명도 영입하지 않았던 OB는 1984년 2명을 데려왔다. 한 명은 1976년 봉황대기에서 재일동포팀 1루수로 출전해 타격 2위에 오른 홍신차였다. 일본 사회인야구팀(실업팀)에서 활약하고 있던 내야수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일본 시모노세키상고와 센슈대 출신의 투수 최일언이었다.


홍신차와 최일언 ⓒ두산베어스


 OB는 1983년 팀 평균자책점 3.52로 6개 구단 중 롯데(3.79) 다음으로 좋지 않았다. 신임 김성근 감독은 빈약한 마운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인 트리오를 과감하게 마운드의 축으로 만들었다.


 선발진은 김진욱과 함께 박상열 계형철로 짜놓고, 최일언을 전천후 롱맨으로 활용했다. 이어 윤석환을 소방수로 과감하게 발탁해 철벽 같은 뒷문을 만들었다. 기존의 선수들과 함께 OB 마운드는 폭과 깊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공은 빨랐지만 컨트롤이 들쑥날쑥했던 원년 멤버 계형철은 제구가 잡히기 시작했다. 14승4패에 평균자책점 2.06(2위)을 기록하며 박철순 없는 OB 마운드의 에이스로 도약했다. 입단 2년차인 장호연은 5승3패1세이브에 머물렀지만 31경기에 등판해 방어율(평균자책점) 1.58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평균자책점 12위 안에 OB 투수만 무려 6명. 박상열은 2.57로 6위, 윤석환은 2.84로 8위, 최일언은 2.84로 9위, 김진욱은 3.05로 12위에 랭크됐다. OB 마운드는 환골탈태하며 1984년 팀 평균자책점 2.53으로 1위에 올랐다.


 특히 신인 김진욱은 시즌 초반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개막전 승리투수에 이어 한 달 동안 4승1패를 기록했다. 여기에다 평균자책점 1위로 나서는 등 실질적으로 선발 마운드를 이끌며 분위기를 잡았다.


 그 이후엔 승운도 따르지 않고, 슬럼프에 빠지면서 그해 6승11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3.05(1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렇지만 이듬해인 1985년 곧바로 10승 투수로 성장하면서 기대에 부응했다.


 중간계투로 승리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재일교포 최일언은 4월 20일 대전 삼미전에서 3회부터 구원등판해 5이닝 무실점으로 국내 무대 첫 승을 올렸다. 첫해 37경기에 출격해 9승6패3세이브, 평균자책점 2.84(9위)의 호성적을 거뒀다. 1985년~1987년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따냈는데, 특히 1986년 19승4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1.58의 눈부신 성적으로 에이스로 도약했다.


 여기에 개막전 세이브를 거둔 윤석환은 연일 세이브를 쌓아 올리며 프로야구에 회오리를 몰고 왔다.


윤석환 ⓒ두산베어스


 ●세이브! 세이브! 세이브! 루키 소방수의 승승장구


 『OB에 새로운 소방수가 나타났다. 프로야구 OB의 신인투수 윤석환이 구원투수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OB는 (4월) 19일 대전 경기에서 박상열 윤석환이 투수 마운드를 지키며 삼미 타선을 4안타로 막고 2대1로 승리, 6승3패로 단독선두에 올랐다. 7회부터 구원등판한 윤석환은 또 하나의 세이브를 추가, 벌써 4번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1984년 4월 20일자 동아일보>


 4월 23일 광주 해태전에서 윤석환은 9회에 등판해 3-2 승리를 마무리하면서 김진욱(8이닝 2실점)의 시즌 3승을 지키는 동시에 자신의 시즌 5세이브를 올렸다. 언론들이 윤석환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팬들에게도 존재감 있는 투수로 인지도가 급부상했다.


 "뭐 저따위가 들어왔어?"라고 말했던 김성근 감독의 혹평은 개막 한 달 만에 "짝배기(왼손잡이) 박철순"이라는 최고 찬사로 바뀌었다.


 다음은 이 스토리의 출처인 1984년 5월 5일자 경향신문의 고 이종남 기자의 기사다.

 『84프로야구에 돌풍을 몰고 온 윤석환. 프로 입단 당시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던 신병 윤석환은 종반 마무리 전문으로 벌써 1승9세이브를 거두며 OB 연승을 뒷받침한 데다가 3일 삼성전에서는 처음으로 선발등판, 1승을 추가함으로써 OB 베어스가 선두에 나서게끔 하는 원동력이 됐다. 김성근 감독이 서슴없이 '짝배기 박철순'으로 치켜세우는 윤석환은 과연 어떤 투수인가.

베어스에 입단한 윤은 처음엔 정말 미련퉁이 곰 같아 김성근 감독은 "뭐 저따위가 들어왔어" 하며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었다. 이선덕 코치가 쳐대는 아메리칸 노크(펑고)를 불과 4개 받고는 KO가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펑고를) 500개쯤 거뜬히 받고 특별훈련 때는 1000개까지 걷어내는 날쌘 몸이 됐다. 넉 달 사이에 훈련만으로 무려 12㎏이나 체중을 감량했다고 한다. 현재 180㎝에 76㎏.

'비둘기 모이 주듯' 짧게 그리는 왼팔스윙은 예나 지금이나 정통파 투수답지 않다. 윤은 2승9세이브씩이나 쌓은 것에 수긍이 갈만한 특출한 무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윤석환은 과거 박철순처럼 자신 있게 피칭하며 수비도 그를 믿고 뒷받침해 준다. 베짱이야말로 최고의 무기다."(김성근 감독의 말

 "게임 종반 3이닝 미만을 마무리 짓기 때문에 한 게임에서 같은 타자를 한 번 이상 상대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방이 윤석환을 충분히 파악, 대처하기 이전에 게임이 끝나므로 피칭이 살아날 수 있다."(동국대 김인식 감독의 말)』
OB베어스 김성근 감독 ⓒ두산베어스

 승승장구였다. OB 돌풍의 밑바탕에는 승리의 뒷문을 잠그는 윤석환이 있었다.


 그가 마운드에 서면 경기는 속전속결. 그냥 직구 위주의 피칭이었다. 그래서 포수 사인도 복잡할 게 없었다. '몸쪽' 아니면 '바깥쪽'. 윤석환은 인터벌도 없이 공격적으로 던졌다. 타자들 역시 직구만 노리고 공격적으로 맞섰지만 좀처럼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초창기 OB에서 김경문과 함께 안방을 나눠 맡았던 조범현 전 kt 감독은 윤석환의 신인 시절을 묻자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조범현과 윤석환은 1990년 12월 함께 삼성으로 현금 트레이드되는 운명을 겪었다).


 "팔스윙이 짧아서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어했어요. 공끝이 지저분했죠. 공에 힘이 있었고, 배짱도 좋았고, 과감한 승부를 잘 했습니다. 그냥 스트라이크존에 꽂아 넣었어요. 공이 날아 들어오는 각도가 까다로웠던 투수였죠."


※ [베팬알백_19]에서는 ‘KBO 최초 전문 소방수 윤석환, 사상 첫 만장일치 신인왕’ 이야기가 자세히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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