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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국 Feb 27. 2023

[31] MLB 신대륙 개척…세인트루이스와 자매결연

베팬알백 | 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프로야구단 OB의 김형석과 임형석 강병규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출전하게 됐다. OB의 경창호 사장은 최근 미 프로구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방문, 주전 선수들의 경험 축적과 자신감 배양을 위해 조 토레 감독에게 제의한 결과 한국 선수로선 처음으로 이들 세 명이 오는 8일부터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참가하게 됐으며, 카디널스 팀의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합숙훈련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1995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베팬알백]은 그동안 1980년대 후반까지 스토리를 이어왔다. 그래서 1990년 중반 이야기가 불쑥 나오는 대목에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시간 이동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는 1980년대 후반, OB 베어스의 역사와 한국야구사에서 의미 있는 일을 소개하기 위해 1995년 관련 기사를 끌어온 것이다.


 [베팬알백] 31번째 이야기는 1987년 1월, OB 베어스가 KBO 최초로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자매결연을 통해 새로운 야구 문물을 흡수하는 상황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이는 훗날 베어스뿐만 아니라 한국야구 발전의 자양분이 된 중요한 이정표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많은 최초의 역사들을 써내려 온 OB 베어스는 세인트루이스 자매결연을 통해 또 한 번 더 최초 역사를 만들었다.


 1987년 OB베어스와 세인트루이스가 자매결연을 하고 기술 교류에 합의했다. ⓒ두산베어스


OB 베어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최초 자매결연


『OB 베어스는 미국 프로야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팀과 자매결연을 하고 양 팀 간의 기술교류에 합의했다. 박용민 단장이 지난 22일 세인트루이스에 프레드 콜먼 카디널스 구단 대표와 맺은 자매결연 계약에 따르면 양 팀은 야구발전을 위해 기술교류에 협력하기로 돼 있는데, 이에 따라 카디널스 측의 봄·가을 캠프와 교육리그 등에 베어스가 2~3명의 코치·선수를 파견, 기술지도를 받을 예정이다.」 <1987년 1월 31일자 경향신문 기사>


 역사의 배를 타고 1987년으로 노를 저어 올라가 보자. 그해 1월 22일, OB 베어스는 메이저리그 구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역사적인 자매결연을 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구단 자매결연은 KBO리그 최초의 일이었다.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LA 다저스와 우호협력 관계를 맺고 스프링캠프를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에서 진행한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자매결연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삼성이 해외 구단과 정식으로 자매결연을 한 것은 1994년 대만 프로야구 준궈 베어스가 처음이었다.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삼성라이온즈21 8장 ‘야구의 국제교류’ 참조>


 그렇다면 그 시절 OB 베어스는 어떻게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세인트루이스와 연결됐을까.


 당시 이 일을 직접 진행한 박용민 전 단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1935년생으로 86세의 고령이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기억은 선명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 오너가 맥주 공장 사장이었어요. 세계적인 맥주 버드와이저를 소유하고 있었지요. 두산그룹도 당시 OB맥주가 주력 상품 아니었습니까. 그런 비즈니스적인 인연으로 기업 간의 협력 관계가 형성됐고, 그것이 발전돼 프로야구단끼리 자매결연으로 이어졌습니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국내 구단의 자매결연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큰 화제였죠. 구단 간 교류를 통해 메이저리그 선진 야구와 문화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미국으로 연수를 가기도 했고, 미국의 지도자와 슈퍼스타들이 국내로 와서 우리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우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시범경기까지 참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왔지요.”


 세인트루이스는 미국 미주리주 최대 도시다.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카디널스이며, 또 다른 하나가 세계적 맥주 브랜드 버드와이저다.


 버드와이저 설립자는 아돌프 부시. 버드와이저가 지금은 벨기에 회사에 인수된 상태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홈구장 이름만큼은 여전히 부시스타디움(2005년까지 부시 메모리얼 스타디움)을 사용하고 있다.


 1981년 OB 베어스의 창단 작업부터 실무를 담당한 박용민 초대 단장은 세인트루이스 이야기를 이어가더니 갑자기 원년 에이스 박철순을 입단시키기 위해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을 방문했던 얘기를 꺼내며 웃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베팬알백_03] '불멸의 에이스 박철순 영입 비화비사' 참조>


 “일전에 말씀드렸지만 박철순을 데리고 있던 구단이 밀워키 브루어스 아니었습니까. 밀워키도 맥주로 유명하잖아요. 밀러 맥주라고. 훗날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된 버드 셀리그 밀워키 구단주를 만나 박철순 이적 협상을 벌였던 때가 생각납니다. 밀워키나 세인트루이스나 맥주와 관련이 있는데, OB 베어스는 초창기에 맥주와 인연이 참 많았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유격수로 평가받는 오지 스미스와 이광환 전 감독. ⓒ이광환 전 감독 제공


 ●스탠 뮤지얼빈스 콜맨오지 스미스…MLB 레전드들의 방한


 자매결연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1년 후인 1988년 1월, 이름만 들어도 입이 딱 벌어질 만한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이 한국으로 왔다. OB 베어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달나라만큼이나 멀어 보였던 레전드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우리 선수들이 미국에 가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레전드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만남이 이뤄졌기에 더욱 놀라웠다.


  『지난 22일 내한한 OB 베어스의 미국 프로야구 자매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스탠 뮤지얼 부사장, 화이티 허조그 감독, 유격수 오지 스미스, 도루왕 빈스 콜맨 등이 24일 OB 베어스의 제주전지훈련장을 찾았다. 이들은 OB 선수단과 간담회에서 프로선수로 대성할 수 있는 비결의 일부를 털어놓았고, 간단한 기술지도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1988년 1월 25일자 경향신문>


 스탠 뮤지얼이 누군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을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전설 중의 전설. 194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963년까지 22시즌 동안(1945년은 징병으로 군복무) 통산 3630안타, 타율 0.331, 475홈런, 1951타점을 기록했다. 7차례 타격왕과 3차례 내셔널리그 MVP에 올랐고,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뮤지얼은 기량뿐만 아니라 신사다운 풍모로 ‘더 맨(The man)’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야구장 안팎에서 사랑을 받은 모범적인 슈퍼스타였다.


 1987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코치 연수를 간 이광환 전 감독이 스탠 뮤지얼 세인트루이스 부사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광환 전 감독 제공


 빈스 콜맨은 메이저리그 통산 752도루를 기록한 ‘대도’다. 지금도 이 부문 역대 6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특히 1985년 110도루, 1986년 107도루, 1987년 109도루 등 방한 직전에 3년 연속 세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당시 현역 최고의 도루왕이었다.


 오지 스미스는 두 말할 필요가 없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유격수. 1978년 빅리그에 데뷔해 1996년까지 19년간 활약하면서 수비 하나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을 통솔한 화이티 허조그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명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감독으로 활동하며 통산 1281승을 올렸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세인트루이스 감독을 지냈는데, 만년 중위권이던 세인트루이스를 1982년 월드시리즈 우승과 3차례 내셔널리그 우승으로 이끌면서 ‘화이티볼’로 주가를 높였다.


 이들이 한국에 온다? 1987년 1월,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들의 방한 소식은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이들이 방한했을 시점엔 일찌감치 스프링캠프에 돌입한 KBO리그 팀들이 훈련에 매진하던 시기. OB 구단은 새해 벽두부터 제주도로 내려가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이 서울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당시 구단 매니저로 선수단과 함께했던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이 그 시절의 기억 한 자락을 펼쳤다.


 “사실 당시엔 제주도에서 훈련을 할 수 있는 운동장이 여의치 않았어요, 서귀포중학교 운동장을 빌려 전지훈련을 했거든요. 메이저리그 유명 스타들이 온다니까 선수단도 잔뜩 들떠 있었죠. 그러나 여건은 정말 열악했어요. 운동장도 크지 않았고, 한쪽 구석에 망 하나 갖다 놓고 거기서 토스배팅을 했거든요. 배팅케이지라도 갖다 놓고 제대로 타격을 해야 폼이 어떤지 봐줄 수 있잖아요. 토스배팅하는 모습만 몇 번 보고 선수의 장단점을 얼마나 잘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


 구 사무총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다시 30년도 훨씬 넘은 추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들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우리 선수들을 지도해 줬던 것 같아요. 스탠 뮤지얼은 대타자답게 타격을 봐줬죠. 우리 선수들이 토스하는 볼을 치니까 교과서적인 타격폼이 나왔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뮤지얼이 나쁜 점은 얘기하지 않고 "다들 좋다"고 칭찬만 많이 해주더라고요. 빈스 콜맨은 도루와 베이스러닝 노하우 등을 전수해 줬어요. 베이스에서 리드하는 요령, 스톱하는 방법, 스타트를 끊을 때 왼발과 오른발 위치 등 국내에서는 잘 신경 쓰지 못했던 세밀한 부분까지 조언을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명색이 프로라고 해도 훈련 여건이 열악하니까 좀 창피하기도 했죠, 제대로 훈련 환경이 갖춰졌더라면 최고의 스타들한테 그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아쉽더라고요.”


화이티 허조그 감독이 지은 <챔피언 만들기>. 고 이종남 기자의 번역을 통해 서울 OB 베어스가 펴냈다. ⓒ두산베어스


●세인트루이스에서 배운 것들


 『이날 OB 선수들은 기술을 몇 가지 전수받았다는 것보다는 카디널스 팀의 프로선수로서의 정신자세, 생활태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허조그 감독은 “감독의 능력이란 훌륭한 선수를 끌어모으는 것이며, 그들이 잘해야 감독이 훌륭해지는 것”이라며 “좋은 야구팀은 구단, 감독, 코치, 선수들의 일치단결된 노력으로만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날의 슈퍼스타인 스탠 뮤지얼 부사장은 은퇴 후의 생활이 선수로서의 생활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재산증식에 힘을 쏟으라는 현실적인 충고를 해주었다.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 선수인 오지 스미스는 “추진력(Drive) 결단력(Determination), 욕망(Desier) 등 ‘3D’를 갖춰야 스타의 대열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1988년 1월 25일 경향신문>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의 스타들이 하는 조언들은 허투루 들리지 않았을 터.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비록 짧은 첫 만남이었지만 자매결연 효과는 컸다. OB는 자매결연 관계를 십분 활용하면서 그 이후 세인트루이스와 적극적인 교류를 이어갔다.


다음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기사들이다.


<1988년 12월 8일자 경향신문>
『프로야구 OB 베어스는 내년 1월 16일부터 2월말까지 약 45일간 일본 다이요 훼일즈 팀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투수 2명과 포수 1명을 파견, 연수를 시킬 계획이다. 한편 OB는 내년 9월에 실시되는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교육에 코치 1명과 선수 4~5명을 파견, 연수시키기로 했다.』


 <1989년 3월 22일자 조선일보>
『 박용민 OB 베어스 사장은 미국 프로야구 자매구단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팀의 프레드 쿨만 사장의 초청으로 21일 출국했다. 박 사장은 1주일 동안 카디널스 팀의 스프링캠프를 참관하며, 기술 교류 등을 협의한다.』


 <1989년 9월 8일자 경향신문>
『프로야구 OB 베어스는 8일 최동창과 서일권, 송명철, 황태환 등 4명을 15일부터 40일간 미국의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열리는 미 프로야구 교육리그에 파견키로 했다. 이 같은 연수는 지난 3월 OB와 자매구단인 미국 세인트루이스 팀과의 합의에 의해 이뤄진 것.』



<1989년 11월 18일자 동아일보>
『프로야구단 OB는 17일 창단 이래 구원투수로 활약했던 황태환(37) 씨와 계약금 2천만 원, 연봉 1천7백만 원에 코치계약을 했다. 황 코치는 지난 5월부터 4개월간 미국 프로팀 세인트루이스에서 코치수업을 받았다.』


<1993년 9월 27일자 한겨레>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세인트피터즈버그 교육리그에는 지난해 OB의 1차지명 선수였던 대졸 신인 추성건과 고졸 포수 황용승 이도형 등이 자매구단인 미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신인선수팀에 초청돼 8개팀이 35게임씩 벌이는 교육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OB는 지난해 교육리그에 박현영 이명수 장원진을 보내 이명수를 주전급 2루수, 박현영을 김태형과 함께 포수석을 맡길 수 있는 선수로 키우는 등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둬 이번에도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1995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프로야구단 OB의 김형석과 임형석 강병규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출전하게 됐다. OB의 경창호 사장은 최근 미 프로구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방문, 주전 선수들의 경험 축적과 자신감 배양을 위해 조 토레 감독에게 제의한 결과 한국 선수로선 처음으로 이들 세 명이 오는 8일부터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참가하게 됐으며, 카디널스 팀의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합숙훈련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1996년 3월 5일 경향신문>
『프로야구 OB가 4일 미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 알랭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연습경기에서 안타수 7-5의 공격력 우세를 바탕으로 3-1로 역전승했다.』


 이처럼 OB 베어스는 세인트루이스 자매결연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왔다. 특히 1994년 OB는 선수단 이탈로 난파선이 됐는데, 김인식 감독의 영입과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참가 등을 통해 분위기 쇄신에 성공하면서 1995년 기적 같은 두 번째 우승을 이루게 된다(이 내용은 추후에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OB베어스는 KBO리그 최초로 중앙 응원석에 전자 오르간을 설치했다. 당시 음대생이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 ⓒ두산베어스


 세인트루이스와 자매결연의 효과는 꼭 야구 기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구단 운영과 마케팅 기법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두산그룹 기획실에서 일하다 1983년부터 OB 베어스 구단에서 주로 홍보와 기획을 맡은 이태현 전 홍보실장은 이에 대해 설명했다.


 “OB 베어스는 초창기에 최초로 팬북을 만들고,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고, 경품을 추첨해 팬들에게 선물을 하는 등 최초의 기록을 많이 썼어요. 최초를 많이 좋아했죠(웃음). 그런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과 자매결연을 하면서 선수와 코치들이 세인트루이스로 많이 연수를 가게 됐어요. 그리고 구단 직원들도 직접 미국으로 가서 메이저리그 구단 운영과 마케팅 시스템을 보고 배울 수 있었죠. 그것을 국내로 들여와 접목을 많이 했어요. 1988년에 제1회 OB베어스기 서울시 리틀야구 선수권대회도 열었고, 중앙 응원석에 전자오르간을 설치해 응원을 하는 기법도 도입했죠.”


 전자오르간. 이 대목에서 올드팬들은 아마도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를 듯하다. 햇살 따뜻한 봄날의 낮경기. 잠실구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전자오르간의 선율. 그리고 관중석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즐긴 1980~90년대 프로야구의 아날로그적 낭만. 그 추억이 아지랑이처럼 함께 피어오른다.



OB 베어스 이전에도…세인트루이스와 한국의 오랜 인연

세인트루이스의 전설적 스타 스탠 뮤지얼(가운데)이 1958년 메이저리그 팀으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세인트루이스를 초청한 장기영(오른쪽) 한국일보 사장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요즘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선수가 ‘KK’ 김광현일 것이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2년간 활약하면서 국내 팬들에게 더욱 친숙해졌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구단이다. ‘돌부처(Stone Buddha)’ 오승환이 메이저리그 무대로 진출해 처음 뛰었던 구단이 세인트루이스였고, 비록 빅리그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최향남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 포스팅시스템으로 나섰을 때 이적료 101달러로 손을 내민 구단도 세인트루이스였다.


 이에 앞서 1987년 이광환 전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구단 연수를 받은 구단도 세인트루이스였다.

 OB 베어스 수석코치였던 이광환은 1986년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언스 연수를 끝내고 1987년 자매결연 구단인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1호 연수를 갔다. 당시 허조그 감독은 동양에서 온 작은 신사를 남달리 아꼈다. 단순한 한 명의 연수생이 아니라 가족처럼 대해줬다. 정식 코치는 아니었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양해를 구해 한 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선수단과 동행하도록 배려하면서 회의에도 참가시키고, 벤치에도 들어가 모든 경기를 함께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사실상 세인트루이스 코치 대접을 해준 것이었다.


 현재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이광환 전 감독은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세인트루이스는 자매결연을 계기로 한국과 큰 인연을 이어갔어요. 당시 버드와이저가 세인트루이스 구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맥주 공장도 한국에 짓고 한국 시장에 진출을 할 정도였죠.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지만 세인트루이스는 OB 베어스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어요. 그 덕분에 내가 혜택을 많이 받았죠. OB 구단 추천으로 한국인 최초로 세인트루이스에 연수를 갈 수 있었고. 허조그 감독은 나를 ‘러키 보이’라 불렀어요. 저한테 라인업 작성을 한번 맡겼는데 이기니까 그 이후 라인업 작성을 자주 맡겼어요. 아무튼 스프링캠프부터 연수를 시작했는데 때마침 그해에 세인트루이스가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면서 저로서도 큰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이광환은 귀국 후 1988년 OB 베어스 2군 감독에 이어 1989년 3대 감독에 오르게 된다. 비록 베어스 감독으로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메이저리그식 자율야구와 투수 분업화 등 그가 국내에 전파한 선진 시스템은 훗날 한국야구의 물줄기를 바꾸는 방향타가 됐다.



1958년 세인트루이스 방한 경기 때 이승만 대통령이 관중석에서 그물 사이로 시구하는 장면 ⓒ한국야구사


 프로 시대 이전까지 따지자면, 세인트루이스와 한국야구의 인연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한국을 찾은 최초의 메이저리그 팀이 바로 세인트루이스였다. 이 방한 팀에도 스탠 뮤지얼이 포함돼 있었다.


 세인트루이스는 당시 한국 대표팀 격인 전서울군과 친선경기를 펼쳤는데,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는 역사적인 경기를 보기 위해 2만 명의 관중이 들어와 야구장을 가득 메웠다.


 이날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야구장에서 시구를 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마운드가 아닌 관중석에서 시구를 한 것이었다. 그물을 가로·세로 1m 크기로 뚫어 구멍 사이로 포수 김영조에게 공을 던져줬다. 


 이 경기에서 전서울팀은 0-3으로 패했는데, 당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국의 선발투수 배용섭이 등판하자마자 3연속 안타를 맞고 1실점하자 에이스 김양중이 곧바로 투입됐는데 7회까지 무실점으로 막는 역투를 펼쳤다.


그 사이 6회에 일(?)이 있었다. 김양중이 볼카운트 1B-2S에서 스트라이크존에 꽉 찬 공을 던졌지만, 미국인 에드워드 스톤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김양중의 다음 공은 바깥쪽으로 벗어났다. 그런데 뮤지얼이 일부러 헛스윙을 한 뒤 곧바로 덕아웃으로 향했다. 앞선 공이 스트라이크여서 이미 자신은 그전에 아웃을 당했다는 의미였다.


저녁에 김양중을 호텔에서 만난 뮤지얼은 “당신이 던진 그 볼이 내겐 가장 승부하기 힘든 볼이었다”고 말했다. 뮤지얼은 그만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신사였다.


 그 전설적 스타 뮤지얼이 30년 후인 1988년 다시 방한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뮤지얼은 뮤지얼대로, 한구야구는 한국야구대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1958년 맞대결을 펼쳤던 뮤지얼과 김양중은 공교롭게도 2013년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OB의 주선으로 메이저리그 연수를 떠난 이광환 코치(왼쪽)와 세인트루이스 허조그 감독. ⓒ이광환 전 감독 제공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메이저리그 구단과 자매결연을 하는 게 소소한 일처럼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프로화의 걸음마 단계에 있던 그 시절, 메이저리그 구단과 자매결연은 신문물을 흡수하는 신항로의 개척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KBO 각 구단들은 나름대로 프로야구 출범 후 해외 선진 야구를 배우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그러나 대부분 가까운 일본 프로구단 교류에 국한돼 있었다. 자매결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OB 베어스는 메이저리그 구단과 KBO 최초 자매결연을 통해 더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세인트루이스는 월드시리즈에서만 11번 우승한 전통의 명문 구단이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에서도 뉴욕 양키스(21회) 다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많이 차지했다.


 OB 베어스가 자매결연 구단 세인트루이스에서 배워 온 노하우들은 훗날 알게 모르게 베어스 구단뿐만 아니라 한국 야구 발전의 밀알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베어스 출신 지도자들이 현장에서 활발하게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이 같은 전통을 쌓은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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