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누나들
어렸을 때는 첫째랍시고 부모님을 대신해서 항상 동생들에게 엄, 근, 진(엄격, 근엄, 진지)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동생들도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이제는 내가 동생들에게 엄살을 자주 피우게 되었다.
그런데 요 최근 몇 년 사이 엄살쟁이인 내 자리를 위협하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집 막내 '남동생'이었다.
평소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는 않아도 누나들한테 잔소리는 많았던 동생이
요즘에는 누나들한테 속마음도 곧잘 이야기하면서, 어느 순간 엄살쟁이 면모가 슬며시 드러나게 됐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이 날은 내가 마감에 쫓겨서 하루종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만 하던 날이었다.
주말 온종일 일만 하고, 간신히 마감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아, 드디어 끝났다."라는 안도감과 함께
쾌감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제 기쁘게 휴대폰을 보면서 쉬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아프다."
대뜸 전화 와서는 어디가 아프다도 아니고, 아프다라고 말하길래 깜짝 놀랐다.
이 녀석이 장난을 하는 건가 싶어서 상황판단이 안되었는데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짜증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마감 업무 처리하고 이제 막 쉬려던 타이밍에 찬물을 끼얹는 당혹스러운 소식에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릴 때가 되자 짜증을 내던 남동생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동생이 걱정만 안기고 전화를 끊어버리자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어디가 그렇게 아픈지 걱정이 되어 전화도 걸고, 카톡도 여러 통을 남겼다. 남동생도 내가 다정하게 위로해 줄 줄 알았는데, 화를 내자 속상 했는지 연락을 한동안 안 하다가 내가 보내는 폭탄 카톡에 그제야 슬며시 몇 마디 답장을 해주었다.
어릴 때부터 한 번씩 아팠던 남동생이 아프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종종 느꼈는데, 이날은 그 걱정이 조금 더 심했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걱정하는 말이 앞섰겠지만, 이날은 "아프면 병원을 얼른 가야지!"라고 화를 내버렸다. 떨어져 있는데, 아프다고 하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더 큰일이 나기 전에 병원을 얼른 가서 뭐 때문에 아픈지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몇 분 간 동생과 연락이 끊긴 동안 나는 동생이 평소 어디가 안 좋은지 알았기에 블로그며, 유튜브며 영상을 찾아서 원인과 큰 병은 아니라는 안심시킬만한 내용을 찾아서 보내주었다. 동생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통화를 했고, 서운함을 푼 채 통화가 종료되었다.
푹 쉬려다가 제일 걱정되는 소식을 듣고는 쉴 마음이 싹 달아나버렸다. 하지만, 동생의 괜찮다는 말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성인 남자애인데도 동생은 동생이라고 왜 이렇게 매번 걱정이 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남동생은 가끔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힘들 때면 한 번씩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하곤 했다.
원래는 말이 없는 편이라 '아프다.'라고 하면 덜컥 걱정이 되지만, 몇 번의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나자 이제는 아프다고 하면 '응석 부리고 싶어서 그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누나들인 우리가 남동생을 챙겨주는 방법은 남동생이 왔을 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이야기를 많이 들어준다. (물론 결제는 가끔 남동생이 직접 한다.) 그리고, 가끔은 동생이 쓸데없는 걸로 걱정을 하고 있으면 옆구리가 섬뜩할 정도로 현실적인 팩트폭행을 날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원한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인지 그런 말을 듣고 나면 동생의 걱정이 어느 정도 날아가는 듯한 모습이 보여서 흐뭇하기도 하다.
다 큰 성인 남자이고, 덩치도 듬직하지만 여전히 어린이처럼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누나들)는 남동생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생도 그걸 알기에 가끔 사람을 놀랄 만큼 '아프다.'는 말로 걱정을 시키기는 하지만, 차라리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아프다고 이야기해 줘서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고맙게 느껴진다.
어제도 동생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었는데 결제는 남동생이 했다.
맛있게 잘 먹었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