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골목의 한판 승부
이 글은 흩어져 있던 글을 브런치북의 흐름 안으로 다시 데려온 재수록 글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왕십리 나의 동네는 낭만과 추억이 가득한 놀이공간이었다.
나를 포함해 몇 명의 리더가 골목대장이 되어 서로 경쟁하며 매일 시간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자치기, 다방구, 오징어짬뽕, 땅따먹기, 계급장 먹기, 구슬치기, 팽이놀이 등등.
그중에서도 딱지치기가 몇 년간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A4용지보다 조금 크고 긴 용지에 한 장씩 뗄 수 있게 만들어진 동그란 딱지, 지름 4cm 남짓. 딱지마다 만화주인공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별의 개수와 숫자, 글자가 달랐다. 양손에 딱지를 쥐고 손을 내밀어 숫자나 별이 많은 쪽이 이기는 접기 게임은 딱지 먹기의 진수였고 남다른 스릴이 있었다.
그 외에도 한 장씩 꼬집어 따먹기, 새끼손가락으로 튕겨 멀리 날려 먹기, 손바닥으로 쳐 뒤집힌 만큼 먹기, 벽에서 떨어뜨려 서로 붙으면 먹기 등 다양한 방식이 있었다.
나는 집에서 부단히 연습하며 기술을 익혀 수천 장을 모았다. 일부는 어린아이들에게 팔고 다시 되따기도 했다.
동네에는 딱지 부자 삼 형제가 있었다.
육 학년 어느 날, 잊을 수 없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삼 형제는 동네에서 제일 많은 딱지를 보유하고 원정을 다니며 딱지를 모으는 절대강자였다. 그중 막내와 눈이 맞아 운명의 닦지 먹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기분 좋게 따고 있었지만, 큰형이 다가왔다.
“왜 이리 지고 있냐? 나랑 하자.”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다른 동네까지 소문 난 제일 잘하는 형이 아닌가.
“야, 접어!”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나 보고만 계속 접으란다. 원래는 이긴 사람이 접어야 한다.
그 말은 내가 다 잃을 때까지 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나는 시간만 연장될 뿐 다 잃을 거라 생각했지만, 머리를 굴려 최선을 다했고, 용케도 잘 버텼다.
잃지 않고 의외로 조금씩 더 땄다.
그러자 형이 안 되겠는지 잠시 자리를 떠나더니 상자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수천 장이 들어 있어 내 집에 보유하고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이었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심장이 뛰었다. 실전에서 많은 양의 딱지를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 크게 걸면 승부는 끝이다.
형이 500여 장을 걸어 판을 키우자, 수십 명의 골목 아이들이 이 광경을 놓칠세라 모여들었다. 다시는 보기 힘든 이 광경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이제 동네 최고의 큰 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손에서 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이런 경험도 전무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계속 이겼다.
형은 당황했고, 내 기쁨은 잠시, 두려움이 곧 뒤따랐다. 형이 고심하다 남은 딱지를 올인했다.
순간 세상은 너무 크게 정지했다. 이길 수 있을까,
“이번엔 정말 끝이겠지….”
확률상 내가 질 타이밍인데, 드디어 허망하게 이 수고가 헛되게 끝나는 것인가.
올인하는 게 어디 있냐고 거부할 수도 없다.
내가 따고 있고 또 힘 센 형이라 비위를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하나님이 내편이었다.
또 이겼다.
속으로 기뻐 날뛰었지만, 내색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 형은 크게 당황하며 얼굴이 상기됐다.
나 역시 기쁨은 잠시 뿐, 두려움이 그 기쁨을 밀어냈다.
그 순간, 형이 다시 상자를 들고 왔다. 이번엔 딱지가 훨씬 더 많았다.
“야, 접어!”, '아, 어쩌지' 잠시 심호흡을 하며 생각했다. 못내 아쉽지만 내 본전은 몇백 장이었으니 다 잃어도 괜찮다를 되뇌며 딱지를 접었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덜덜 떨며 손을 내밀었다. 아까 올인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딱지를 또 한 번에 걸었다. 이제는 끝났구나 싶었다.
"여기" 하며 형이 권투의 어퍼컷처럼 내 한 손을 밑에서 위로 쳤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딱지를 뒤집고 손을 편순간 "앗"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또다시 이겼다.
온 동네가 흔들리는 듯, 아득했다. 아이들의 환호 속에서 나는 이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고 어떻게든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 찰나의 순간, 아득 그때 한 줄기 광명의 빛,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멀리서 어머니가 손짓하며 서 계셨다.
“네, 엄마! 지금 갈게요!”
이제 그만이라는 뜻으로 큰 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얻은 듯, 동생과 딱지를 챙겨 꽉 움켜쥐고 도망치듯 집으로 뛰었다. 웃고 또 웃었다.
‘엄마, 고마워.’
그 후 며칠간 나는 집안에서만 지냈다.
형이 두려워 동네로 나가지 않았다.
이제 딱지를 딸 이유가 사라졌다.
가끔 부하들에게 새끼손가락 분량으로 백여 장씩 나눠주며 즐기는 수준으로만 남았다. 다행히 형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늦은 가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했다.
어머니께서 “이제 공부해야 할 때니 딱지를 다 버려라.”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한 달여간 대치 했다.
버릴 수는 없었다.
집이 작아 숨길 곳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장독대를 선택해 자루에 넣어 후미진 뒤쪽에 몰래 감췄다.
며칠 후, 밤에 장대비가 내렸다.
새벽까지 걱정하며 밤잠도 설치고 눈을 떴다. 다행히 30%만 젖었고 나머지는 안전했다.
반나절을 고민하고 중대 결정을 내렸다. 동생을 불러 말했다.
“딱지를 자전거에 싣고 동네 한 바퀴 돌며 뿌리면서 아이들에게 나눠줘.”
그간의 노력을 곱씹으며 직접 뿌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내가 직접 할 수 없었다.
나중에 그 상황을 자세히 들으며 상상으로 만족했다.
이렇게 나의 2년여 남짓한 딱지 대전은 끝났다.
왕십리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딱지를 수만 장 모았던 나는, 동네 아이들의 전설이 되었다.
그 멋지고 긴박했던 추억이 잊히지 않는다.
그 당시 딱지는 아이들의 몇 가지 안 되는 귀중한 보물 중 하나였다.
지금은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들의 세상과 달리, 그때의 추억은 순수하고 사뭇 다른 짜릿함이었다.
이따금 문방구에서 딱지를 보면 그날의 무용담이 떠올라 빙그레 웃는다.
지금 가지고 있었다면 박물관에 기증할 수도 있었을 귀한 딱지들.
아쉽지만, 그날의 세상은 이미 내 것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
코에 늘 달고 다니던 콧물, 시커멓게 더러워진 얼굴, 불량식품을 입에 물고 뛰놀던 순박한 시절.
치열하게 동네 대장 노릇하던 왕십리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리고 그 형은 왜 나에게 그 후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을까?
거의 다 잃어서일까, 나와 붙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이유는 모르지만, 그날의 세상은 이미 내 것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