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치기 전쟁

깨진 후에야 보이는 것들: 3개월 천하

by 캔디의 여백

딱지치기의 시절이 저물어갈 즈음, 내 유년의 전장은 팽이치기판으로 옮겨갔다.

골목에 모인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팽이를 깎고 다듬으며 기량을 올렸다. 그중 한 좁은 골목에는 동네에서 내로라하는 상위 랭커들이 늘 기웃거리며 날 선 승부를 겨뤘다.

그 시절의 팽이는 지금의 매끄러운 플라스틱 팽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팽이 몸통은 나무였고, 위에는 줄을 고정할 심을 박고, 아래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쇠촉을 박아 넣었다. 돌아가는 구조는 단순했지만 그 촉 하나에 각자의 자존심이 실렸다. 망치로 심과 촉의 수평, 수직을 정교하게 맞춰야만 떨림 없이 오래 돌았다. 마치 악기를 튜닝하듯 공을 들여야 했다. 그 골목에서 팽이는 장난감이 아니라,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무기였다.

기술도 몇 가지 있었다. 회전하는 팽이를 줄로 걸어 가볍게 낚아채 손바닥 위에 올리거나, 공중으로 날렸다가 잡아당겨 바로 손바닥에 받아내는 개인기 같은 것들. 돌아가는 촉에 줄을 대고 개구리처럼 점프시키며 이동하는 기술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그런 기교가 아니었다.

팽이를 돌리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사이드암 투수처럼 안전하게 던지는 방식이 있었고, 문제는 두 번째 방식이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줄을 감아 상대 팽이 위로 던진 뒤, 수직으로 내리꽂는 무자비한 찍기였다. 제대로 걸리면 나무 팽이는 비명도 못 지르고 두 동강 나기도 했다. 겨뤄 보기도 전에 끝나 버리곤 했다.

이건 그냥 누가 오래 도느냐를 겨루는 평범한 놀이가 아니었다. 그 골목의 잘하는 형들이 판을 쥐고 있었다.

용케 살아남은 팽이들은 줄로 촉을 건드려 전진시키며 일대일로 부딪혔다. 서로 박치기하듯 튕겨 나가도, 강한 팽이는 죽지 않았다. 최고수의 팽이는 돌아가는 모습만으로도 기가 죽었다. 여러 번 부딪혀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형들의 팽이를 이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팀전도 있었고 개인전도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기술을 익혔지만, 형들이 정교하게 다듬은 팽이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딱지먹기와는 달랐다. 중간은커녕 지기 일쑤였고, 팽이를 향해 무차별로 꽂히는 형들의 공격은 서늘하기까지 했다.

야구 선수가 강속구를 던지듯 꽂아 넣는 그 일격에 팽이들은 맥없이 죽어 나갔다. 재미라기보다 승부에 가까웠고, 어떤 날은 살벌하기까지 했다. 형들은 너무나도 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절을 맞아 내려간 큰집 근처 문방구에서 운명처럼 팽이 하나를 발견했다. 돌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검은색 팽이였다. 내가 따로 깎거나 다듬을 필요도 없는 완벽한 형태였다. 그 팽이를 마주한 순간, 가슴이 뛰었다.

'이게 통할까.'

의문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건 무적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었다.

나는 비장의 무기를 품은 장수처럼, 그 팽이를 쥐고 다시 그 골목으로 나갔다. 다들 시선이 일제히 내 손바닥 위의 검은 물체에 꽂혔다. 나무 팽이뿐이던 전장에 등장한 이질적인 존재에 골목은 술렁였다.

다들 어디서 났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줄을 감아 돌팽이를 돌렸다. 그리고 승부가 이어졌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결과는 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내 팽이와 부딪히는 나무 팽이들은 맥없이 뒤로 튕겨 나갔다. 내 팽이는 그야말로 거침없는 탱크였다. 위에서 내리꽂으면 상대는 그 자리에서 숨을 멈췄다.

동경의 대상이던 최고수 형들의 팽이와 맞붙어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우위를 점했다.

그렇게 내 검은 팽이는 전설이 되었고, 나의 3개월 천하가 시작되었다. 형들은 탐탁지 않아 했지만, 별다른 놀이가 많지 않았던 우리는 결국 같이 놀았고 나를 끼워 주었다.

그러나 3개월쯤 지나고 나서, 기류가 바뀌었다.

판이 시작되면 형들은 서로의 눈을 먼저 훑었다. 말수는 줄었고 기색은 험악해졌다. 그리고 어느 판부터는,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내 검은 돌팽이만 표적으로 삼아 무차별적인 찍기를 퍼부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얻어맞는 횟수가 쌓이자 영원할 것 같던 검은 몸통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또 한쪽 면이 조금씩 파여 나가는 것을 보며 내 마음도 함께 아려왔지만, 나는 그 신호를 애써 무시했다. 단단한 것은 금이 가기 시작하면 더 분명하게 무너진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결국 어느 날, 형 한 명의 무지막지한 찍기 한 방에 팽이의 한쪽 면이 뚝 떨어져 나갔다. 그들의 작전은 성공했다. 나의 왕좌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려서 타협을 몰랐다. 형들이 의기투합해 나를 몰아세울 때, 가끔은 져주며 적당히 어울려 웃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그저 정직하게 강했고, 그 대가를 고스란히 받았다.

깨진 조각을 손에 쥐고 돌아선 뒤, 나는 더 이상 그 골목에 가지 않았다.

나무 팽이를 새로 사지도 않았다. 다시 패배하는 것이 싫었던 건지, 아니면 집단의 차가운 공격에 마음이 다친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아, 그 돌팽이를 다시 구하러 갈 생각조차 들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울며 그 골목을 애써 피했다.
지나치지도 않았다.
차라리 혼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이상하게도 그때 이후, 나는 승리의 기억보다 깨지던 그 순간을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기던 날의 소리는 늘 소란스러웠으나 금세 잊혔다.

하지만 깨지던 순간의 소리는 달랐다. 팽이가 멈추는 소리, 금이 벌어지는 소리, 그리고 주변 아이들이 일순간 숨을 들이키던 그 정적의 틈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손바닥에 남은 것은 승리의 감촉이 아니라, 잘려 나간 단면의 차가움이었다. 검은 팽이를 쥐고 있으면 내 손가락이 먼저 그 균열을 기억했다. 울퉁불퉁한 모서리와 미세한 가루, 촉 끝에 묻은 흙. 그날 골목의 빛도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완전했던 것은 눈을 멀게 했지만, 부서진 것은 눈을 뜨게 했다.
부서진 조각은 왜 그렇게 날카롭고도 시리게 반짝였을까.

나는 깨진 팽이와 그 조각들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골목을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또 다른 팽이가 돌기 시작했지만, 그 소리는 내게서 점점 멀어졌다.

지금도 살아가다 마음 어느 구석에 금이 가는 순간이면, 나는 그때처럼 말 대신 손을 먼저 쥔다. 그리고 한 번쯤 생각한다.

내가 끝내 떠나온 것은 골목에 남은 팽이 전쟁의 잔향이었을까, 아니면 그날 처참히 깨진 내 자존심이었을까.

그 질문은 여전히 내 안에서, 팽이처럼 멈추지 않고 천천히 돌고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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