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버틴 사람들의 얼굴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차가운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는 매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며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각자의 성벽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끝까지 버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영화 <안시성>을 다시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화려한 전투 장면에 시선이 먼저 머물렀고, 이번에는 그 성을 끝까지 지켜낸 사람들의 마음에 가슴이 먼저 뜨거워졌다.
화면을 가득 채운 액션보다 오래 잔상으로 남은 것은, 죽음을 불사하고 성벽을 지켜낸 이름 없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215억 원의 제작비, 544만 명의 관객.
이번에는 그런 숫자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영화가 담고 있는 본질이 묵직한 파동이 되어 가슴을 울렸다.
중국이 예나 지금이나 감추고 싶어 하는 이 위대한 전투를, 정작 우리는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만춘 성주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런데도 정사에는 그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오직 '안시성주'라는 직함으로만 남았던 그에게 '양만춘'이라는 이름을 찾아준 것은 공식 기록이 아닌 민간의 기억과 야사였다.
어쩌면 기록에서조차 소외되었던 그였기에, 성벽 위에서 함께 피 흘린 이름 없는 백성들의 얼굴과 가장 닮아있는 영웅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전투가 우리 역사에서 반드시 손꼽혀야 할 전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단지 유명한 승전 기록이 아니라, 한 시대의 기세와 존엄이 걸린 결전이었다고 믿는다.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군이자 명장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광활한 대륙을 제패한 군주였고, 전쟁의 감각 또한 탁월했다. 고구려의 15만 대군을 주필산에서 무너뜨렸고, 수나라 황제조차 정벌에 고전했던 요동성도 수월하게 점령했다. 그런 이세민의 군대가 수십만 대군으로 승승장구하며 진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파도가 안시성 앞에서 멈췄다.
양만춘 성주의 5천 군사 앞에서 88일, 석 달 가까이 토산까지 쌓아가며 온갖 공성 공격을 퍼부었지만 안시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결국 이 작은 성 하나를 점령하지 못한 채 대군은 퇴각했다. 수나라가 을지문덕 장군에게 대패한 이후 수십 년 만에, 전쟁의 신이라 불리던 이세민조차 패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경이롭다.
그는 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3년 뒤 죽음을 맞이했는데, 요동 원정을 자신의 과오로 여기며 더 이상의 고구려 원정을 경계하는 뜻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나는 이 대목에서 늘 숨이 막힌다. 이건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버팀이 기적처럼 보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그 고립된 성 안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성벽을 지키던 이들은 적군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두려웠을까.
화면 너머의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정말 무섭지 않았느냐고.”
눈앞에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적군, 성은 고립되었다는 소문, “평양성으로 다 빠지고 여긴 버려진 곳이다.” 같은 절망적인 이야기들.
항복하자는 말이 왜 없었겠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 왜 간절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버텼다. 이 다윗과 골리앗 같았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 두려움이 울부짖음이 되고, 그 울부짖음이 비장한 절박함으로 바뀌고, 마침내 죽음도 각오한 결사 항전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다.
사람은 몰리면 무너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몰린 자리에서 전혀 다른 기세를 만들어낸다.
죽음을 각오한 마음이 한 번 붙으면 인간은 경이로울 만큼 강해진다.
문득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산을 뽑아 던지고 세상을 덮을 만큼 거대한 힘과 기운.
하지만 안시성 위, 양만춘의 눈빛에서 읽어낸 그 기개는 결이 달랐다. 그것은 누군가를 짓밟는 '정복의 칼날'이 아니라, 소중한 것들을 기어이 살려내겠다는 '수호의 방패'였다.
그 웅대하고도 뜨거운 결의가 장수들의 심장에 불을 지피고, 마침내 그 기세가 지친 백성들의 가슴 속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을 것이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성 안은 이제 두려움을 집어삼킨 거대한 하나의 심장으로 고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확신한다. 안시성의 승리는 정교한 무력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기개가 빚어낸, 그리고 서로를 향한 믿음이 일궈낸 세상에서 가장 웅장한 기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안시성은 안전한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버티게 하는 걸까?
우리가 각자의 성벽 위에서 끝내 지키려 하는 것들, 그 뜨거운 본질에 관한 이야기는 2부에서 이어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