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안시성은 어디입니까 2부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안시성을 지킨다

by 캔디의 여백

안시성 전투는 끝났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성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마다 모양은 달라도, 무너질 것 같은 현실 앞에서 끝까지 버텨야 하는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

나는 우리 역사 속에서 유독 고구려라는 시대에 매료되곤 한다.
고구려를 떠올릴 때면 강인한 기상의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거친 풍파 속에서도 광활한 영토를 개척하며 지켜온 그들의 호전성과 강인함 때문이다.

광개토대왕과 을지문덕 장군에 이어 고구려의 기개를 보여준 양만춘 성주를 떠올리며 영화를 보니 감동이 더 깊게 밀려왔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흔들렸고, 지금도 주변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거대한 힘의 논리가 다시 고개를 드는 시대일수록, 나는 성벽 위를 묵묵히 지키던 양만춘의 얼굴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
​이런 현실에서 영화 속 양만춘 역의 조인성은 잠시나마 숨통을 틔워주었다.
무술도 뛰어나고 잘생기고, 백성을 돌보는 따뜻함과 적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이런 리더의 존재는 보고만 있어도 힘이 났다.

나는 영화를 내내 보며,
"이 내용과 기개가 모두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그만큼 그 강인한 기운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의 소식은 답답하고, 위대한 리더를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날이 많다.
어쩌면 우리는 당나라 이세민보다 더 무서운 적들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는 불안, 발밑부터 무너져 내리는 신뢰, 숨을 조여오는 생존의 압박, 그리고 비수처럼 꽂히는 타인의 냉소.

오늘 우리가 맞서는 적들은 당나라의 대군보다 더 교묘하고 집요하다.
그런 것들은 창칼보다 조용하지만 더 오래 사람을 무너뜨린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서는 치열한 일터가, 또 누군가에게는 텅 빈 방 안에서 홀로 견뎌야 하는 막막한 시간이 오늘 반드시 지켜내야 할 고립된 성벽일지도 모른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장벽 앞에서 우리는 자주 작아지고 두려워진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양만춘이 전설 속 주몽의 활을 당겨 이세민의 눈에 화살을 꽂는 장면은 사실 극적인 연출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가슴이 울컥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에서 끝내 한 방을 꽂아 넣는 순간, 무너질 것 같던 쪽에서 일어나는 기적 같은 반전.

우리는 모두 그런 삶의 반전을 기다리며 사는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오늘의 안시성 같은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한다면, 그 이유를 무엇이라 설명할까.

누군가는 전략이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리더십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하늘의 도우심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 말들이 서로 충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의 도움은 종종 사람의 절박한 결단과 공동체의 끈질긴 버팀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내 마음에 오래 남은 한 문장이 있다.

“이 나라가 안시성이면 좋겠다.”

강대국이 감히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나라. 밖으로는 단단하고 안으로는 서로를 지키는 난공불락의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리더는 성주처럼 책임 있게 나라를 지키고, 공직자들은 장수처럼 능력과 충성을 다하며, 우리 시민들은 안시성 사람들처럼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고 서로를 살피는 나라.
힘만 센 나라가 아니라 지킬 가치가 분명한 나라, 구호만 큰 나라가 아니라 사람을 끝까지 지키는 나라, 누군가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나라가 아니라 함께 버티고 함께 책임지는 나라.

그래서 안시성은 내게 단지 전쟁 영화가 아니었다. 희망을 잃고 지쳐가는 우리에게, "버텨낸 성도 있다"는 사실을 들려주는 안식처 같았다.


영화 속 조인성의 명대사가 여전히 귓가에 아른거리며 맴돈다.

“나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항복이란 걸 배우지 못했다.
어느 놈이 나의 소중한 것을 짓밟고 빼앗으려 할 땐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저 뒤를 바라봐라. 안시성 사람들! 우리에게 소중한 건 바로 저들이다!
저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

사람을 끝까지 버티게 하는 것은 영웅 한 사람의 무용담이 아니라, “내 뒤의 소중한 것들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성주의 단단한 결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그 마음을 배우고 싶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워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영화 속 양만춘은 주몽의 활을 당기며 기적을 만든다.
역사는 그의 이름을 명확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민초들은 그를 '양만춘'이라 부르며 역사의 빈칸을 채웠다.

거대한 제국의 황제에 맞서 성을 지켜낸 영웅의 싸움과, 오늘 하루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버티는 우리의 싸움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양만춘이 지켰던 것이 고구려의 변방이었다면, 우리가 지키는 것은 나의 가족, 나의 자존감, 그리고 내일로 나아갈 희망이다. 대상만 다를 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쏟는 땀과 눈물의 가치는 동등하다.

세상이 우리의 이름을 다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나만의 안시성' 위에서 묵묵히 버티는 그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위대한 기록이 된다.

오늘 하루, 각자의 고립된 성벽 위에서 나만의 소중한 것들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자기 삶이라는 거대한 영토를 책임지는 작은 성주들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단단한 결의로 나만의 자리를 지켜내는 그 마음 하나가, 이 삭막한 시대를 버텨내게 하는 가장 위대한 ‘작은 안시성’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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