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동위원소 치료까지 마쳤다. 언니의 두 번의 암선고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어느 순간 잠을 잘 때 가슴이 두근거리며 죽을 것 같은 감정을 겪었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으로 나의 어떤 말도 행동도 이해해 주는 유일한 대상이다.
한때는 언니가 싫었다. 언니를 언니로 보지 않고 철없는 동생 같았다. 늘 아픈 언니였다. 돈을 모으지 않고, 모았다 하면 가구를 사는 등 그것도 비싼 물품을 산다. “언니 이것 사면 안돼”, “형편에 좀 맞게 살아” 등 곧잘 충고하곤 하였다.
어느 날 언니의 장점이 눈에 들어온다. 가정 형편상 겨우 초등학교를 나온 언니이다. 어느 초등학교 미화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반장이 되었다. 언니는 청소하는데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먼지가 제거되는지 고민한다. 청소 잘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농사를 짓는다. 양파 심는 방법을 유튜브를 통해 공부한다. 올해 자색 양파는 크고 단단하다. 어느 전문가 못지않게 연구하며 일한다. 그 덕에 언니가 심어놓은 각종 유기농 채소를 맛있게 먹고 있다.
어느 순간 언니의 삶이 이해가 된다. 초등학교 때 언니가 무슨 일로 기분이 상했는지 자신의 머리를 벽에 박는 행동을 보았다.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의 무능함으로 엄마의 식당일을 도와야 하는 가장이었다. 식당일로 인해 제대로 수업을 듣지 못했고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했다. 부모에 대한 원망과 자책이 얼마나 컸을까? 50대 중반이 되어야 언니에 대한 비난이 멈추었다.
시집을 가서도 편치 않았다. 늘 아팠다. 결국은 자궁암으로 30대 후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60대 중반 갑상선 암에 또 걸렸다. 언니의 잦은 아픔은 나에게 좌절이었고 스트레스였다. 언니가 어떻게 되면 어쩌나 가슴이 뛰고 숨이 막혔다.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목소리는 전과 같지 않으나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참으로 감사하다.
언니는 돈을 쓰되 있는 만큼 쓸 뿐이다. 악착같이 모으지 않을 뿐이고 미래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쓰지 않는다는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정반대의 성격인 나는 미래의 위험을 대비해 저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오히려 내가 불안이 많은 듯싶다. 언니는 돈에 걱정 없이 살아왔다. 반면 나는 얼마나 벌어야 노후에 걱정하지 않고 순조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반복해 계산하고 또 계산한다.
삶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이지 뭐가 옳고 그름은 없는 듯싶다. 이제는 언니의 삶의 방식을 배우려 한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면 된다. 단 남한테 피해를 끼치거나 의존하지 않는 선에서 나의 불안을 해소하면 될 듯싶다.
아버지를 무척 싫어한다. 언니가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처럼 큰아들이 엄마에 대한 원망을 갖고 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늘 아픈 엄마에 대한 걱정과 염려, 불안 등의 감정을 안고 자랐다.
자신을 원망하는 아들에 대한 이해는 먼저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이 우선인 듯싶었다. 언니는 아버지에 대해 미워할 것도 용서할 것도 없다며 평상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 얘기를 하며 “그때 나를 차라리 고아원에 보냈으면 학교나 제대로 다녔을 텐데”라며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여움과 연민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사업 실패로 인해 집에 들어온 아들과의 관계가 다소 안정이 되었다. 제대로 관심 갖지 못하고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언니는 진심 어린 미안함을 전했다. 아들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 좀 편해졌다.
이런 언니가 좋다.
언니와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편안히 살다가 가고 싶다. 굉장한 욕심을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