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역행보살(逆行菩薩) 아버지

by 반야

역행보살의 의미는 자신에게 깨우침을 준 이를 말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역행보살이다.

어느 순간 차츰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간다. 쓰레기를 버린다며 집을 나왔다. 14층은 알지만 정확히 몇 호인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 다행히 옆집에서 발견하여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화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나 절대로 나가지 않을 거야”라며 당신도 매우 놀라신 듯하다.


올해 92세의 아버지, 엄마는 10년 전에 돌아가시고 아들 내외와 1년 못되게 살았다. 지금은 나하고 살고 있다. 동생은 늦게 낳은 아들을 키우느라 힘들었던지 돌아가면서 모시자고 한다.

언니는 몸이 좋지 않아, 결혼하지 않는 내가 아버지와 함께 8년을 살고 있다.


난 아버지가 싫었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고, 엄마만 고생시킨 아버지로 기억되었다. 항상 시집가라고 강요하던 그였다.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버지였다. 일찍 대학졸업 후 집을 나와 혼자 생활했다. 그는 나의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내가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상황이 너무 끔찍했다.


매일 식사를 차려드리고, 화장실도 같이 써야 했다. 개수대에서 손을 씻고, 잔뜩 박스를 주워다 방 안에서 조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박스는 고스란히 내가 치워야 했다. 속으로 내가 무슨 죄로 아버지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서글펐다.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 혼자 살고 싶어 결혼하지 않았는데, 나로 인해 동생 내외와 언니가 행복하면 됐지라는 마음에 위안을 삼았다.


귀도 들리지 않고, 밖으로 혼자 외출하지 못해 누군가와 항상 동행해야 했다. 3년 전부터 치매증상을 보였다. 금방 한 얘기도 잊어버리고, 더 많은 종이박스를 주워다 침대 주변에 장식하고 부숴버리고 다시 장식하고를 반복했다. 직장일도 힘든데, 이런 아버지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되새겼다. 법률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요양보호사라 여기며 최대한 개인적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의 모습을 통해 나의 노년을 본다. 84세를 고비로 밖에 나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친구의 관계도 단절되고, 귀가 들리지 않아 통화하기도 힘들고, 오고 가는 이는 오직 자녀들 뿐

그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식사시간, 1주일에 두 번 드라이브 정도, 취미생활도 어렵고 tv 보고 드러눕는 시간, 박스를 접었다 폈다 하는 일뿐이다.

슬픔이 몰려온다.


그 긴 시간을 견디어 내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에게 피해 끼치지 않으려 하는 아버지가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나의 감정에 민감하다. 표정이 어두우면 “무슨 일 있니?”라고 걱정하듯 물어온다. 대학졸업 후 취업한 딸을 위해 버스를 타고 끙끙거리며 양팔에 짐을 챙겨 가져온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다. 잊고 있던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딸이 직장 다녀오고 힘들까 봐, 식사를 마친 후 당신이 직접 빈 그릇을 개수대 위에 놓는다. 더 건강할 때는 설거지하기 쉽게, 밥풀이 묻은 그릇에 물을 부어놓았다.

느린 걸음이지만 정확히 집을 찾아왔다. 지금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핸드폰에 충전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다. 아버지가 아픈 후 달라진 모습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지혜가 쌓인다고 하고, 그러므로 인해 노년을 의미 있게 알차게 보낸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노년의 삶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활기차고 늘 공부하며 지혜롭게 나이 먹어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버지가 의미 없고 가여운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현실을 견디어 내고 살아가는 아버지가 옳으며 그 자체가 진실이며, 보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나에게 깨달음을 준 역행보살, 부처님이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반려견 똘이, 미소, 붕붕이와의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