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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하면 어때요^^

"난 이대로 괜찮아"

by 반야

그녀는 씩씩하다. 과체중임에도 위축되지 않는다. 산책 중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이 “안됐다”라는 측은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외모를 바라볼 때 저렇게 살찔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누구나 뚱뚱할 수밖에 없는 사연들을 갖고 있다. 그녀는 정신과 약을 복용한다.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한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정상체중을 갖고 있다. 30대 초반부터 50대 초반까지 과체중으로 살았다. 157센티의 키에 많게는 86kg까지 나갔다. 모처럼 치마를 입고 직장에 출근한 하루였다. 회진 중에 환자가 “코끼리 다리다”라며 여러 사람이 있는데 대놓고 크게 얘기한다. 어찌나 당황스럽고 화가 났는지 오래전 일임에도 잊히지 않는다. 어느 날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나에게 선배는 남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런데 만남도 갖기 전 나의 외모에 관해 듣고 만나고 싶지 않다며 일방적인 거절 통보를 해왔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를 거절한 것 후회할 거다”라며 자신에게 위로해 주며 땅바닥에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하려 했다.


뚱뚱한 외모로 인해 더 큰 좌절을 겪어야 했다. 50대 초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자의반 타의 반으로 20년을 근무한 직장을 나와야 했다. 나의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한 지인이 말을 건넨다. “당신이 살이 쪄서 그래, 살을 빼었야 했어”라며 조언을 해준다. 납득할 수 없는 슬픈 충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뚱뚱했다.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서 30kg가량 2년 사이 빠졌다. 전 직장과는 달리 몸을 많이 움직여서 그런가 별다른 노력 없이 살이 빠졌다.


오랜만에 찾은 단골 세탁소 주인이 말을 건넨다. 그녀는 “얼굴이 왜 그래요. 통통한 얼굴이 예뻤는데, 어디 아파요”라며 건강을 걱정한다. 살을 뺀 지금 사람들의 반응은 “얼굴에 주름이 많네요. 머리 좀 어떻게 해봐요” 등 여전히 충고한다. 살이 쪘을 때처럼,,,


젊은 날 살을 빼려고 무진장 애를 썼던 그때는 살이 빠지지 않았다. 살이 빠지지 않는 나를 한심하게 보았고, 인생의 패배자로까지 생각한 적도 많았다.


난 지금까지 그 직장을 다녔으면 여전히 과체중이었을 것이다.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다. 뭐가 그리 힘든지 퇴근 후 간식거리를 잔뜩 사들고 와 먹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살이 찌든 살이 찌지 않든 현재의 삶을 즐기는 것이 중요함을 느낀다. 남이 뭐라고 하든 나만 괜찮으면 된다. 내가 뚱뚱한데 남한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들은 나를 통해 위로를 받고 우월감을 가졌을 것이다. 물론 진심으로 건강을 걱정해 주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난 자유의지로 살을 빼지 않았다. 그때 처한 환경적 상황이 살을 빠지게 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한다.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나한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나의 몸에 대해서는 자유의지가 없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님을 나이가 들면서 더욱 느껴진다. 그러면 체중 줄이기 노력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 나의 나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 지금 살이 빠진 이유는 체중줄이기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먹었으면 “많이 먹었구나” 라며 자제력 없는 나를 책망하지 않는다. 오늘 내가 해야할 일을 할 뿐이다. 그런 나를 칭찬해 주고 지지해 준다. 50대 에 깨달은 살빼기 방법이다.


그녀는 “왠지 요새들어 더 살찐 것 같아요”라며 걱정을 한다. 그러면서 오늘 만든 스파게티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한번도 빠짐없이 매일 걷기운동을 한다.


난 믿는다. 그녀는 어느날 자연스럽게 살이 빠질 것이다. 젊은 나날을 뚱뚱하다는 이유로 우울하게 보낸 것에 대해 후회가 된다. 그녀는 나보다 더 깨달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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