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첫 순간 _ 셋째 날

너와 함께하는 9개월의 매일

by 완두콩

안녕 아가야.


오늘은 너를 만난 셋째 날이야. 어김없는 매일의 일상이 너란 존재를 만난 후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는 신기한 나날들이란다. 이 시간들 속에서 겪을 불편한 일들을 부디 엄마가 감사하고 신비로운 변화로 여길 수 있도록 힘을 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훗날 우리한 한 몸이었던 매일을 함께 읽어 나가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단다.


사실 엄마는 둔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야. 예민함을 숨기기 위해 더욱 둔해 보이려는 듯한 면도 있는 거 같아. 귀도 밝고, 옆에 있는 사람의 미묘한 감정과 표정의 변화를 인지하고 싶지 않아도 절로 느껴져서 사람들을 만나면 금방 피곤해지곤 해.


예전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기 위해 애썼던 때도 있었어. 저녁 약속을 연달아 잡고 빼곡한 일정이 가득이었단다. 그런데 연신 아파오는 뒷 목과 때때로 다가오는 허무함 마치 속이 비어있는 호두알 같았지.

엄마는 고민을 했단다. 내가 정말 풍요로움을 느끼고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해 좋은 의견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일까.


그리고 꽤 긴 시간의 고민 끝에 찾은 결론은, 엄마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였지.

그리고 엄마의 예민한 귀와 감각을 차분하게 만들어주고 이 감각들을 잠재워 줄 훌륭한 도구를 찾았단다.


바로 책이었어.

엄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간에 혼자 있어야 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마주할 때면 책을 읽는단다. 그러면 쿵쾅거리는 귀가 잔잔해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과 곤두서있는 솜털들의 긴장이 아주 조금은 수그러지곤 해. 이 방법을 찾은 지 사실 3년쯤 되었을까.


이러한 발견 이후 엄마는 가방마다 책을 한 권씩 넣고 다닌단다. 단! 어깨가 너무 아프지 않도록 적당한 두께의 책이 좋겠지. 재미있는 주간지도 아주 좋아. 엄마는 영상에는 잘 집중을 하지 못하는데 활자에는 푹 빠지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엄마의 예민함을 달래주는 아주 좋은 친구이지.


이러한 발견 이후 엄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그렇게 몰두하지 않게 되었고, 혼자 한 자리에 머무르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활자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는 날들을 만나고 있단다.

9개월 뒤 만날 우리 아가는 어떤 성향일지 무척 궁금한 오늘이야.


엄마는 네가 오랜 시간 동안 너의 진정한 성향을 스스로 찾아가고, 너의 에너지가 어떤 방향으로 뻗는 사람인지 찾아가는 사람이길 바라. 그래야 네가 너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는 한 두 가지의 예민함의 장점을 잘 키워가며, 보완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를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길 소망한단다.

엄마의 경우 30년이 지나서야 발견하게 되었지만. 앞으로 70년 동안 이 도구를 유용하게 이용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 이제야 발견한 게 아니라 '드디어' 발견하게 되었구나 하고 뿌듯하게 되었어. 너와 나란히 앉아 서로의 가방에서 한 권씩 책을 꺼내 발을 까닥까닥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단다.


엄마의 예민한 귀로 인해 우리 아가가 나중에 커서 방에서 몰래 이성 친구와 전화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쩌지. 그때는 엄마에게 말해주기 전까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모른 척해줄게.


너와 쌓아갈 수많은 추억과 일상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오늘이야.

엄마 아빠의 매일에 동화 같은 따뜻함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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