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105
채식주의자
by
계영배
Dec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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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u Xiaodong (Chinese, b. 1963)
Lili , 2011
Oil on canvas
100 x 90 cm. (39.4 x 35.4 in.)
채식주의자
"언니 다이어트 하죠?"
남편 친구 부부들과
여행을 갈 때면
난 언제나 관리하는
유별난 여자였다
연애시절
대도식당 먹부림을 기억하는
그들은
살찔까 봐 고기를 피한다며
오해하기 일쑤였고
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설명을 포기했었다
딱 30여 년 전 우리 엄마가 이랬을까
생활비는 물론
자기 집 전세금도 다 빼서
할머니랑 삼촌을 주던 남편과 살던 엄마는
맘과 몸이 비쩍 말라
고기든 술이든 전혀 못 먹는 사람이었고
난 항상 이 힘든 세상
고기 없이 사는 엄마가 신기했다
그러나
딸내미 팔자는
엄마를 닮는다고 했던가
돈 가져가는 시댁은 없지만
또 달리 쉽지 않았던 결혼 생활은
나 역시 고기를 못 먹는 삶으로 이끌었고
이제 근
이십여 년이
돼 가는 것 같다
얼마 전
한 작가님이
한강의 "채식 주의자"를 읽고
"깊은 늪에 빠진 기분"이라는
댓글을
달
아 주셨다
나는 내가 채식을 해서인지
그 기분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아빠는 날 만나면
건강을 위해서라며
어떻게든 고기를 먹여보려 성화고
남편은 정신병이라며
네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엄마를 보면 맞는 말 같다.
인생의 모든 풍파를 지난
여든이 되어가는 나이
이제
해
탈한 우리 엄마는
고기도 먹고 심지어
막걸리도 한잔
하
니 말이다
아이 어릴 적
공황이 처음 시작될 무렵
엔젤 녹즙기라고
암환자용 녹즙기에
풀떼기만 죙일 갈아먹으며
나는 약 없이 공황을 이겨냈었다
뭐, 누구는 환경을 생각한다는
거창한 이유가 있겠으나
난 그저
먹으면
호흡이 곤란해
졌
던
것뿐
지금은 가끔 너무 먹고 싶으면
고기를 먹고 회도 먹
긴
하지만
역시나
먹고 나서 무거운 몸과 마음은
한참을 날 괴롭혀
일주일정도는 고대로 헌납해야
원상태로 돌아오곤 한다
이런 내게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문장 하나하나가 내 살갗을 파고 들어
왔
었는데
어떤 문장은 정신병이라며
병원에 가보라던 남편의 모습으로
또 어떤 문장은
수군대던 남편의 지인들 모습으로 내게 와
날카롭게 박히곤 해
나는 지금도
그 책을 다시 읽지 못한다
어떤 유명 출간 작가님이
어느 플랫폼이 출간에 유리한지
묻는 질문에
플랫폼은 상관없고
그저 진정성 그 하나면 언젠간
빛을 본다고 답한 글을 보았다
한강 작가가 그 답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채식주의자인 그녀에게
채식과 관련한 아픔이
그녀로 하여금 "채식주의자"를 집필하게 했고
유경험자만이 쓸 수 있었던 언어가
소설을 살아 움직이게 했을 것
크리스마스를 왜 처가에서 보내야 하냐며
버럭 하는 남편을 두고
나는 코인이 떨어져
저러나 보다 하고는
아들과 둘이 강아지를 데리고
친정
을
갔다
여든을 앞둔 아버지는
저승꽃이 잔뜩 핀 손으로
채식주의자 딸내미에게
산 낙지를 잔뜩 먹여주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받아먹겠나...'
비건인 딸은
넙죽넙죽 받아먹고 지금 이틀째
앓
고
있는 중
이
다
어느 집 딸에겐
산 낙지를
사드리는 게
효도라지만
또 어느 집 칠푼이 딸은
그저 매번 자식을 위해 당신들이
정성 들여 준비하신 동물성 단백질을
앞에선 맛있게 먹고
집에 와선
몰래 아파드리는 것이
효도하는 것
언젠가 "채식주의자"를 읽고
자신이 여자임에도
비건이 아니기에
주인공 영혜보다
오히려 그녀의 특이 식성 때문에
불편했을 남편과 주변 사람들에 더 공감이 간다는
브런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렇게 세상은 너무도 다양하고
또 우린 같은 사안도
이리도 오만가지로 다르게 보는 것
롯데타워를 지나가는데
항상 반짝이던 빌딩이 그날따라 슬퍼 보였다
아마도
그즈음
롯데그룹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그 건물이 담보로 잡혔다는 뉴스를
봐서였
을까
난,
안면도 없는 회장님이 참 슬프겠다 했다
이렇게 세상엔 톨스토이가 말했듯
행복의 모습은 다 비슷하지만
우린 모두
각자 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한 법
누군가는
재벌 회장 걱정을 하고 있냐 하겠지만
저라고 저당 잡히면 안 슬플까
채식을 하게 된 경위는
조금 슬프지만
그로 인해
내가 이해가능한 사람
수는
족히 배는 늘었을 것
평생 고기는 생각도 못하던 엄마가
이젠 잘 먹고 소화도 잘하듯
나도 언젠간
젊은 날의 대도식당을 사랑하던 때처럼
웃으며 즐길 날도 오겠지
이렇게 세상 모든 불행의 모습은 다 다르나
여하튼 끝이 있는 건 다 같고
내 슬픔이 무조건 더 크다고만 하기엔
우린 서로를 좀 더 알아야
할
지
도
그나마 인식이 좀 나아져서 다행이지만
채식은 아직도 쉽지 않고
남편은 어쩌다 이런 마누라를 만났을까
저도 인생이 고약하다
김현식 - 내 사랑 내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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