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105

채식주의자

by 계영배

Liu Xiaodong (Chinese, b. 1963)
Lili , 2011
Oil on canvas

100 x 90 cm. (39.4 x 35.4 in.)


채식주의자







"언니 다이어트 하죠?"





남편 친구 부부들과

여행을 갈 때면





난 언제나 관리하는

유별난 여자였다





연애시절

대도식당 먹부림을 기억하는

그들은





살찔까 봐 고기를 피한다며

오해하기 일쑤였고





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설명을 포기했었다





딱 30여 년 전 우리 엄마가 이랬을까





생활비는 물론





자기 집 전세금도 다 빼서

할머니랑 삼촌을 주던 남편과 살던 엄마는





맘과 몸이 비쩍 말라

고기든 술이든 전혀 못 먹는 사람이었고





난 항상 이 힘든 세상

고기 없이 사는 엄마가 신기했다





그러나





딸내미 팔자는

엄마를 닮는다고 했던가





돈 가져가는 시댁은 없지만

또 달리 쉽지 않았던 결혼 생활은





나 역시 고기를 못 먹는 삶으로 이끌었고

이제 근 이십여 년이 돼 가는 것 같다





얼마 전

한 작가님이





한강의 "채식 주의자"를 읽고

"깊은 늪에 빠진 기분"이라는

댓글을 아 주셨다





나는 내가 채식을 해서인지

그 기분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아빠는 날 만나면





건강을 위해서라며

어떻게든 고기를 먹여보려 성화고





남편은 정신병이라며

네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엄마를 보면 맞는 말 같다.





인생의 모든 풍파를 지난

여든이 되어가는 나이





이제 탈한 우리 엄마는





고기도 먹고 심지어

막걸리도 한잔 니 말이다





아이 어릴 적

공황이 처음 시작될 무렵





엔젤 녹즙기라고

암환자용 녹즙기에

풀떼기만 죙일 갈아먹으며





나는 약 없이 공황을 이겨냈었다





뭐, 누구는 환경을 생각한다는

거창한 이유가 있겠으나





난 그저

먹으면

호흡이 곤란해것뿐





지금은 가끔 너무 먹고 싶으면

고기를 먹고 회도 먹 하지만





역시나

먹고 나서 무거운 몸과 마음은





한참을 날 괴롭혀





일주일정도는 고대로 헌납해야

원상태로 돌아오곤 한다





이런 내게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문장 하나하나가 내 살갗을 파고 들어었는데





어떤 문장은 정신병이라며

병원에 가보라던 남편의 모습으로





또 어떤 문장은

수군대던 남편의 지인들 모습으로 내게 와

날카롭게 박히곤 해





나는 지금도

그 책을 다시 읽지 못한다





어떤 유명 출간 작가님이

어느 플랫폼이 출간에 유리한지

묻는 질문에





플랫폼은 상관없고

그저 진정성 그 하나면 언젠간

빛을 본다고 답한 글을 보았다





한강 작가가 그 답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채식주의자인 그녀에게





채식과 관련한 아픔이

그녀로 하여금 "채식주의자"를 집필하게 했고





유경험자만이 쓸 수 있었던 언어가

소설을 살아 움직이게 했을 것





크리스마스를 왜 처가에서 보내야 하냐며

버럭 하는 남편을 두고





나는 코인이 떨어져

저러나 보다 하고는





아들과 둘이 강아지를 데리고

친정 갔다





여든을 앞둔 아버지는

저승꽃이 잔뜩 핀 손으로

채식주의자 딸내미에게

산 낙지를 잔뜩 먹여주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받아먹겠나...'





비건인 딸은

넙죽넙죽 받아먹고 지금 이틀째

있는 중





어느 집 딸에겐

산 낙지를 사드리는 게 효도라지만





또 어느 집 칠푼이 딸은





그저 매번 자식을 위해 당신들이

정성 들여 준비하신 동물성 단백질을





앞에선 맛있게 먹고

집에 와선 몰래 아파드리는 것이

효도하는 것





언젠가 "채식주의자"를 읽고

자신이 여자임에도 비건이 아니기에





주인공 영혜보다





오히려 그녀의 특이 식성 때문에

불편했을 남편과 주변 사람들에 더 공감이 간다는

브런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렇게 세상은 너무도 다양하고





또 우린 같은 사안도

이리도 오만가지로 다르게 보는 것





롯데타워를 지나가는데

항상 반짝이던 빌딩이 그날따라 슬퍼 보였다





아마도 그즈음





롯데그룹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그 건물이 담보로 잡혔다는 뉴스를 봐서였을까





난,





안면도 없는 회장님이 참 슬프겠다 했다





이렇게 세상엔 톨스토이가 말했듯





행복의 모습은 다 비슷하지만





우린 모두

각자 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한 법





누군가는

재벌 회장 걱정을 하고 있냐 하겠지만

저라고 저당 잡히면 안 슬플까





채식을 하게 된 경위는

조금 슬프지만





그로 인해





내가 이해가능한 사람 수는

족히 배는 늘었을 것





평생 고기는 생각도 못하던 엄마가

이젠 잘 먹고 소화도 잘하듯





나도 언젠간

젊은 날의 대도식당을 사랑하던 때처럼

웃으며 즐길 날도 오겠지





이렇게 세상 모든 불행의 모습은 다 다르나

여하튼 끝이 있는 건 다 같고





내 슬픔이 무조건 더 크다고만 하기엔

우린 서로를 좀 더 알아야





그나마 인식이 좀 나아져서 다행이지만

채식은 아직도 쉽지 않고





남편은 어쩌다 이런 마누라를 만났을까

저도 인생이 고약하다




김현식 - 내 사랑 내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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