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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배 Oct 14. 2023

벤츠 타고 파출부 나가는 여자 2

수현












"딩동 딩동"




누구세요~~?"




"네! 고객님! 00 클리너입니다!!"





수현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최대한 예의와 상냥함을 풀충전해 대답한다.








띠리 리릿~!'




경쾌한 소리와 합께 현관문이 열리며 집주인이 얼굴을 드러낸다.







"아멘!"




오늘의 고객도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판 '남'임을 확인 수현은 "아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얼마 전부터 열렬히 믿기 시작한 신은 그녀가 비는 유일한 원을 매번 잊지 않고 들어 주곤 했었는데, 오늘도 혹시나 더니 역시, "제발 아는 사람의 집만 아니기를..' 빌었던 그녀의 소원을 자비롭기 그지없는 신은 역시나 잊지 않고 들어주셨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신의 '그 세심하기 그지없는 살피심'에 번 감탄하곤 했는데, 초인종을 누른 후, 방문하는 집의 집주인 얼굴을 확인하기까지의 그 몇 초, 길어야 일 분 남짓한 시간은 그녀 생에 가장 긴 시간 중 하나였고, 매번 그 시간이 올 때면 그녀는 수명이 십 년씩 줄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그 잠깐이 지나, "덜컥!" 현관문이 열리며, 생전 처음 본 얼굴의 장과 함께 오늘도 변함없는 신의 도우심이 확인되는 순간엔,



'혹여, 아는 누군가의 집일지도 모른다.'



는 두려움에 가졌던 극한의 긴장 모드에서 그녀는 급 이완 모드로 식간에 자동 전환이 되곤 했는데, 곧 온몸은 신에 대한 넘치는 감사로 가득했고, 수현은 저도 모르게 오늘의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만반의 준비가 저절로 풀세팅 되곤 했다.











사실 수현은 저혈압에 채식지향자(고기를 가끔 먹으니 '지향'라고 해두자)라 고기를 안 먹어 그런 건지 어쩐 건지 좌우지간 누구랑 세상 좋은 뭘 해도 오후 4시경만 되면 피곤해 집에 가고 싶어지는 허약하기 그지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미슐랭 3 스타니 뭐니 날고 긴다며 깨에 힘주고 서빙하는 집에 가도 다 거기가 거기 같아 그다지 별 큰 감흥이 없어지기 시작하기도 했는데, 연예인은 20대 이후로 좋아해 본 적이 없는 데다 "태양의 후예"니 "도깨비"니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드라마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시사프로와 인문교양예능을 즐겨보는 등, 세상 재수 없게도 혼자 잘난 맛에 사는, 매사 심드렁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무슨 약이라도 먹은 건지 신기하게도, 청소일을 나가 선 매번 속옷이 땀에 다 젖도록 열정을 불사르곤 했는데,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



평소, 경기도에 살지만 자신의 벤츠를 끌고 '압구정 갤러리아'와 '대백화점' 등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경기도 백화점 셀렉션들의 부족함을 채우던 그녀는, 유리컵을 사기로 마음먹은 어느 날, 금쪽같은 아들을 이미 대충 입혀 서둘러 등교시킨 상태였다.







40대 아줌마지만 '배둘레햄'을 경멸했던 그녀는 평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윗몸 일으키기를 100개씩 하는 독종이었는데, 그 덕에 그날도 허리가 심하게 강조되어 조금은 과한 디자인인 알렉산더 왕 alexanderwang 흰 셔츠안에 그녀의 몸을 어렵지 않게 끼워넣을 수 있었다.







상의에 힘을 주었으니 하의는 시크하지만 활동이 편한 월포드 Wolford 검정 스커트를 택했는데,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와 월포드를 낳은걸까, 퀄리티가 갓인 스커트는 좌우지간 죽죽 잘 늘어나서, 수현처럼 여기저기 정신없이 돌아댕기는 열정 아줌마에게 제격이었다.







그러나 패션의 완성은 역시 구두







스커트는 편안함을 추구했어도 키 160 의 단신인 수현은 힐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는데, 뭐 듣자하니, 어느집 열정이 넘치는 욕망 아줌마들은 공치러 가서 만난 남성분과 연애도 하고 뭣도 하고 한다지만, 안타깝게도 수현은 그 정도의 간은 없었고, 그녀의 열정 만큼이나 시뻘건 바닥과, 부러질듯 아찔한 힐을 자랑하는 루부탱 Christian Louboutin은 그녀의 욕망을 채워주기 충분했었다.







 이렇게 풀착장을 끝낸 그녀는 마치 완전무장한 아마존의 여전사모냥 비장한 표정으로, 서둘러 서울로 차를 몰았는데 언제나 노메이크업인 그녀는 자주 악세사리를 사양했고 이는 그녀 패션의 포인트다.










부지런히 밟아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청담동 '정소영의 식기장'이었다.








백만년전에 압구정 미성아파트 앞, 우리 나라 최초로 박여숙 화랑에서 만든 '우리 그릇 려'라는 테이블 웨어 도자기 작품 전문 갤러리에 있던 정소영 사장이 독립해서 차린 그곳은 젊은 사람 답게 '우리 그릇 려' 보다 좀 더 젊은 감각의 작가와 작품들로 이루어진 컬렉션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청담동 큰길가임에도 잘보이지 않는 곳, 일층과 지하에 자리잡은 그 곳은 도자제품 말고도 글라스와 커트러리 등 테이블 웨어 전반을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이렇다 할 홍보없이도 오랜기간 은은하게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고, 찾기가 쉽지 않은데,  그게 매력이었다.







그러나 왠일인지 그녀는 그날 정소영의 식기장에서는 마음에 확 꽂히는 것을 찾기 힘들었는데, 식기장에서 나온 그녀는 7분 거리의 '10 꼬르소 꼬모 Corso Como'로 향했고 거기서도 맘에 드는 작품을 못 만나자 잠원동의 '챕터원 에디트 chapter1 edit ' 차를 몰았다.







일본인 건축가가 지었다며 수현 취향의 매장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한남동의 '모노하 MONOHA 한남'에도 들렀지만 역시 미션 페일.








자고로 가정주부의 쇼핑놀이는 아이가 하교하기 전에 끝나는 것이 국룰인데 집이 시골이라 가는데만 백만년 걸리는 그녀는 애가 탄다.







그녀 취향의 매장 분위기만 줄창 만끽하다 생뚱맞게 한남동의 '모노하 MONOHA 한남'에서도 아로마 오일만 사서 그곳을 떠난 그녀의 선택지는 이제 리움 말고는 없었는데, 마침내, '리움 미술관' 아트샵에 가서 그녀는 그녀의 아가들을 만나 대장정의 막을 내릴 수 있었고 전업주부엄마로서의 직무유기를 가까스로 면했다.











그녀는 밀려드는 감격에 한참을 지켜보았다








이찬우 작가의 울퉁불퉁한 형태지만 말갛고 우아하기 그지없는 유리 작품들은 그녀를 실로 숨죽이게 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혼자 조용히 탄식하듯 한마디를 내뱉은 그녀는 얼마간 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신랑 고르기보다 더욱 신중히 몇몇을 고른 그녀는 벤츠에 그들을 고이 태워 집으로 향했다.








자신의 벤츠를 끌고 그녀는 본인의 눈높이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곤 했었는데, 이는 일종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덕질 같은 것으로, 마치 뭍 여인들이 임영웅 가수를 덕질하며 고단한 삶의 스트레스도 풀고 또 기쁨도 얻 듯, 수현에겐 그러한 여정들이 일종의 유명인 덕질 같은 역할을 하곤 다.








또한 이렇게 극성인 그녀는 뭐 예상했겠지만, 당연히, 청결에 대한 기준 역시 과하게 높아, 심지어 가사 도우미도 좀 쓰다가 관둔 지 오래였는데, 그녀들이 바깥에서 뭘 만지다 온 손으로 집안의 온갖 것을 만지며 청소해, 자신의 물건들을 온통 오염시킬지 모른다는 심히 또라이같은 걱정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난스럽기 그지없던 그녀가 지금은 그렇게 본인이 과거 바깥 세균의 주요 유입처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나중엔 관두게까지 했던, 사장님이 외쿡사람이라 그리 지었는지, 사실 말이 좋아 '클리너'지 일명 '요리 안 하는 파출부'일을 속옷까지 땀에 젖어가며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클리너 일을 나가선 그녀는 진심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곤 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던 사업이 보기 좋게 망해버린 후, 깊은 방황 끝에 찾은 이 클리너 일이 신기하게도 '정수현'이라는 사람의 정신개조를 너무도 확실하게, 아주 제대로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왜 안되는데?"




얼마 전부터 열렬히 믿기 시작한 신은 그녀에게 물었다.







뭐 사실 딱히 그녀가 그 일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녀에게 그 일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이 하는 최후의 선택으로,




'나는 대학원까지 다닌 나름 고학력자이고, 다방면에 최고의 테이스트를 가졌으며, 벤츠를 모는 등 경제적 여유마저 있는 사람이니 그런 일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할, 하등의 이유가 절대 다.'




는 선입견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이전과 다른 사람이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야심 차게 시작했던 첫 사업에서 보기 좋게 망한 '장사 신생아' 출신 '폐업인'이었, '그녀의 획은 언제나 구멍 투성이' 임을 예견한 가족들의 예상이 또, 정확히, 적중했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제대로 증명한 '진짜 따' 그 자체였으며 또 그러한 자신에게 진심으로 실망해 생때같은 자식을 두고도 죽음을 생각했던 '비정한 엄마'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그 절망의 바닥에서 헤매이던 그녀가 좌충우돌 끝에 발견한 일이 이 클리너 일이었고 따라서 수현에게 이 일은 더욱 각별했는데, 신기하게도,  일을 하면 할수록 수현은



'어쩌면 신은 내가 어서 나락으로 떨어져 앞에 그 언제보다도 가까이 가게 되는 시간이 오길 진심 턱 괴고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시간이 갈수록 추측은 확신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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