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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배 Oct 15. 2023

벤츠 타고 파출부 나가는 여자 3

네가 변호사가 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네가 변호사가 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아기를 낳은 후 줄곤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 결혼 6년 만에 얻은 외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어느 해, 수현은 로스쿨에 가겠다며 공부를 시작했고 그 말을 들은 친정아버지는 진심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사실 친정아버지뿐 아니라 가족들은 죄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하는 눈치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평소 그녀는 세상의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에만 관심이 많았지 공부와는 실로 담을 높게 쌓은 종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집을 잘 간다는 여대'를 학점 1.83이라는 경이로운 학점으로 졸업한 그녀는, 대학입학 후. 자신이 고생한 것이 싫어 딸에겐 넉넉한 용돈을 제공하신 아빠 덕에, 신나게 놀러나 댕기면서 말 그대로'공부와는 전혀 안 친한 종류의 날라리 여자 사람'으로 줄곧 살았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6살이 될 무렵, 그녀는 밀라노에서 유학하고 있는 남동생 방문차, 아이와 유럽 순방을 다녀오게 되는데, 이후, 그녀는 급런던 패션 유학을 결심했고, 양쪽 집안 식구들에게 그 계획을 보기 좋게 까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않은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채의식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데모의 추억'이었다.







대학 시절, 같은 신촌에 있는 '연세대학교' 앞에선, 사회 부조리에 대해 미약하지만 끊임없는 목소리를 내는 크고 작은 데모가 자주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나도 저들을 도와,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 사회 부조리 척결에 도움이 돼 보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다.








대신 당시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최신 유행으로, 프랑스 군텐트용 나일론으로 납품되던 PVC 소재로 만들었다며 더욱 유명해진 '프라다 Prada 백팩'을 등에 메고, 학교 앞 단골 옷가게에서 산 '짝퉁 아르마니 Armani 정장'을 입고는, "최루탄 냄새가 너무 독해 죽겠다."며 '샤넬 CHANEL 18번'을 새빨갈게 바른 입과 코를 단단히 틀어막은 채 발걸음을 옮기기에만 바빴었는데,








요란한 '페라가모 Salvatore Ferragamo' 구두굽 소리와 함께 그 독한 최루탄 냄새를 다 덮어버릴 정도로 과하게 뿌린' 엘리자베스 아덴 Eizabeth Arden'의 '피프스 애비뉴 5th Avenue' 향수 냄새를 일대에 아주 찐하게 풍기면서 데모 현장을 매번 도망치듯 지나가곤 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기특하게도, 머리는 미용실 갈 때 이외에는 별로 사용한 적이 없던 20대를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고 작은 힘든 일들을 겪으며 삶에 대해 진지한 고찰의 시간을 가질 때마다 , 평소, 크게 별 생각은 없지만 다행히도 양심은 항상 살아 있었던 수현은, 그 일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일종의 '짐'처럼 남아 있었고 이 생각은 가끔 뜬금없이 떠올라 그녀를 종종 불편하게 하곤 했다.











결국 그 불편감은 일종의 죄책감이 되어 수현을 차츰 극좌로 몰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 '바보 노무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던 그녀는, 강남 아닌 분당에 살지만 명품도 좋아하고 인권에도 관심 쩌는 이른바 '강남좌파'가 되었고, 평생을 강남에서 산 '강남우파' 남편과는 정치 얘기만 나오면 철천지 원수처럼 악을 쓰면서 싸우곤 했다.








그러다 2016년 그 유명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청문회를 보던 그녀는 그 오랜 마음의 짐을 한꺼번에 없애줄 기가 힌, 그러나 식구들은 또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힐, 계획을 하나 세우는데, 바로 '로스쿨'을 가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청문회에서 소위 배웠다는 청문위원들의 질문에서 다량의 구멍들을 발견한 수현은



'저런 질문 밖에 못하는 사람들도 전직 '판검사, 변호사'라는데 내가 한 번 해서 사법정의구현에 미약한 힘이 나마 보태보자.'



는 실로 나이브하고 또 거창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간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엔 전혀 관심이 없이, 그저 권리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자신의 여러 가지 심적 부채들을, '이번 도전으로 한방에 만회해 보겠다.'는 야심 찬 각오를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식구들은 역시나 그녀의 계획을 실로, 또 참으로 어처구니없어했는데, 따라서 그녀의 '필터 없는 입'을 가지신 정아버지께서는



"네가 변호사가 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다."



는 실로 매정하기 그지없는 발언을 발사하시면서 철없는 강남좌파 딸내미에게 제발 좀 '현실감각'을 탑재하기를 주무하셨고 그 말은 그녀의 가슴에 콱 박혔고, 그녀의 두 눈에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수현의 아버지는 전직 박수博數 출신이셨던 걸까







매시간, 그녀가 가진 가장 무난한 디자인인 검은색의 '세르지오 로시 Sergio Rossi' 펌프스를 신고, 수업 때마다 혹여 졸고 있을지 모를 친구들을 구두굽 소리로 온통 다 깨우며 '양재동 메가 로스쿨' 강의실을, 좌우지간, 꼭 수업시작한 지 오 분 후에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들어가곤 했던 수현의 다리는 어느 날, 더 이상 그놈의 "또각또각'소리를 못 내게 되어버렸다.







강의실 누군가가 사주를 했는지 어쨌는지, 어느 날 샤워를 하다 미끄러져 그만 똑 부러지게 된 것이다.







그다지 가늘지도 않은 다리가 연필 부러지듯 똑 부러진 후, 용인 수지에서 양재동 학원까지 직접운전을 하며 수업을 다니던 수현은 다리를 깁스한 덕에 어쩔 수 없이 운전을 못하게 되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로스쿨 도전을 정리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뭐 알다시피, 정 가려고 했었으면 다리가 아닌 세상 어떤 것이 부러져도 갔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 수업마다 남녀를 막론하고 다 똑같은 시커먼 점퍼를 둘러쓴 200여 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그녀는 매번 숨이 막히곤 했었는데, 학원 분위기에 맞게 가장 수수하고 조용하며 무난한 '질샌더 Jil Sander' 류의 옷을 찾으려고 그녀는 학원을 갈 때마다 혼자 웃방에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곤 했었고, 매번 끝나고 집에 갈 때마다,



'뱉어 놓은 말이 있으니 하긴 해야겠는데. 계속 이러다간
병 생기겠다.'



싶으며 매번 앞이 깜깜하던 차에, 수현에게 마침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다리가 부러진 것은, 이 계획을 관두기에 실로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고 그녀를 힘껏 도와준 셈이 되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물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편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
고 집안을 예쁘게 가꾸고 그렇게 살면 안 되니?







뭐 그렇게 살려면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에겐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었고, 그건 쉽지 않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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