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아이를 낳고 분당의 정자동에서 영어유치원 엄마들의 '있는 집 애기엄마 놀이 '에 수년째 참가하고 있는 동안, 친정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미국서 만난 남자 친구와 이별 후, 오랜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그녀의 동생은 그 증세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을 대치동에서 살다가 교육열이고 나발이고 모든 것이 징글징글해서 분당으로 이사 온 집 아들인 남편과 살면서, '있는 집 애기 엄마놀이' 멤버들의 극성과 또 그 극성을 극혐 하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말 못 할 고민이 많았던 그녀는 사실 안타깝게도 그런 그녀의 동생을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했었다.
게다가, 시댁과 한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로 자주 긴장 상태였던 그녀는, 아토피가 있던 아들 음식 문제로, 그 어떤 방부제나 첨가물이 빵빵한 음식을 먹어도 하얗고 탱탱한 피부를 가진 남편으로부터,
"좌우지간 돈이 남아돌아 유기농만 찾으니 생활비를 깎아 야겠다."
"한살림'을 어떻게 믿냐, 너 대체 그 사장이랑 무슨 관계 냐?"
며 수시로 질타를 당하곤 했는데, 연애시절 그리도 천사 같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던 남편은 더 이상 빼 줄 장기가 없었는지 감정기복이 심해져 종종 시한폭탄 같았고 이런 여러 이유 탓에 그녀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러나 동생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본인마저 정신과에 다니게 되면,
"어떻게 키웠길래 딸내미 둘이 다 정신과에 다니냐?"
며 힘들게 자식을 키운 부모님의 얼굴에 분뇨칠을 할 것이 두려워 그녀는 그저 정신력으로 버텼고, 결국 온몸은 피부질환으로 덮였고, 쉽지 않았다.
그에 더해, 그녀의 친정아버지는. 종종
"여자는 한번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되는 거다."
라며 시집간 딸내미의 푸념이 싹을 내기도 전에 그냥 초장에 잘라 버리시곤 했는데,그덕에 자강自強노선을 타며, 녹즙과 생채식을 통해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그녀가, 겨우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 무렵, 동생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어느 여름이 끝나가던 날,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홍주일보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평소,
'큰 물에서 놀아야 그릇이 커진다.'
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수현은 집안의 장녀로서 가족들에게 매사 "보다 진취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명문대 공대출신 남동생은 갑자기 난데없는 디자인 유학 플랜을 밝혔었는데,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지원을 약속했던 그녀는
"공대생이 디자인은 무슨 디자인이냐!"
며 기함을 하고 반대하던 아버지를 백방으로 설득했고 결국 동생을 유학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취적인 방향은 제시했으나 돈은 제시하지 못한 그녀가 강하게 밀어붙여 추진한 남동생 유학의 결실은 생각보다 늦어졌고, 돈을 대는 사람이자 고단하기 그지없었던 자수성가 여정으로 세상 모든 성취에 대한 평가 기준이 야박했던 그녀의 친정아버지는 수현을 채근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아버지에게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극성 분자'로 수현을 수시로 몰던 남편은힘을 보탰고, 그 둘은 만날 때마다 합세하여 수현을 공격하곤 했다.
"네가 이 모든 사단을 만든 주범."
이라며 둘이 수현을 연합하여 공격하는 탓에 수현은 남편과 친정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일단 양쪽 어깨에 벽돌을 두 개 얻고 출발하는 기분이었다.
따라서 '시집 잘 가는 대학 나와 시집 잘 가서 아주 잘 산다'는 아빠의 자랑이던 큰딸의 '친정 방문 귀갓길'은 자주 쉽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살얼음판' 이거나 아니면 고성이 오고 가는 '개판'이 되곤 했었다.
이렇게 돈은 한 푼 못 벌면서 생각만 진취적이던 수현은 이 모든 어택을, 혹여라도 어디 떨어진 어택 부스러기가 부패해 나중에 더 큰 화로 돌아올까 봐, 마치 '찾아가는 음식 쓰레기분쇄 기계'처럼 매번 다 살뜰히 수거해 혼자 삭히곤 했다.
그덕에, 그 찌꺼기는 아주 정직하게도 조금도 유실되지 않고 수현의 몸속에 고스란히 남았는데, 이는 그녀의 각종 피부질환과 호흡곤란 증상 유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곤 했다.
그러나 주변의 지인들은 이런 상황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공황증상으로 가끔 호흡이 안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아이 친구 엄마들이 "어서 병원에 가보라."라고 하는 것 이외에는 수현은 옷으로 가려진 몸통 부분이 엉망진창일 뿐 얼굴도 멀쩡했고 심지어는 맨날 녹즙을 갈아 마시고 가공식품은 입도 못 데어서인지 피부가 좋다는 소리를 왕왕 듣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모든 증상의 자체 해결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녹즙을 갈아 마시는 등 백방의 노력을 아끼지 않던 그녀에게 찾아온 여동생의 죽음은 마치 다리를 절으며 겨우 걷고 있던 사람 발 앞에 급 나타난 돌부리 같았는데, 한걸음 한걸음 겨우 걷고 있던 그녀는 돌부리를만나자 급 심하게 휘청거렸고 결국엔 견디지 못하고 왕창무너져버리고말았다.
밤새씽크대 앞에서 술을 마셨고, 울었고, 부억 바닥에서 자곤 했다.
자다가 깨면 어린 아들이 의자에 올라가 엄마가 먹던 술잔과 그릇을 설겆이 하고 있었다.
고맙긴 하나, 이건 뭐 설겆이를 하는건지 거품 잔치를 하는건지 도통 알 수 없었고, 말려도 듣질 않았는데, 수현은 아들의 이런 모습이 꼭 수현 자신을 보는 듯 했다.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긴 하는데, 뒤에서 보는 사람 눈엔 한없이 모자라고.... 그냥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 것 같은데, 무슨 불나방도 아니고 계속 가문의 영달을 위해서 뭔가를 계속 해보겠다고 끊임없이 달려드는...
나름 열심히 산다고는 살았으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결국 그녀는 육아에 돈을 처바르며 유난은 떨지만 딱히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못 내놓는 부인이자 며느리였다.
게다가 일하는 바쁜 언니도 아니면서 아픈 여동생을 지키지 못해 장녀로서의 책임도 다하지 못한 첫째였으며, 성공이 보장 안 되는 남동생 유학을 주도했으나 채근하는 물주에게 확답을 줄 수 없는 아마추어 주선자였던 데다가, 한평생을 죽도록 고생만 하며 살다가 이제 좀 살만 하니까 자식을 앞세워 가슴이 다 찢어져 버린 부모를 등에 업은... 따라서 심적으론 '이미 쭈굴해질대로 쭈굴쭈굴해진 중년 여자' 였던 것이다.
사실, 공황장애 등 이유야 어찌 되었던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동생을 도우려면 또 얼마든지 도울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특히 평소 축적된 우울감에 날선 발언을 자주 투척하던 동생을 넉넉히 안을만큼 그릇이 크지 못했던 장녀 수현은 언니로서의 의무감과 동생을 만날때마다 불시로 치미는 부아의 감정 사이에서 자주 고군분투하곤 했는데 이는 안타깝게도 친자매임에도 불구, 둘 사이 원활한 교류에 큰 걸림돌이 되곤 했었다.
따라서 이를 만회하기라도 하려던 것이었을까
날이면 날마다 수현은 아이 친구 엄마들과 친자매이상으로 하루종일 붙어다니며 소위 '있는 집 애기 엄마 놀이'에 깊이 빠졌었는데, 동생의 죽음으로 일순간에 마치 일장춘몽 같았던 "분당에서 제일 비싼 영어 유치원 엄마 놀이'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그녀는 문득 한창 그녀가 압구정 청담동을 쏘다니며 놀던 90년대 말, 자주 가던 청담동 로바다야끼 아랑2 가 생각났다.
주말이면 언제나 만석을 자랑하던 아랑2 는 어느날 갑작스레 문을 닫으며 온갖 소문이 무성했는데 주인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돌았었으나 수현은 믿지 않았었다.
'그 소문이 맞았었나부다.'
사람의 죽음은 주변인의 배경을 순식간에 바꾼다.
수현은 결국 수만가지 변명이 무용함을 직시했고 결국 장녀로서 본인의 직무유기에 큰 죄책감을 가지며,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해 뭐라도 했어야 했다.
이제 정말로 한 집안의 장녀로서 뭐라도 묵직한 무언가가 되어서, 자기 가족에게 생긴 커다란 구멍을 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급한 마음에 로스쿨이니 어디니 마치 눈을 가린 채 흥분제를 자가 주입한 망아지 모냥 여기저기 마구 들이대며 시도해 보는 등 세상 부산을 떨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성인 ADHD라도 된 듯 안절부절을 못하는 수현에게 신은 비책이 필요하다 싶으셨을까
신은 그녀에게 돌연 다리 골절을 선물해 주셨고 신께서 급 부러뜨린 다리는 그녀에게 진정제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다.
덕분에 고요한 침잠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녀는 자그마한, 아주 자그마한 인격적 성숙의 성과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얼마 전 수현의 아버지가
"네가 변호사가 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다."
며 수현 가슴에 깊이 박은 못을 스스로 힘들지 않게 빼낼 수 있게 도와주는요긴한 도구로 쓰였다.
자신의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딸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 수현의 아버지는 그저 "다리가 돌아가 있었다.'며 마지막 둘째 딸의 모습을 덤덤히 묘사했었는데,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동생의 염한 마지막 모습을 무서워 못 보겠다고 먼발치에 서있었던 철없고 과년한 큰딸의, 또 다른 철없는 계획을 심히 걱정하는 그 애잔한 마음조차
"네가 변호사가 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라며 절대 곱게 표현 못하게 철저히 막아서는, 그의 모진 인생이 수현은 새삼 안쓰러웠다.
13살에 혼자 서울에 올라와 용산역에서 양말을 팔면서 시작해, 동생들 공부에 시집장가까지 다 보냈으나 결국 그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는 둘째 아들이었던 그의 한 많은 인생이 결국, 둘째 딸의 죽음으로 얼룩지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 같아 큰딸이던 수현은 너무도 가슴이 먹먹했던것이다.
게다가 저 살기 바쁘다며 돌보지 못해 펴보지도 못한 인생을 살다 간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 또한 커 밤마다 가위에 놀리던 그녀는 동생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조급증이 날 지경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매일밤마다 큰소리로 누군가와 싸우는 잠꼬대를 헤댄다는 아버지의 마음속 구멍 또한 채워드려야 하는 등 가족에 대한 부채의식을 등에 가득 젊어지게 된 그녀는 이제 일반 가정주부로만 살 수는없었다.
따라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뭐라도 되기 위해,할 수 있는 그 무엇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우선지인과의 약속을 취소 했고. 이렇다 할 말도없이 잠수를 탔고, 이런 그녀를 사람들은 이상하다 했는데, 그녀는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했고,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