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중심가 부촌 시로카네다이의 라이프 스타일 편집샵 BIOTOP[비오토프], "어반 리조트"를 테마로 일본 국내외 럭셔리 패션 브랜드,유기농 화장품, 식물, 잡화 등 다양한제품이 갖추어져 있으며 레스토랑도 운영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청담동의 편집샵 직원 치고는 상당히 수수한 인상의 점원 하나가 수현에게 말을 길며 다가왔다.
평소 이 편집샵의 단골이던 수현은 원래 수현을 응대하던 직원이 있었는데 그녀가 오늘 휴무라며 새로 온 직원인 은수가 그녀를 응대하러 나온 것이다.
보통 명품매장이나 명품 편집 매장의 직원들은 근무 환경상 대개 조금은 도도하거나 아니면 상당히 개성 강한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인데 은수는 무척이나 친근한 외모를 가진 직원이었다.
게다가, 매번
"어쩜,정말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다방면에안목이 남다르신 게 한국의 '카를라 소짜니 Carla Sozzani(보그 잡지 편집장 출신으로 1990년 이탈 리아에서 시작된 편집숍이자 현재 라이프스타일숍의 효시 와도 같은 브랜드인'10 꼬르소 꼬모'를 만듦)'로 불러드려야겠어요."
는 등, 수현의 안목을 끝없이 칭찬하는 그녀의 조용하지만 낮고 신뢰감 넘치는 목소리는,립서비스인 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수현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었는데,따라서 알게된 지 얼마 안 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엔 급속도로 강한 친밀감이 형성되었다.
사실, 그 빠른 친밀감 형성엔 은수의 특별한 상황이 한몫했었다.
CoverChord로 상호가 바뀐 도쿄 나카메구로의 유명 편집샵 '벤더VENDOR)', 중저가이지만 디자인 좋은 유명 캐주얼 브랜드 의류,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을 판매한다
경력도 좀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학벌도 좋고 영어도 좀 하는 등 능력은 좋았지만 유달리 수수하고 평범한 외모 탓인지 은수는기존의 매장 직원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곤 했다.
그러나 매장의 오랜 단골이던 수현과의 끈끈한 관계 형성은 매장 내 그녀의 존재감 증진에 적잖이 기여를 했는데, 수현은 남달리 입안에 혀처럼 굴면서 최고의 쇼핑 경험을 선사하는 은수가, 은수 또한 매장 직원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오랜 단골인 수현이 특별히그녀에게 공개적으로 보이는 각별함이 유달리좋았던 탓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은수를 만난 이후로 수현은 자연스럽게 그 매장에 더욱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우연히 퇴근 시간 즈음에 방문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빗속을 뚫고 지하철역으로 급히뛰어가는 은수를 태워주고는,예기치않게가지게 된 식사자리에서,은수는 매장 직원이 아닌 마치 여동생을 대하듯 따뜻하게 대해주는 수현에게 선뜻 속마음을 내비치게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수현도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CoverChord로 상호가 바뀐 도쿄 나카메구로의 유명 편집샵 '벤더
(VENDOR)'의 무표정한 점원, 어느 나라든 신기하게도 편집샵 직원들
은 자주 화가 나 있곤 한다.
은수는 자기가 파는 물건이 아닌 자기가 명품인 양 세상 콧대가 좌우지간 하늘을 찌르며 새로 온 그녀에게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동료들이 가득한 이 정글 같은 매장에서 떠나독립을 하고 싶었다.
집안 사정 상 돈이 좀 필요했던 은수는 급여가 좀 더 세다는 말에 혹해, 큰 회사를 떠나 이곳으로 왔었는데, 이건 뭐 계집애들 등쌀에, 좀 더 받은 급여를 받은 것 그대로 다 정신과에 가져다 줄 판이었던 것이다.
한편, 수현 또한 그에 못지않게 독립이 절실한 처지였는데, "돈 한 푼 못 벌면서 눈만 높다."며 수년째구박 중인 남편과, 또, 그녀가 유학을 간다거나 로스쿨 같은 곳에가겠다고할 때마다,
"그 나이에 이제 와서, 네가 뭘 할 수 있겠냐?"
"제발, 뭘 하려고 하지 말고 집안 살림이나 잘하고 애나 잘 키워라."
라며수현을 매번, 평가절하하시는,양가 어른들에게 그녀 역시 보란 듯이 경제적 독립을 선언하고 싶었던차였고, 그런 그 둘의 니즈가 그날 저녁,기가 막히게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비가 주룩주룩 오던 어느 저녁, 생각지도 않게 청담동 골목 어귀의 어느 자그마한 일식 도시락 집에 마주 않아 서로에게 마음을 조심스럽게 나눈 둘은,따뜻하게 데워져 나온 사케 한 잔을 나눠 마시고는, 조금은 알딸딸해진 상태였는데, 발그레한 얼굴을 한 채다소 충동적으로 의기투합을 한 둘은, 결국,비장하게독립을결심하게 되었다.
올해 4월에 오픈한 도쿄 긴자의 가성비 갑 스시 오마카세 '스시 이츠츠Sushii Itsutsu'
수현은 은수가 지금 받는 월급에서 딱 50 만원만 더 줄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아무 경력도 안 되는 구멍가게만 한 편집샵에서 주인인 수현은 아무것도 알지도, 또 할 수도 없으니 혼자 모든 것을 다 해야 할 판이었는데 은수는 자신을 밑도 끝도 없이 믿어주는 수현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고 둘은 그렇게 사업 파트너가 되었다.
말이 사업 파트너지 수현은 돈만 댈 뿐 '물건의 매입, 운송, 진열, 판매, 배송'에 매장 청소까지 모두 다 은수의 몫이었는데, 그 대신 수현은 은수에게 '실장' 직함이 찍힌 멋들어진 명함을, 요즘가장 잘 나간다는 명함집에서 정성스레파서는,작지만 값 좀 나가는 선물과 함께 그녀의 집으로 보내 주었다.
바지 사장 은수는 일을 참 잘했다.
도쿄 나카메구로의 유명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ROOTS TO BRANCHES', AURALEE(오라리)등 일본국내외 패션 브랜드와 식기, 도예품 식물 등을 구비
동네에 생긴 못 보던 예쁜 가게라 그저호기심에 들른 사람도, 꼭 양말하나라도사서 나서게 만드는 등 장사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명품을 하나 사보고 싶어 들른 사람도, 또 이미 많으니 색다른 리미티드 에디션을 사러 온 사람도 각자의 눈높이에 맞게 그냥 물 찬 제비처럼 스무드하게 응대하는 그녀의 판매스킬은 여기, 새로운 직장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는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멍석을 깔아주면 은수는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이었고, 수현은 그런 은수에게 두둑한 보너스로 답하곤 했다.
그런데 좌우지간 돈이 말썽이었다.
매출이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자, 바지사장 이은수는 눈화장이 짙어졌고, 또 목소리가 커졌고, 수현은 사업의 진행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익을 재투자하는 비율에 대한 의견차였는데, 은수는 공격적인 재투자를 권하면서 수현에게 장사 선배로서 고객유치 및 판매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하곤 했고, '장사 신생아'수현은 이유야 어찌 되었던 과거에도 매장의 직원이었고 지금도 자신의 직원일뿐인은수의 연설 세례에 마음이 조금 상했다.
그러던 어느 또자그마한의견 차이가 생기던날, 둘은 급언성을 높이게 되었는데, 수현은 생각보다 야망이 큰 은수에게 놀라 발언 수위 조절에 실패했고, 다음날 은수는 처음으로 병가를 냈다.
명장 '을지문덕'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으로 재개발로 안타깝게 사라진
을지로3가역에 위치한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 image by
mangoplate.com
주방장이 그만둔 냉면집 사장의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수현은 매장 문에 달린 종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만 같았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손님은 반가워마지 않는 존재여야 하는데 수현은 손님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손님을 한 번도 응대해 보지도 따라서 물건을 팔아본 적도 없는 수현은 손님을 응대하는 수분의 시간이 마치 수십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마지 않던 수현은 물건은 결국 어찌어찌 창고에서 찾아다 계산대에 올려는 놨으나 선물포장을 해달라는 고객의 말에 그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이것은 생각지 못했던 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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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포장 코너에서 몇만 원씩 주고 잘도 포장해 가던 그녀였지만 실제로 본인이 손수 선물포장을 해본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순간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님이 다 보고 있는 앞에서 선물포장을 한 수현은 마치 알코올 중독자처럼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포장을 해나갔고 결국 리본이 맘에 안 든다며 손님은 직접 리본을 묶어 매장을 나갔다.
그녀는 2월 중순에 다한증이라도 걸린 환자처럼 땀범벅이었다.
작은 키가 콤플렉스라 높은 힐만 줄창 신는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플랫슈즈인 마르지엘라 Maison Margiela '타비 Tabi'안의 발가락들은 땀으로 미끌거렸고 그녀의 베이지색 르메르 Lemaire셔츠의 겨드랑이 부분은 땀에 젖어 시커멓게 된 채로 그녀는 한참을 서있었다.
한 십분 쯤 지났을까
땀으로 볼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던 그녀는 뭔가 손가락에 툭 떨어지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눈물이었고, 그녀는 계산대 밑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게딱지만 한 매장이라 어디 숨어서 울 곳도 없었다.
그마저 계산대도 무지 작아, 밖에서 우는 자신이 보일까 봐 등 한 번 못 펴고 한참을 울던 수현은
'이렇게 몸 하나 편히 숨길 곳 없는 작은 매장에서 은수가 그동안 혼자 일하면서 말 못 할 많은 애로가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돈만 잘 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미안해지면서 은수에게 '몸은 좀 어떤지' 문자라도 넣어볼까 했던 수현은 그러나 순간, 어젯밤 도끼눈을 뜨고 언성을 높이던 은수의 얼굴이 급 생각나 휴대폰을 내려놓았는데, 은수 역시연락도 없이 매정한 수현의 태도에 그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고, 구직 사이트에 들어갔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