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4일 차가 없던 이유

랍스터와 대게로 맺은 화해

by 강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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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러 나가야 하는데…

러닝화가 없다.

아! 포돌이 차에 있지 참…ㅠ

그냥 새로 사? 아까운데…

또 연락해? 아놔 어쩌지…


결국 톡을 보냈다.

“출근했어? 나 러닝화가 필요해서…

현관 앞에 두고 가줘요.

내가 시간 될 때 가지고 갈게.”


그는 짧게 말했다.

“내일 와.”




그리고, 현관 앞에는

랍스터와 대게가 있었다.

이게 포돌이의 방식이었다.

사과는 못하지만, 늘 밥을 차려줬다.

말은 못 하지만, 그냥 옆에 있어줬다.


나는 그걸 안다.

랍스터는 ‘기다렸어’였고,

대게는 ‘화해하자’라는 말 같았다.

사과는 없었지만, 충분했다.


그날 포돌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껍질을 까고,

살을 발라내고, 입에 넣어 주었다.


나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포돌이는 늘 그랬다.

무뚝뚝하고, 반응 없고,

말을 못 하는 사람이지만,

“하자”고 한 일은 반드시 해내고,

“챙긴다”라고 한 건 빠짐없이 챙긴다.


감정은 말로 안 했지만,

행동은 늘 말보다 빨랐다.


난 늘 물었다.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


나는 그날 생각했다.


어쩌면,

말보다 행동이

더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거라고.


그리고 포돌이는,

아마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말이 없으면,

나는 마음속에서 자꾸 결론을 써버렸다.

말로 확인받지 못한 관계는,

끝없이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한마디를 기다리며,

나는 내 안에서 수십 번 질문을 던진다.


이건 뭐지?

지금 괜찮은 걸까?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걸까?


말없이 건네는 진심이 고맙다가도,

그 침묵에 내가 또 길을 잃을까 겁이 났다.


랍스터와 대게,

껍질은 딱딱했지만 살은 부드러웠다.

꼭 포돌이 같네.




그날의 화해는 조용했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다시 만났고,

나는 그 만남 속에서 조용히 알게 되었다.


‘견디고 기다려주는 것.’

그게 이 사람의 사랑이었구나.


이렇게 사랑했다면,

이 사람 참 힘들었겠다.

이걸 알게 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래서 오늘은,

그 정직한 행동 하나를 믿기로 했다.


사랑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감당해 내는 일이라면,

포돌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온 만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포돌이를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결국,

포돌이도 나를 다 알 순 없겠지만,

그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나를 견뎌내고 있을 거다.

말없이 기다려주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속도로 감당 중일 테니까.




늘 그 속도가 문제였다.

늘 내가 빨랐으니까.

일이든 사랑이든.


나는 모르는 걸 싫어한다.

모르는 길, 모르는 사람,

모르는 일, 모르는 감정.


예상되지 않은 상황이 닥치면

나는 일단 불안하다.

그게 어떤 상황이든.


그래서 나는 미리 확인하고,

미리 물어보고, 미리 정리하고,

미리 각오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준비성 철저하다’고 말하지만,

그냥… 불안한 거였다.

안 물어보면 더 불안하고,

안 챙기면 하루 종일 그게 걸리고.


모르는 상태로 놓이는 순간,

내가 감당해야 할 해석과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누군가 말없이 자리를 비우면

불안했고,

갑작스럽게 계획이 바뀌면

더 불안했고,

이유 없이 기분이 상한 사람을 보면

극도로 불안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나는 그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고,

그 애씀은 어느 순간 습관이 됐고,

그 습관은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설명되지 않는 순간에

폭발했다.


그래서 나는 설명이 필요하다.

알아야 견딜 수 있다.

말해줘야 감정이 정리된다.

예측 가능한 구조 안에서만

나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 아무 말 없이

나를 흘려보내면,

나는 그 순간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간다.

감당 안 되는 상황 속에서,

그저 조용히 폭주하는 사람으로.




포돌이와 통화가 되지 않고,

카톡이 되지 않았던 그날.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너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아니, 알았어.”


“그런데 마흔이 훌쩍 넘었고,

성숙해져서 이런 모습이 사라진 줄 알았어. “


“그런데 또 이 모습이 나왔다는 건…

아. 나 이 사람 정말 좋아하는구나.

이걸 알았다는 뜻이야. “




다음화 예고


그래서 이제 화해하고 잘지내냐구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istp 남자 entj 여자

말 안 통하는 연애이야기.


왜 이 나이까지 결혼 안 하고

연애만 하면서 사는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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