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라졌고, 그는 그대로였다.

회피형 연애 1년의 생존기

by 강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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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30일,

우리는 아직 만나지도 않았고

톡만 주고받던 사이였다.


“오늘은 뭐 하세요?”

“오늘 월차라, 혼자 등산 중이에요.”

“내려와서 시원하게 한잔 드세요.”


커피 쿠폰이 도착했다.


“이제 집에 가세요?”

“아뇨, 이제 파티하러 가요.

사실… 오늘 제 생일이에요.”

“아, 축하드려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핸드크림이

카카오 선물함에 도착했다.


흔한 ㄹㅅㄸ이었다면

기억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건 내가 평소 자주 쓰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 사람… 센스 있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 생일.


“생일 선물 뭐 해줄까?”

“그냥… 같이 있어주는 게 선물이야.”


그는 연차를 내고

서울에서 대구,

대구에서 부산,

부산에서 통영까지—

정말 내내 함께 있어주었다.


나는 생일을 국경일처럼 여기는 사람이었다.

파티도, 이벤트도,

뭔가 특별한 걸 꼭 해야만 했다.


그런데 올해는,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그랬더니 정말,

케이크도 없고, 축하 노래도 없고,

‘생일 축하해’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는 내 곁에 그냥 함께 있더라. ㅎㅎㅎ


통영 해안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며

나 혼자 크게 노래를 불렀다.

(그에게 들리라고)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경윤이, 생일 축하합니다~”


“태어나줘서 고맙지?”

“안 태어났으면 어쩔 뻔했나 싶지?”

“나도 오늘, 참 잘 태어났다 싶네.”



포돌이가 달라진 걸까?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나눴던 톡을

다시 찾아 읽어봤다.


놀랍게도,

그는 그때도 지금도 똑같았다.


말은 짧았고,

답은 애매했고,

감정 표현은 거의 없었다.


그땐 그게 ‘신중함’으로 보였고,

지금은 ‘무심함’으로 느껴진 거다.


결국,

달라진 건 그가 아니라

그를 해석하는 나였다.



우리는 다르다.

아주 많이 다르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나는 단어와 뉘앙스로 감정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의 방식은

표현 없는 돌봄이고,

나의 방식은

확인이 필요한 연결이다.


사랑은 애초에

같은 언어로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번역하며

조심스럽게 관계를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오역도, 생략도,

과잉 해석도 생긴다.


1년 전, 그의 단답은

‘진중함’으로 들렸고,

지금은 ‘무심함’으로 들린다.


그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 주 베트남 간다고?”

“진짜 내 말 귓등으로 듣는구나? 난 다. 낭. 간다고!!”

“다낭이 베트남이야…”

“… 모를 수도 있지!!!!”


평상시엔 잘 모르다가

이렇게 적어보면 내가 보인다.


나는… 끝까지 큰소리치는 편이구나. ㅎㅎ

포돌이는 기가 막힌다는 듯

그냥 웃고 넘긴다.


그렇게 생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또 티격태격하는 게 우리 일상이다.


서로 웃을 수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다르면서도

1년을 무사히 지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내일, 다낭에 간다.

그가 없는 시간 동안

포돌이의 빈자리가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조금 궁금하다.


그리워질까?

시원할까?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아직도 포돌이를 번역 중이라는 것.


잠시, 번역을 멈추고

나를 번역해 보는 시간으로

여행을 삼아보려 한다.



이너마더의 회피형 연애꿀팁


경윤아,

건강한 관계는

붙어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을 때 더 잘 보여.


서로의 자율을 존중하면서도

마음이 이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그건 꽤 괜찮은 사랑이야.


이번 여행,

너에게도 포돌이에게도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라.


너답게, 충분히 쉬다 와.



다음화 예고


다낭은 회사 워크숍으로 가는 일정이에요.

포돌이랑 이렇게 오래 떨어져 보는 건 처음입니다.

헤어져도 사흘을 못 가던 사이였거든요.ㅎㅎ

다녀와서, 이어서 또 이야기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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