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5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뽀kyung Jun 16. 2022

이수혁은 왜 김희선의 눈가를
붉게 물들였을까?

드라마 <내일> 속 러브라인의 의미 톺아보기 

*본문에 (자극적이진 않으나 간단한) 피 분장을 한 사진이 일부 등장합니다. 

  혹시 불편함을 느끼신다면 이 부분 유의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언니는 어쩜 눈에 그런 색을 발라도 찰떡으로 아름다우십니까?

#5. 저잣거리 (낮) 


련과 중길, 좌판에 놓인 방물을 구경하다. 


구련    (방물을 보다 중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빛깔이 참 좋습니다. 

중길    (련의 기막힌 옆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다 좌판에 놓인 연지를 손으로 찍어 련의 눈가에 

            살포시 바른다) 

구련    (당황하며) 뭐 하시는 겁니까? 

중길    붉은 연지를 눈가에 바르면 어떨지 궁금하여 그리하였습니다. 

구련    (못 말린다는 듯 헛웃음 치며) 어서 지워주십시오. 

중길    (거울을 들어 련에게 보이며) 붉은색이 참으로 잘 어울리십니다.


련의 눈가를 붉게 물들인 중길,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었다면?

 

  위 장면은 드라마 <내일>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련(김희선)과 중길(이수혁)의 전생으로, 구련이 파격적인 눈화장을 고수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이때부터 시청자들은 묘한 긴장감과 분위기를 보이는 련과 중길의 관계, 전생의 인연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 오묘한 러브라인은 작품이 진행될수록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함께 장터를 구경하다가 손에 연지를 묻혀 눈가에 바르는 장난, 그리고 뒤에 내뱉은 연모한다는 고백. 꽤 로맨틱하게 연출됐지만, 만약 똑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발생한다면 어떨까? 오랜만에 쇼핑을 나와 화장품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연인이 손에 붉은 화장품을 묻혀 내 눈가에 바르고 해맑게 웃는다면? 아마 그 가게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나의 완벽한 화장에 이런 쨍한 색을 얹어?" 

"내가 오늘 화장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나의 퍼스널 컬러도 모르면서 감히...?" 

아마 이런 반응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 그렇다, 사실 중길의 행동은 귀싸대기를 맞아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련은 (물론 초반에는 당황했으나, 사실 언성도 살짝 높아진 것 같으나) 환한 미소로 응답했고, 심지어 유행이 삽시간에 바뀌는 지금까지도 그 화장법을 지켜왔다. 스치는 소품 하나에, 복선 하나에 울고 웃으며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가는 것이 요즘 시청자이다. 그만큼 드라마 연출에서도 여러 장치와 장면에 숨겨진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련이 등장할 때마다 시선을 강탈하는 눈 화장에는 숨겨진 의미가 없었을까? 과연 이 눈 화장이 련에게, 혹은 중길에게 어떤 의미이고, 이 작품은 붉어진 눈가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할지라도 자기 연인을 온전히 사랑하겠다는 중길의 의지

 

  독특한 개성이 환영받으면서도 박해받는 모순된 시대이다. 반성컨대 길을 걷다 보통과 다른 복식이나 화장법을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보낸다. 감히 평가하려 하진 않지만, 눈이 새로움을 좇아가는 것은 막기 힘든 일이다. 조선시대라고 크게 달랐을까? 조선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고혹적이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우아하면서도 유치하지 않으며, 무게감은 있으나 답답하지 않은> 고난도의 스타일을 추구하던 시대가 아닌가. 이런 시대에 눈가를 새빨갛게 칠한다면 지금보다 반응이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길에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연모하는 이에게 붉은색이 잘 어울리면, 장난 한 번에 서로 마주 보고 웃어내면, 중길에겐 주변 사람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던 것이다. 어떤 모습이어도,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자신 옆에만 있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라니, 정말이지 내 남자가 아닐 수가 없다. 

   작품 후반에는 두 사람의 안타가운 서사가 풀렸다. 전쟁 중 오랑캐에 잡혀갔다 겨우 탈출해 돌아온 '환향녀', 그 불쾌한 낙인은 결국 련의 인생을 갉아먹었다. 시선이 두려워 벼랑 끝에 선 련이 죽음에 달려들 때 중길은 "저는 보이지 않으십니까?"라고 소리친다. 이 대사가 이러한 중길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다른 사람은 상관없다고,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사람들이 그대를 부끄러워하고 그대 스스로 본인을 미워할지라도 그 모습마저 사랑하겠다는 중길의 의지. 


수혁님, 죄송해요 다친 모습조차 청초하다고 생각했어요

잘못된 선택으로 피눈물을 흘러야 할 기구한 삶

 

   삶은 마치 물과 같다. 열정 넘치게 퍼붓기도 하고, 유려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기도 하고, 결국에는 평화를 찾고 머무르는 것. 다만, 그래서 한번 쏟아지면 주워 담을 수 없다. 이것이 죽음이 두렵고, 자살이 아픈 이유이다. 무슨 수를 써도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련과 중길, 두 사람에게도 죽음과 그로 인한 엄벌은 상당히 무거웠다. 련은 끝없는 통한의 시간을 걸으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괴로워했다. 주마등에서 차사로 일하기 시작한 후에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연인의 곁을 지켜야 했다. 한편, 중길은 마지막까지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속이 뒤틀리고 심장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다 결국 기억을 지우게 된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아내도 못 알아보고 온갖 싹수 노란 말만 내놓아 또다시 후회할 기구한 운명이다. 이처럼 한순간의 선택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행복한 때를 기억 속에서만 찾아야 하는 두 사람의 기구한 삶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인간적으로 두 분 함께 다른 작품을 하나 더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지)

붉은 실의 운명, 세기를 뛰어넘는 절절한 사랑의 징표 


    한국 드라마에서 고난과 역경도 막지 못하는 초월적 사랑, 두 사람의 절실한 인연, 사랑의 장애물을 강조할 때 가장 효과적인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이 '붉은 실'이다. 실제로 많은 작품이 이 요소를 활용해 붉은 실로 이어진 두 사람의 마음이나 운명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스치듯 불어가는 가벼운 사랑이 많은 현대에서 하늘이 점지한, 그것도 수 세기 동안 반복되는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니, 왜 인기 있는 설정인지 이해가 쉬워진다. 련의 눈을 붉게 칠한 것은 그동안 실이나 끈으로만 표현하던 붉은 실의 운명을 색다르게 나타낸 것은 아닐까 싶다. 자살한 사람은 그 업보로 붉은 실의 인연을 포함한 전생의 모든 인연이 끊어지게 된다. 련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붉은 실만 그녀의 손목에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연은 끊어졌어도 여전히 련은 그녀의 눈을 통해 중길을, 그리고 그와의 전생 속 삶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련의 복합적이고 절절한 상황을 눈을 붉게 물들여 표현한 것은 아닐지 해석할 수 있다. 



시청자들의 눈을 가리면 안 된다는 경고 


    한편, 시청자의 눈을 가리지 않았는지 조심하라는 경고일 수 있다. 물론 죽음에는 경중이 없고, 모든 죽음은 저마다 고귀하지만, 드라마 <내일>은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죽음과 그 뒤에 있는 사회적 문제를 그려왔다. 국가유공자, 위안부 피해자, 학교폭력 피해자 등 여러 사회 문제를 꼬집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작품 후반부에 러브라인 전개에 무게가 실리면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볼 시청자의 눈을 가릴 위험도 커졌다. 가령 마지막 자살 예정자였던 '초희'라는 인물을 짚어보자. 극 중 초희는 대한민국의 유명 연예인이다. 도를 넘는 악플과 자극적인 기사, 물어뜯기식 선동으로 말이 창이 되어 사람을 찌르는 시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에 쉽게 노출되는 것은 연예인이고, 실제로 우리는 무거운 죽음을 바라봐야 했다. 이때 마지막 자살 예정자이자 연예인 '초희'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줄 메시지는 꽤 강력하다. 그러나 이 인물은 련과 중길의 전생 인연을 극대화하는 장치로만 사용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 속 러브라인이 가져오는 흥미, 긴장감 등의 매력 요소는 부정할 수 없이 중요하다. 다만, 러브라인과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다음 생에는 엄마가 내 딸 해. 내가 엄마 할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